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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14. 2022

미용실에 앉아 짧은머리의 역사를 생각한다


머리카락이 귀를 살짝 덮기 시작하면 갑갑증을 느낀다.

‘저놈의 머리카락을 빨리 잘라버려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든다.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에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서 귀를 간질거린다.

이때가 제일 귀찮다.

‘가야 되는데, 가야 되는데...’ 마음만 먹다가 결국은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미용실에 간다.

미용실에 가기 귀찮은 것보다 머리카락이 길어서 답답한 게 더 싫기 때문이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서 앞에 놓인 커다란 붙박이 거울을 본다.

미용사가 이발기를 들고 인정사정없이 내 머리를 싹 밀어 올린다.

이발기의 위잉거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 뭉치가 싹둑 잘려 나간다.

바닥에 떨어진 그 머리카락 뭉치를 보면 이상한 쾌감이 올라온다.

한 번 훑고 지나간 이발기의 자국이 기준이 된다.

처음에는 머리에 구멍이 난 것 같지만 이발기가 몇 번 지나가고 나면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맞는다.

거울을 보면 인물도 잘 생겼다.




미용실에 한 번 다녀오면 적어도 보름 정도는 머리가 시원하다.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빗질을 하고 헤어젤을 바르면 나만의 스타일이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편한 시간도 3주째에 접어들면 편안하지 않게 된다.

또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언제쯤 머리를 자를까?’ 한때는 나도 머리를 기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다.

그때가 스무 살 정도였던 것 같다.

옆머리를 살짝 다듬고 뒷머리는 길러보고 싶었다.

고작 두 주일이나 되었을까? 도저히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서 다시 머리를 짧게 깎았다.

만약 내가 15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머리를 기르려는 시도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남성들도 머리를 길게 길러야 했다.

혹시 머리를 한 번 자르려면 집안 어른들에게 엄청난 야단을 맞았을 것이다.

부모님이 주신 신체이고 머리털인데 어떻게 함부로 상하게 하느냐고 말이다.

그만큼 머리카락 하나도 소중히 여기던 시절이었다.




1895년 11월 15일에 조선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있었다.

남성들의 머리를 짧게 자르라는 ‘단발령’이 내려진 것이다.

수많은 백성이 반대를 하였지만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고종과 세자가 백성들에게 본을 보인다며 먼저 머리를 잘랐다.

명분은 긴머리가 위생상 좋고 일을 할 때 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잘리는 고종조차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500년 동안 머리를 길러오면서 긴머리 때문에 위생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긴머리 때문에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는 말도 없었다.

고종 자신도 머리를 자르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렇지만 머리를 잘라야만 했다.

단발령의 시행에는 일본의 힘을 등에 업은 개화파의 으름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깡패들을 동원해서 조선의 국모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를 정도로 잔인한 부류였다.

그 일이 불과 석 달 전이었다.




머리를 자르면 상투를 틀 일이 없다.

상투를 틀지 않으면 망건과 갓이 필요 없게 된다.

짧은머리에는 중절모가 제격이니까 말이다.

머리에 중절모를 쓰면 한복과 두루마기가 어색해 보인다.

짧은머리에는 양복 재킷과 바지가 잘 어울릴 수밖에 없다.

신발도 조선의 신발보다는 구두를 신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하다못해 고무신이라도 신어야 짧은머리에 잘 어울린다.

단순히 머리카락을 좀 짧게 자르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으로 인한 2차적, 3차적인 경제효과를 거머쥐려는 시도로 시행된 것이었다.

중절모도, 재킷과 바지도, 구두도, 고무신도 조선에서는 생산되지 않았다.

모두 다 일본에서 수입해야만 했다.

머리카락 때문에 조선의 돈이 일본으로 왕창 넘어간 것이다.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이런 역사가 떠오른다.

머리카락이 잘리는 것은 시원한데 짧은머리의 역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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