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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읽고 산다
곰브리치가 지키려고 했던 3가지 글쓰기 원칙
by
박은석
Jun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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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입문서와 같은 비중을 가진 책이 있다.
곰브리치(Ernst Hans Josef Gombrich)가 쓴 <서양미술사>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 깨알 같은 글씨로 여러 그림들을 소개하며 서양미술의 변천과정을 설명해 준다.
곰브리치는 이 책을 10대의 학생들이 읽기를 바랐지만 10대들이 읽는 책이라고 해서 성인들이 읽는 책과 수준이 다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성인이 읽어도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에게 곰브리치를 아냐고 했더니 “어휴! 곰브리치!”라고 했다.
대학생 때 이 책이 필독서였고 이 책의 내용으로 시험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때는 책이 두 권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지금은 한 권으로 묶여 있다며 새삼 놀라워한다.
그러면 그때 봤던 책은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짐 정리하면서 일찌감치 버렸다고 한다.
내가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버리지 못하게 막았을 텐데.
몇 년 전부터 이 책을 꼭 소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망설였다.
그러다가 몇 달 전에 드디어 손에 넣었다.
당근마켓을 통해 중고서적을 구입하게 된 것이다.
너무나 벅찬 마음에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짧은 문자를 보냈다.
‘세상에 두 부류의 사람이 사는데 한 부류는 곰브리치를 아는 사람이고 한 부류는 곰브리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그 판매자가 답장을 보내왔다.
‘우리는 두 부류 다 경험했네요? 곰브리치를 모르던 사람에서 곰브리치를 아는 사람으로요.’
곰브리치는 이렇게 시작부터 흐뭇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집에 와서 판권을 살펴보니 아! 초판 2쇄인데 1999년 발행본이었다.
좋은 책은 초판 1쇄본을 소장하고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곰브리치의 책은 그 후에 계속 개정도 되었으니까 최신 판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새책으로 한 권 더 구입을 했다.
양장본 새 책은 집에 두고 오래된 책은 사무실에 두면서 틈틈이 읽기로 했다.
이제 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될 순간이었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서문을 펼쳤다.
서문에서는 보통 어쩌다가 이런 책을 쓰게 되었는지 배경 설명이 나온다.
곰브리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면서 자기 스스로 세운 3가지 원칙을 소개했다.
그게 내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다.
인류 역사 속에서 널리 알려진 화가들도 많고 그들의 작품들도 많은데 그 많은 작품을 책 한 권에 다 실을 수가 없다.
화가들을 소개하는 글만으로도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의 시대적 흐름을 설명하면서 꼭 중요한 작품들은 도판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책이 공허한 말 잔치가 아니라 독자들에게 거대한 전시회장으로 들어온 감격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곰브리치가 지키려고 했던 3가지 원칙은
첫째, 도판으로 보여줄 수 없는 작품들은 가능한 언급을 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미술에 관한 글이니까 작품을 보여주며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수많은 미술 작품 중에서 진정으로 훌륭한 작품만 언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모든 작품을 다 설명할 수는 없기에 단순히 어떤 취향이나 유행,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작품들은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셋째, 곰브리치의 개인적인 선호도에 따라서 작품을 선정하지는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작품이라면 자신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독자들이 알아야 하니까 최대한 실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곰브리치의 3가지 원칙이 나에게는 글 쓰는 사람들이 지켜야 원칙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 곰브리치가 의도했던 대로 서양미술의 흐름과 그 시대를 빛냈던 대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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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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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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