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라는 직업을 하나로 뭉뚱그려 말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단체에서 일하는 변호사와 대기업 사내 변호사는 아예 다른 직업이고 서초동 개인 변호사와 대형 로펌 변호사들도 일과 생활에 차이가 제법 크다. 그 중 로펌 변호사는 말 그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다. 내가 한 달에 한 번 가는 단골 미용실 미용사로부터 헤어컷이라는 서비스를 제공받고 그 댓가를 지불하는 것처럼 내 고객들도 나에게 이러저러한 내용의 서비스를 요구하고 그 댓가를 지불한다. 서비스의 내용이나 지불하는 비용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사실 똑같다. 그런데 변호사, 특히 로펌 변호사에게는 미용사에게는 없는 어려움이 있다.
가끔 경찰관이나 검사들이 '변호사는 진실을 다 알면서도 왜 그러느냐"라고 오해할 때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변호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모든 진실을 털어 놓지 않으면 도움을 드릴 수 없다"라고 경고하는 장면도 보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거의 대부분의 고객(의뢰인)들은 자기 변호사에게도 말하고 싶은 부분까지만 말한다. 그런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도리어 "변호사님,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라고 반문하는 의뢰인도 보았다. 로펌 변호사들의 고객은 대개 기업(회사)이지 그 기업의 임직원 개인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무엇인가 문제가 된 임직원 개인들은 로펌 변호사를 자기 변호사라고 생각 안하는 경우가 제법 많고, 변호사들의 일은 더 어려워진다.
변호사는 무엇이든 질문을 할 수는 있지만 진실을 말하라고 강요할 방법은 없다. 고객(의뢰인)의 말을 '진실'로 믿고 그에 맞는 법률적인 솔루션을 마련하는게 서비스업 종사자인 변호사의 일이다. 간혹 변호사 본인도 자기 의뢰인의 말을 개인적으로는 믿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곤혹스러운 경우가 있으나 변론을 포기하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 하지만 개인 변호사에 비해 로펌은 1회성 고객, 그러니까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고객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회사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에게 일거리를 줄 고객이니 그 중 어떤 일이 하기 싫다고 안 맡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 물정 모를 때는 '변호사는 하기 싫으면 안 맡으면 그만'이라 생각했는데 적어도 로펌 변호사들은 그렇게 하기가 사실 쉽지 않다.
이번에는 회사 직원 A가 내부 자료를 몰래 빼돌린 것 같으니 고소장 작성해 달라는 요청이다. 회사는 B, C도 가담했다고 의심하면서 한꺼번에 고소하자는데 내가 보기에는 근거가 없다. 막연한 추측으로 고소하면 역으로 무고죄가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하자 고객은 '그럼 다른 로펌으로 가겠다'고 한다. 한 건 뿐이라면 크게 상관 없을 수도 있지만 로펌 입장에서 회사는 앞으로 계속 일을 따내야 하는 고객인 만큼 순순히 다른 로펌으로 가라고 할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거래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의견서 달라는 요청을 받아 살펴보는데 회사 담당자가 따로 전화해 '꼭 성사해야 하는 거래'라고 두 번 세 번 강조하며 의견서 보내기 전에 먼저 상의해 달란다. 누가 봐도 법적으로 문제 안 된다는 의견서를 달라는 요구인데 객관적으로 보면 리스크가 없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생각에 그 판단 기준은 '객관성'이다. 의사가 환자가 원한다고 병이 심한데 "괜찮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변호사도 법적 문제가 있음에도 의뢰인이 원한다고 "문제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의뢰인이 진실을 다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객관적인 자료나 상황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음을 지적해야 하고, 의뢰인의 요구에 무리한 측면이 있으면 역시 이를 지적하는 것이 옳다. 변호사윤리장전은 "변호사는 업무처리에 있어서 직업윤리의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한 신속하게 의뢰인의 위임목적을 최대한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라고 정하는데 직업윤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객관성' 아닐까.
거의 매번 로펌들은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돈 많은 기업들만 변호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로펌들은 영리를 목적으로는 사기업이니 더 많은 수익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비난함은 현실적이지 않고 동의하기도 어렵다. 흔히 살인자도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는 것처럼 누구나 비용을 지불하고 법률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고 그 자체를 비난할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도리어 로펌 변호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객관성'을 잃지 않는 것 아닐까 싶다. 혹시라도 객관성을 원하지 않는 고객이 있다면 정중히 돌려보내야 나중에라도 탈이 없다. 변호사윤리장전을 다시 보면 1조에 "변호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한다고 하는데 자기가 하는 업무에 있어 '객관성'을 잃지 않는 것이 그 출발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