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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09. 2022

큰 트라우마나 작은 트라우마나 잘 치료해야 한다


왼손 손가락 끝의 지문이 많이 지워졌다.

간간이 기타를 튕기기 때문에 손가락 끝이 딱딱하게 굳어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 끝의 피부를 한 꺼풀 벗겨낸다.

그 딱딱한 굳은살 때문에 기타줄을 눌러도 아프지 않다.

분명 손가락 끝에 생긴 상처인데 그 상처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사실 상처는 좋게도 볼 수 있고 안 좋게도 볼 수 있는 중의적인 말이다.

상처가 있으면 더 단단해지니까 성장할 때는 상처가 필요하다.

사춘기 시절에 한 달 사이에 키가 부쩍 크는 아이들의 몸에는 살이 터진 상처가 있다.

그 상처 때문에 키가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살이 터지지 않으려고, 상처 입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면 키가 크지 못했을 것이다.

가운뎃손가락에 굳은살이 어느 정도 두꺼운지에 따라서 볼펜을 많이 잡은 학생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가방끈이 긴 사람은 대체적으로 가운뎃손가락에 굴곡이 있다.

상처 때문이다.




이처럼 상처는 성장하고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상처 없이 영광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그러나 상처는 어쨌든 아픔이다.

달갑지 않다.

소나무 분재를 보면 일부러 나무를 휘어놓았다.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지만 나무 입장에서는 평생 관절염을 겪는 것 같은 아픔이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도 그런 아픔들이 있다.

긴 시간 동안 고통을 주는 그런 아픔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그리스어로 ‘상처’를 뜻하는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몸에 난 상처를 뜻하지 않고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아픔을 나타낼 때 쓰이는 말이다.

트라우마는 심리적인 불안이나 두려움으로 그치지 않고 몸에 이상 증후로까지 번진다.

심지어는 그 증세가 심화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마다 어느 정도의 트라우마는 가지고 있기에 트라우마들을 잘 관리해야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트라우마를 빅 트라우마와 스몰 트라우마로 나누기도 한다.

빅 트라우마는 자연재해나 전쟁, 불의의 사고나 폭력 등으로 평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경우에 나타나는 트라우마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경험이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게 마음의 상처가 되어서 시시때때로 불안과 공포감에 시달리며 악몽과 가위눌림으로 나타난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정도로 괴로움을 토로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비해서 스몰 트라우마는 일상생활에서 자잘하게 경험했던 것들이 기분 나쁜 기억이 되어 나타나는 트라우마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야단을 많이 맞아서 주눅 든 성격이 되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서 다시 사람을 사귀기 힘들어하는 것들이다.

스몰 트라우마는 어느 날 갑자기 끼어든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등 주로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 때문에 생긴다.




빅 트라우마는 엄청난 사건을 겪은 후에 생긴 것이니까 잘 치료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들 동의한다.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스몰 트라우마의 경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향이 많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같은 것이니까.” “남의 집안사에 괜히 신경 쓰지 마라.” “남들도 다 그 정도의 아픔은 있어.” 이런 말들이 스몰 트라우마를 덧나게 한다.

상처는 그 크기가 작다고 해서 만만한 것이 아니다.

몸속에 1센티미터의 암세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별것도 아니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1킬로그램의 돌덩이와 1킬로그램의 모래는 무게가 똑같다.

빅 트라우마도 잘 치료해야 하지만 자잘한 스몰 트라우마들도 잘 치료해야 한다.

큰 트라우마든지 작은 트라우마든지 모든 트라우마들을 잘 극복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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