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주관이 강한 듯 하면서도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무작정 따라가는 묘한 행태를 보인다. 그 중 하나가 흔히 "3대 무엇무엇", "5대 무엇무엇" 아닐까 하는데, "서울 3대 호텔뷔페", "부산 3대 밀면", "춘천 3대 막국수" 종류도 참 많다. 심지어 미국인들은 전혀 모르는 "미국 3대 캐년", "미국 3대 버거", "샌프란시스코 3대 커피"까지 이쯤되면 못말리는 수준이다.
위스키도 예외는 아니어서 "블렌디드 3대장", "싱글 몰트 3대장", "버번 입문 3대장" 다 있다. 이런 3대장, 5대장은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 예전에는 신문이나 잡지 아닐까 싶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아서 누군가 SNS 등에 올리기 시작하면 그게 퍼져 나가는 듯 싶다. 그렇다 보니 일관성도 없어서 어디서는 "블렌디드 위스키 3대장"이 "조니워커, 발렌타인, 시바스리갈"이라고 쓰고, 또 어디서는 시바스리갈 대신 로얄살루트를 넣는다. "싱글 몰트 3대장"도 마찬가지라 대개 "글렌피딕, 발베니, 맥켈란"을 꼽지만 다른 사람은 발베니 대신 글렌리벳을 넣는다. 솔직히 발베니는 글렌피딕이나 글렌리벳에 비해 생산량이 매우 적어서 무엇을 기준으로 "3대장 중 하나"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덕분에 발베니는 매장에 나오는 족족 팔려나가 수입사만 신나겠지만... 발베니 12년은 부드럽고 좋은 위스키이지만 그렇게 '오픈런'까지 해서 구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버번 입문 3대장"이라고 하면 대개 "메이커스 마크, 와일드터키, 버팔로트레이스"라고 하지만 사실 이건 그동안 시중에서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웠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전 세계적인 판매량으로 따지면 짐 빔이 빠져서는 안 되겠고, 초보자가 마시기 편한 버번이라고 하면 도수가 50도인 와일드터키 8년 보다는 크게 차이 안 나는 가격에 도수는 45도인 불렛 버번이 좀 더 편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피트 위스키의 경우 3대장도 제각각인데, "라가불린, 라프로익, 아드벡"을 꼽기도 하고 보모어나 탈리스커를 넣기도 한다. 이쯤 되면 정말 기준이 무엇인지 애매해진다.
사실 3대장, 5대장을 나름 꼽아보는 것이야 무엇이 나쁘겠나. 하지만 마치 어떻게든 그 3대장을 맛보아야 하고 3대장이 가장 좋은 위스키인양 '오픈런', '품절' 상황으로 이어지는 세태는 아무래도 못마땅하다. 싱글 몰트의 경우 세계 판매량으로 하면 아마 글렌피딕, 글렌리벳, 맥켈란 정도가 3대장이겠지만 판매량이 많다고 좋은 꼭 좋은 위스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글렌피딕 12년과 글렌피딕 18년은 내 기준에서는 사실 아예 다른 술인데 '3대장 글렌피딕'은 그 중 무엇을 말하는 걸까? 취향의 세계에 절대적인 기준 따위가 있을리 없다. 하나하나 기회가 되는대로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 자기 취향을 찾아가면 충분하다.
얼마전에 집 근처 이마트에서 '글렌 고인(12년)'을 처음 보고 호기심에 한 병 구입해 마셔보고 웹 사이트도 기웃거렸다. 피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색소도 넣지 않는다는 부드러운 위스키로 나름 괜찮았다. 이런 종류라면 글렌 킨치나 글렌 모린지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글렌 고인도 그에 못지 않았고 위스키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에게 권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새로운 위스키를 하나 접하는 경험이 또한 즐거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