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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06. 2022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데 어떤 여행일까?

 

흔히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한다.

나그네를 좋은 말로는 여행자라고 하고 신세가 좀 걱정되는 말로는 방랑자라고도 한다.

여행자라면 미리 묵을 곳도 정해 놓고 둘러볼 곳도 정해 놓은 나그네이다.

시간과 여비에 맞춰서 가고 싶은 데를 골라서 간다.

이들도 나그네라고 하지만, 인생을 나그네길이라고 할 때 이런 종류의 나그네를 말하지는 않는다.

인생이 어디 정해진 경로대로 진행되는가?

예상하는 루트를 따라가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인생을 단순한 여행길이라고 하지 않는다.

인생을 나그네길이라고 할 때 그 나그네는 여행자보다는 방랑자에 더 잘 어울린다.

방랑자는 묵을 곳도 정해진 데가 없고 시간과 여비도 항상 부족한 나그네이다.

인생도 딱히 정해진 안정된 장소가 없다.

시간과 돈이 어느 만큼 있어야 여유 있게 살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인생길은 여행길보다 방랑길에 더 가깝게 여겨진다.




영어식으로 풀이해보면 인생은 tour가 아니라 travel이라 하겠다.

tour는 여기 보고 저기 보며 유유자적 놀러 다니는 여행이다.

가이드도 붙을 수 있고 지도도 들고 다닌다.

어디에 가면 뭐가 있고 어떤 것을 보면 좋은지 알려주는 정보들이 많다.

안전하게 즐기면서 보고 듣는 여행이다.

하지만 travel은 일촉즉발의 돌발상황이 기다리고 있는 모험이다.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알지 못한다.

익숙한 길도 아니고 잘 알려진 길도 아니다.

남들이 많이 다니는 길도 아니고 안전이 보장된 길도 아니다.

늘 위험이 동반되고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은 tour로서의 여행보다 travel로서의 모험을 닮았다.

그런데 travel이라는 말은 ‘고난’을 뜻하는 ‘travail’과 어원이 같다고 한다.

travel은 ‘수고’, ‘노고’, ‘고통’ 등 ‘고생한다’는 말이니까 travel에도 고생하는 일들이 따라온다.

그래서인지 인생에는 고생하는 일이 참 많다.




이쯤에서 내가 바라보는 인생이란 과연 어떤 모습의 나그네길인지 생각해 본다.

인생이 방랑자의 길이라고 말은 하지만 나는 여유 많은 여행자의 길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행자 중에서도 눈요깃거리, 귀요깃거리를 찾고 다니는 tour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디에 가면 뭐가 좋더라, 어디에 가면 무슨 맛집이 있더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식으로 인생살이도 ‘그 나이 때가 되면 이래야 해!’, ‘그 상황이면 저래야 해!’라는 식의 말에 현혹되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남들이 다 둘러보았다는 관광지라면 내 여행에도 꼭 둘러보아야 한다는 tour처럼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닐까?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남들의 말에 맡겨버린 것은 아닐까?

왜 그렇다고 생각이 드는 걸까?

그건 편안해지고 싶어서일 것이다.

남들만큼 하면, 남들처럼 하면, 중간 정도이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번 인생을 바라보는 나의 자세를 살펴봐야겠다.

다니던 길로만 다니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 없다.

모든 길은 방랑자들이 그 첫 발자국을 찍어 놓은 길에서 시작되었다.

왜 그곳에 발자국을 찍느냐고 말을 들어도 방랑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들의 말보다 내 마음을 따랐고 이정표를 따르기보다 내 발이 가는 대로 갔다.

수많은 모험가들이 travel을 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들을 하나씩 알 수 있었다.

방랑자들에게 언제쯤 돌아갈 거냐고 물어보면 지금까지 온 길도 모르는데 돌아갈 길을 어찌 알겠냐고 할 것 같다.

travel하는 사람에게 언제쯤 모험이 끝나냐고 물어보면 둘러봐야 할 곳이 너무 많아 끝을 알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들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온 길을 거꾸로 되돌려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얼마인지 그 끝을 알 수도 없는 나그네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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