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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13. 2022

단추 하나도 귀한데 사람은 오죽할까?


세탁한 와이셔츠를 입으려는데 손목 단추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집 앞에 있는 OO토피아에 옷을 맡기면 편하기는 한데 종종 이렇게 단추가 사라진 채 돌려받는다.

기계가 세탁을 하고 다림질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아직까지 한 번도 단추 때문에 뭐라고 한 적은 없는데 그래도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한다.

오늘은 한쪽 손목 단추만 없어진 게 아니라 양쪽 다 없어졌다.

새끼손톱만 한 단추 하나가 무슨 대단한 물건이라고 이렇게 내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지 모르겠다.

지금이야 흔해 빠졌지만 단추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굉장한 물건이었다고 한다.

밋밋한 옷에 단추 하나 붙이면 그 순간 다른 옷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옷이 되었다.

입은 옷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단연 단추였다고 한다.

단추에 멋지고 예쁜 디자인을 해서 가슴에 붙이기도 했고 어깨에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단추가 천과 천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기에 가급적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부착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단추가 대단한 위치를 차지했었던 시절도 있었다.

옷에 부착된 단추만 보더라도 그 사람의 경제적인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단추가 하나의 예술품 역할도 했고 귀한 장신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아무나 옷에 단추를 달 형편이 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

사실 오늘날 흔하디 흔한 것들도 처음 발명되어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는 굉장히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뭔들 안 그랬겠는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엄청나게 귀한 대접을 받는다.

다이아몬드가 비싼 값에 거래되는 이유는 그게 흔하지 않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이아몬드가 길바닥에 널려 있다면 다이아몬드의 값어치는 길가의 돌멩이처럼 형편없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데 굉장히 저평가되고 있는 게 보인다.

분명히 희소가치가 있는데 그 희소가치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흔해 빠진 하얀 단추처럼 자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기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자기 같은 존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말을 한다.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자기와 비슷한 존재가 이 세상에 85억 개나 있지만 다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비슷하니까 자기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비슷한 것과 똑같은 것은 다르다.

그러니까 아무리 비슷한 것이 85억 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어느 것도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

이게 사실인데 이 사실을 모르고 마냥 자기는 쓸모없다고만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별 볼일 없이 보는 게 무엇이냐면 바로 인간이다.

‘나’라는 존재이다.




그 흔한 단추도 손목에서 두 개가 떨어져 나가니까 셔츠를 입기가 불편하다.

깨끗하게 세탁하고 빳빳하게 다림질을 했지만 입기가 꺼려진다.

단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사소한 단추가 이런데 사람은 오죽할까?

‘나 하나쯤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장례식장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옆 빈소에서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며 통곡한다.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슬퍼한다.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옆 빈소의 사람들에게는 떠나간 그 사람이 엄청나게 중요했을 것이다.

내가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판단하는 것이다.

한 올의 실만 남았다고 하더라도 손목에 단추가 붙어 있어야 옷을 입을 수 있다.

숨만 쉬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살아 있어야 세상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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