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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18. 2022

여행에서 속지 말아야 할 한 가지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이 노래의 가사처럼 내 고향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굉장히 많다.

아마 내 평생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제주도가 받아들인 적이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휴가철이나 명절, 방학 기간은 성수기였고 그 외에는 비수기로 구분했는데 요즘은 1년 열두 달이 성수기 아니면 극성수기로 불린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몰리다 보니까 속속들이 관광지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미 내 고향 봉개동 윗동네에는 절물자연휴양림이 조성되었고 그 옆으로는 사려니숲길 같은 트레킹코스도 생겼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동네 형들과 절물에 가서 개구리를 잡고 라면을 끓여 먹고 삼겹살을 구워 먹었는데 이제는 추억만 먹는다.

해마다 8월이 되면 아버지는 나와 내 동생을 데리고 밀림 같은 숲길을 헤치며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아다니셨다.

그때는 지긋지긋했던 그 길들이 이제는 관광객들의 나들잇길이 되었다.




제주도를 떠난 후 내 주민등록증에 서울 주소가 찍히고 경기도 주소가 찍혔다.

그리고 찾아가는 제주도는 고향길인데 고향 같지가 않다.

나의 살던 고향은...

없어져 버렸다.

흔적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고향 가는 길이 여행 가는 길처럼 여겨진다.

모든 게 낯설다.

이런 내 기분을 알 리 없는 여행객들은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소란스럽다.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드나 보다.

공항 밖으로 나오면 색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 연초록 바다, 현무암으로 얼기설기 쌓아놓은 돌담길과 팔랑팔랑 흔들어대는 야자수.

조금만 가면 길 양옆으로 울창한 산이 보이는 육지와는 달리 제주도는 봉긋하게 올라온 봉우리 비슷한 것들만 보인다.

길거리에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비행기 타고 한 시간 왔을 뿐인데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할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 왔으니 이전까지 머물던 세상과는 잠시 안녕이다.

맘껏 소리를 질러도 괜찮을 것 같고 이래라저래라할 사람도 없다.

지도를 펼치면 둘러볼 만한 곳이 너무나 많다.

어디를 갈지 고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침 점심 저녁 먹거리를 정하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여행의 백미 중 하나는 시장통을 거니는 것인데 미로처럼 연결된 동문시장 한가운데 서서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좋다.

어리숙하게 길을 헤매다 보면 천사처럼 나타난 친절한 사람이 길 안내도 해준다.

해 떨어지는 시간에 맞춰 바닷가 고즈넉한 카페에 앉아서 차 한잔을 마시고 밤이 깊어지면 탑동 방파제길을 걸으며 고기잡이배들의 불빛을 감상할 수도 있다.

철썩철썩 때리는 밤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2박 3일이면 맛보기이고 3박 4일이면 아쉽고 4박 5일 정도 되어야 좀 여유 있는 여행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일상으로 복귀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31세에 월든 호숫가에 땅을 사서 그곳에서 평생을 지냈다.

<월든>의 작가인 소로우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신뢰>라는 책에서 여행을 낙원으로 생각하면 어리석은 자라고 했다.

“집에 있을 때는 나폴리나 로마에 가면 도시의 아름다움에 취해 내 슬픔일랑 모두 잊힐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여행가방을 꾸리고 친구들과 작별의 포옹을 하고 여행에 나선 다음 마침내 나폴리의 호텔에서 잠을 깼다.

그런데 내 옆에는 냉엄한 현실이 버티고 있었다.

내가 도망쳐 왔던, 미국에 있을 때와 똑같은 저 엄혹하고도 슬픈 자아가 나와 함께 깨어났던 것이다.

내가 어딜 가든 나의 거인은 나와 함께 간다.”

여행은 현실에서 유토피아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만 가면 얽힌 실타래가 풀릴 것이라는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여행은 나의 현실을 짊어지고 잠시 장소를 옮겼다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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