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볼'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다. 위스키 등 기본주에 얼음과 소다수, 취향에 따라 레몬과 라임, 그 밖의 부재료를 더 해 시원하게 마시는 음료를 통칭한다고 보면 거의 정확하다. 넓게 보면 진에 토닉워터를 섞는 진 토닉도 하이볼이고 럼에 라임주스를 조금 넣고 콜라를 섞는 쿠바 리브레도 하이볼이다.
내가 경험한 첫 번째 하이볼은 '폭탄주'의 한 변형이었다. 요즘은 거의 '소맥'을 마시지만 예전에는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 들이키는 독한 폭탄주를 제법 마셨는데 주량이 어지간한 사람도 사실 두 세 잔이면 힘들 정도로 독하다보니 좀 더 순하게 마시자고 위스키와 '페리에'와 같은 탄산수를 섞어 마셨다. 일종의 하이볼이라 하겠지만 일반 '카스' 맥주잔을 쓰고 얼음을 넣지 않으며 탄산수를 가득 채우지도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애초에 '폭탄주'의 변형으로 '원샷'을 위한 제조법이라 그렇다. 탄산수를 가득 채우면 한 번에 마시기 어려우니까.
인터넷에 '하이볼 레시피'를 검색하면 정말 많이 나오고 위스키 브랜드마다 저마다의 하이볼 레시피를 홍보하기도 한다. 하이볼은 그야 말로 편한 칵테일이니 딱 정해진 레시피 따위가 있을리 없지만 기본은 있다. 우선 글라스는 형태는 상관 없지만 탄산수가 다량 들어가므로 길고 좁은 잔이 좋다. '카스' 맥주잔도 가능하겠지만 기왕이면 그보다 좀 더 길고 좁은 잔을 준비하자. 다른 이유보다 보기에 좋고 공기에 닿는 표면적이 작아 탄산이 그나마 좀 더 오래 유지된다. 샴페인을 긴 플룻잔에 따르는 이유와 같다. 그런 관점에서보면 '산토리 하이볼' 광고에 등장하는 하이볼잔은 일단 너무 크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다이소에도 다양한 형태의 잔을 팔고 쿠팡에서도 구할 수 있으니 기왕이면 하나 장만하자. 가끔 위스키 패키지에 하이볼 전용잔이라고 들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야말로 마케팅일 뿐이니 길고 좁은 잔이라면 뭐든 좋겠다.
다음은 얼음이다. 칵테일은 눈으로 마시는 것이 절반이니 기왕이면 보기 좋아야 하고 얼음을 넣는 쪽이 보기에도 좋다. 칵테일 서적이나 유투브를 보면 투명한 얼음을 넣어야 보기 좋다면서 투명한 얼음 얼리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그냥 가정용 냉장고에서 얼린 얼음도 크게 지장은 없다. 급하면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파는 얼음을 사용할 수도 있겠다. 너무 빨리 녹으면 밍밍해 지기 쉬우므로 그래도 사이즈가 좀 있는 편이 좋다.
하이볼의 기본은 역시 위스키 베이스다. 일본의 저렴한 위스키 '산토리 가쿠빈'의 마케팅 성공으로 하이볼은 '산토리 하이볼'이 원조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하이볼에 어울리지 않는 위스키는 거의 없다. 하이볼에 너무 고급 위스키를 쓰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위스키에 다량의 차가운 탄산수를 섞으면 아무래도 고유의 향을 즐기기 어렵다. 위스키 향을 제대로 즐기려면 얼음보다는 소량의 물을 첨가하는 편이 낫다. 개인적으로 '산토리 가쿠빈' 보다 '제임슨'과 '커티샥'이 좋다. 아일리쉬 위스키인 '제임슨'은 마트에서 3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고, '커티샥'은 그보다 더 저렴하다. 둘 다 맛이 부담스럽지 않고 부드러워 하이볼로 마시기 좋다. 짐빔 화이트와 조니워커 레드는 좀 더 저렴하지만 권하지 않는다.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특유의 강한 향이 특히 위스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좀 힘들 수 있다.
버번도 하이볼로 마시면 느낌이 좋다. 버번 특유의 달큰한 향이 살짝 올라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하이볼이다. 인터넷 찾아보면 메이커스마크, 버팔로트레이스, 와일드터키를 입문용 버번 '3대장'이라고 하던데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위스키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면 메이커스마크가 접근이 편하다. 무엇보다 메이커스마크는 도수가 40도이지만 와일드터키 8년산은 50도라 느낌이 많이 다르다. 조금 더 비싸지만 블렛 버번(Bulleit Bourbon)도 하이볼에 잘 어울린다. 그 보다 비싼 버번이라면... 그냥 마시기도 부족하다!
색다른 하이볼을 찾는다면 피트향이 강한 싱글 몰트를 추천한다. 아드벡, 라가불린, 라프로익, 탈리스커 다 좋은데 아무래도 그 중 가장 저렴한 탈리스커가 좋겠다. 탈리스커 10년은 이마트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데 탄산수를 섞어도 특유의 피트향이 살짝 올라와 아주 좋다. 피트향이 힘든 분이라도 하이볼이라면 편하게 마실 수 있으니 이 방법으로 피트향에 익숙해질 수도 있겠다. 잘 모르고 피트향 강한 위스키를 구입했는데 도저히 못 마시겠다 싶으면 하이볼로 만들어 보자. 다만, 이 경우에는 라임이나 레몬을 더 하는 방법을 권하지 않는다. 피트향과 시트러스향이 섞여 아주 오묘해진다. 위스키 말고 진이나 럼, 보드카로 하이볼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냥 탄산수만 섞어서는 아무래도 밋밋할 수 있어 재료를 좀 더 추가한 여러 칵테일이 있다.
기본주가 중요하기는 해도 한 잔의 하이볼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탄산수다. 사실 기본주보다 이 탄산수의 종류에 따라 하이볼의 맛이 많이 다르다. 가장 기본은 아무런 단맛이 없는 그냥 탄산수다. 가장 깔끔하고 기본주의 맛과 향을 비교적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탄산수 브랜드마다 탄산의 정도가 약간 다른데 여러 가지 마셔보고 입맛에 맞는 제품을 골라야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강한 탄산을 좋아하지 않아 초정 탄산수를 애용하는 편이다. 탄산수 가격도 제품마다 많이 다른데 기본적으로 맛과 향이 없는 플레인 제품을 사용한다면 비싼 수입 제품이라고 크게 차이가 있을까 싶다. 라임이나 레몬향이 첨가된 탄산수도 있는데 사용해도 상관 없고 맛과 향에 크게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실제로 시트러스향을 느끼고 싶다면 라임이나 레몬을 직접 넣어야 한다.
토닉워터는 기본적으로 단맛이 강한 탄산수로 예를 들어 진로 토닉워터는 300ml 한 병에 31g의 당류가 포함되어 있어 콜라하고 별반 차이가 없다. 위스키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도 하이볼은 맛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단맛이 강한 토닉워터나 아예 사이다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생강향이 나는 사이다인 진저에일도 역시 단맛이 강하다. 대학생때 콜라에 잭다이엘을 넣은 '잭콕'을 가끔 마셨는데 이쯤되면 사실 술보다는 콜라가 메인이다. 그냥 탄산수는 너무 밋밋하고 토닉워터는 너무 달다면 탄산수를 쓰되 시럽을 약간 섞는 방법도 있다. 진을 이용한 칵테일 진 피즈(Gin Fizz)가 진에 레몬, 시럽을 섞어 쉐이킹하고 탄산수를 채워 만든다. 마시기 편하지만 많이 달지 않고 상큼해서 여름에 잘 만들어 마신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이볼은 버번이나 피트향 강한 탈리스커에 탄산수만 섞은 심플한 쪽이다. 단맛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고 레몬, 라임을 섞으면 사실 기본주와는 전혀 다른 음료가 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취향의 세계인 만큼 당연히 정답은 없다. 기본주와 탄산수 외에 추가 재료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역시 레몬과 라임이다. 일반적으로 칵테일, 특히 하이볼과 같은 롱드링크 칵테일은 신맛과 단맛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다. 레몬과 라임을 쓰겠다면 당연히 생과일이 좋다. 비싸고 번거롭지만 맛과 향이 차원이 다르므로 투자할 만 하다. 술을 잘 마시지 않고 위스키가 낯선 친구라도 제임슨 + 토닉워터에 레몬이나 라임 한 조각 넣어주면 싫어할리 없다. 단맛이 싫다면 토닉워터를 그냥 탄산수로 바꾸면 된다. 그 외 다른 재료는 이제 창작의 영역이다. 인터넷 찾아보면 각종 과일주스를 섞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맛과 향이 나는 시럽을 넣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과일주스나 다른 맛과 향을 섞는 용도라면 위스키보다 보드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