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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 Jan 25. 2023

희석식 소주 Q&A

이제는 많이 알려진 희석식 소주 이야기다. 


희석식 소주는 일종의 화학 약품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로 "주정(95% 순수 알코올)에 알코올 함량을 낮추기 위한 물과 단맛을 주기 위한 감미료, 신맛을 내기 위한 산미료 등을 넣어 만든 것"이다(네이버 백과사전). 알코올에 물 섞고 감미료 넣은 것이라 하니 일부에서는 안동소주와 같은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와 달리 '희석식 소주'는 음식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화학 약품이라 혹평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하이트진로는 억울하다. 자사 홈페이지에 "소주는 호칭의 편의상 “희석식소주”라 부르고 있어서 소비자 뿐만 아니라 일부 전문가들 조차 물과 알코올을 단순히 혼합한 저급한 술, 또는 화학주라고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제품 특성을 정확히 반영한 용어가 아닙니다. 소주는 쌀, 보리, 고구마, 타피오카와 같은 곡물을 이용해서 발효하고 증류해서 불순물을 제거한 주정으로 만들기 때문에 곡주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식 소주”라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입니다"라고 썼다. 


우선 공업용 에탄올과 희석식 소주에 사용되는 주정은 원료, 제작 방법 등이 전혀 다르다. 공업용 에탄올은 석유를 원료로 화학적 방법을 통해 생산하고, 희석식 소주에 사용되는 주정은 곡물 발효와 증류를 통해 생산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공업용 에탄올이 훨씬 저렴하다. 주정 생산을 위해서는 고구마, 감자, 타피오카 등 곡물을 직접 발효, 증류하기도 하고 외국에서 불순물을 거르지 않은 반제품(조주정)을 수입하여 정제과정을 거치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든 기본적으로 곡물을 발효, 증류하는 과정을 통해 만든다는 점은 같다. 그러니 희석식 소주가 '식품'이 아니라거나 '화학 약품'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은 지나치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생산한 '주정'은 희석식 소주 생산에만 쓰일까? 언론기사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90% 이상이 희석식 소주에 쓰이지만 나머지는 다른 종류의 술이나 식품, 일부는 의약품이나 공업용으로도 쓰인단다. 


희석식 소주도 증류주인가? 


한국경제 2021. 6. 16.자 기사. "하이트진로의 소주 수출 브랜드 '진로(JINRO)'가 세계 증류주 판매 1위 기록을 이어갔다. 영국 주류전문지 '드링크 인터내셔널' 집계 기준 20년 연속 1위란 대기록을 세웠다." 자세히 보면 금액 기준이 아니라 판매량 기준인데 소주는 가격이 싸고 도수가 상대적으로 낮아 판매량 기준 통계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 진로도 증류주일까? 사실 곡물을 발효, 증류하여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만든 후 물을 섞어 도수를 낮추는 방법은 희석식 소주나 보드카나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위스키도 병입 단계에서 물을 섞어 일정한 도수로 낮춰 판매하는 경우가 훨씬 많고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액 그대로를 출시하면 '캐스트 스트랭스'라고 별도로 표시한다. 결국 희석식 소주도 증류주의 한 종류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럼 희석식 소주라고 낮춰 볼 이유는 없지 않나? 


주정 생산기술이 국내 도입된 것은 일제 강점기이다. 당시 일제는 세금 수입을 늘릴 목적으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집에서 술을 빚는 행위를 금지시켰는데 결국 희석식 소주가 처음 도입된 이유 자체가 금전적인 이유였다는 뜻이다. 남원상의 <우리가 사랑하는 쓰고도 단 술 소주>를 보면 일제가 세금 수입을 늘리기 위해 집요하게 전통주를 만들지 못하도록 한 과정이 잘 나와 있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광복 이후 희석식 소주가 널리 퍼지게 된 것도 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쌀을 이용한 술 제조를 법으로 금지하면서 부터이다. 이처럼 희석식 소주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탄생했고 당연히 주정 생산에도 경제성이 최우선이어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저렴한 곡물이 사용된다. 그렇게 만든 주정(알코올)에 물을 섞고 인공 감미료를 넣어 먹을만 하게 만든 술이니 사실 '좋은 술'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좋은 재료를 쓰지 않고 인공 조미료를 넣어 맛을 낸 음식을 '좋은 음식'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맛이 다른가? 


희석식 소주의 주재료인 '주정'은 말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알코올'이다. 특별한 맛이나 향이 있을리 없고 특유의 자극적인 알코올 냄새만 가득하다. 국내 주정 생산업체는 9곳이지만 생산 방법은 다 같아 무슨 차이가 있을리 없다. 소주 생산업체들은 이 주정을 물로 희석하여 알코올 농도를 40~50%로 조절하고, 여기에 자극취(알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활성 탄소(야자, 팜 등을 태워 만든 숯)를 넣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첨가한 활성 탄소를 제거하기 위해 여과하고, 맛을 내기 위한 여러 가지 인공 첨가물을 넣고, 다시 알코올 농도를 조절한 후 재차 여과하여 제품화한다(네이버 백과사전). 기본적인 방법은 똑같고 다만 첨가하는 인공 첨가물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참이슬과 처음처럼 사이에 맛의 차이가 있다면 결국 첨가물의 차이인데 이를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소주 회사들이 "대나무 숯으로 4번 걸러 이슬같이 깨끗한(참이슬)", "대관령 기슭 암반수로 만들어 술맛이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은(처음처럼)" 식으로 광고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소주 회사들도 같은 생각이다. "진로하이트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소비자들이) 제조사가 다른 소주를 (맛으로)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소주에 들어가는 물도) 정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물 때문에 맛 차이가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022. 12. 7.)". 나는 요즘 소주를 마셔야 한다면 대개 진로를 마시는데 아무래도 대학 시절 추억이 작용하는 듯 하다.   


순한 소주가 트렌드다? 


언젠가부터 소주 도수가 자꾸 내려가 이제는 17도나 16도쯤 되는 소주도 흔하다. 캘리포니아 와인 중에 도수가 높은 것들은 15도 내외도 많으니 이제 소주가 거의 와인 도수까지 내려온 셈이다. 일부에서는 순한 소주가 소주 회사들의 이익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 비판한다. "업계에 따르면 소주 도수가 0.1도 내려가면 주정을 덜 써도 돼서 병당 주정값 0.6원을 아낄 수 있다. 여기에 더 낮은 도수에 소비자는 술을 더 마시게 돼 판매량이 늘어난다(조선비즈 2023. 1. 6.)". 소주 업체들은 억울하단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 소주 본연의 맛도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또 다른 재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결국 생산 비용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더 팩트 2022. 12. 31.)". 사실 시장에 소주가 딱 한 종류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모를까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이 논쟁은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생산 원가가 낮아지면 제품 가격도 낮춰야 한다는 논리가 자본주의 경제질서하에서 성립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소주 본연의 맛'이란 '주정'의 맛을 말하는 것일까? 그럼 알코올 맛을 더 주기 위한 첨가제도 있다는 뜻일까? 


한국의 대표 술이 소주? 


나도 소주 참 많이 마셨다. 그냥도 마시고 맥주랑 섞고 백세주랑 섞고 오이도 넣고 레몬주스도 넣고 이런 저런 방법으로 오래 마셨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술로 희석식 소주가 소개되는 상황은 별로 기쁘지 않다. 희석식 소주는 일제에 의해 경제적인 이유로 생겨났고 경제 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유행해 지금에 이르고 있을 뿐이다. 소주 업체들은 고려 시대부터 있었다는 증류주의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라 강변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어찌보면 희석식 소주는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을 그래도 보여주는 서글픈 술이다. 그 맛과 향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술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희석식 소주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알코올에 물 섞은 후 인공 첨가물을 더해 사람이 마실 수 있게 만든 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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