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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 Feb 10. 2023

겨울, 기네스

맥주는 아무래도 여름에 어울리는 술이다. 추운 겨울날 마시는 차가운 맥주, 냉장고 같은 아이스하키 관람석에서 벌벌 떨며 마시는 맥주도 색다르지만 역시 뜨거운 태양 아래 시원하게 넘어가는 라거만큼 맛있는 맥주는 없다. 그래서 겨울에는 여간해서 맥주를 잘 안 마시는데 유독 겨울에 더 좋은 맥주가 기네스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기네스 오리지널과 드래프트

대형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기네스 맥주는 '기네스 드래프트'와 '기네스 오리지널' 두 가지인데 '기네스 드래프트'를 마셔야 한다. 사실 기네스 오리지널은 일반 맥주와 비슷한 탄산과 질감을 갖고 있어 역시 여름에 더 잘 어울린다. 반면 기네스 드래프트는 어찌보면 맥주가 맞나 싶을 특이한 질감으로 분명 보리로 만드는 맥주의 한 종류이지만 그 자체로 독자적인 술의 한 종류 같다는 느낌도 든다. 맥주하면 떠오르는 짜릿한 탄산이나 청량감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기네스 드래프트는 쌉쌀한 맛과 구수한 보리향, 부드럽고 매끄러운 질감으로 마시는 맥주다. 일반적인 맥주가 '목넘김'으로 마시는 술이라면 기네스는 먼저 입술로 마시는 술이다.


다른 맥주는 병이나 캔 그대로 마셔도 상관 없지만 기네스 드래프트 만큼은 꼭 잔에 따라야 한다. 광고를 보면 반드시 전용잔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느긋하게 맥주 한 잔 하면서 그렇게 엄격하게 따지지 말자. 하지만 구입한 병이나 캔 하나가 다 들어가는 여유 있는 크기이어야 한다. 기네스는 조금씩 따라 마시는 것보다 병 또는 캔 하나를 한꺼번에 잔에 따라 표면의 크림 같은 질감의 거품을 느끼며 천천히 마시는 맥주다. 탄산이 적으니 조심스럽게 따를 필요 없고 80% 정도 되는 분량을 한꺼번에 따른다. 잠시 기다린다. 표면의 거품이 자리를 잡으면 나머지를 조심스럽게 다 따르면 된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유투브에 '기네스 따르는 법'으로 검색하자. 사실 다른 맥주도 이런 식으로 따르면 적당한 양의 거품이 얹혀 탄산이 빠지는 것을 막아주고 모양도 좋다. 대개 맥주잔을 기울여 거품 안나게 조심스럽게 따르는데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경험상 기네스 드래프트는 병맥주보다 캔맥주가 낫다. 또 가끔 기네스 드래프트를 생맥주로 파는 가게들이 있는데 병이나 캔맥주와는 비교가 안 될만큼 맛있으니 꼭 한 잔 주문해 보시길! 언젠가는 쓸쓸하게 비 뿌리는 초겨울 아일랜드 더블린의 펍에서 기네스 한 잔 마시자고 내 버킷리스트 상단에 일치감치 올려 놓았다. 탄산이 부담스럽지 않으니 음식과 함께 즐기는 반주로도 좋다. 기본적으로 쓴맛이 강하고 보리향이 올라와 대부분의 음식과 잘 어울리나 샐러드나 생선회처럼 맛이 강하지 않은 음식에는 추천하지 않는다. 기네스의 강한 맛과 향 때문에 자칫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찜닭이나 갈비찜, 돼지갈비 같은 양념이 강한 고기 요리에는 아주 좋다. 기네스로 만드는 '폭탄주'도 있으니 흔히 '아이리쉬 카밤', '아이리쉬 밤'이라고 부르는 칵테일이다. 기네스에 초콜렛 맛 나는 술인 '베일리스'와 아일리쉬 위스키 제임슨을 넣는 이름부터 '폭탄(bomb)'인 술인데 맥주에 소주만큼 독한 베일리스에다가 40도짜리 위스키를 섞은 술이니 객기 부려 '원샷'으로 털어 넣다간 정말 폭탄 맞은 것처럼 쓰러질지 모른다. 벌써 옛날 얘기지만 내가 한 번 그랬다.


기네스가 어색하다면 "맥주라는 술은 벌컥벌컥 들이켜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짜릿함을 즐기는 술"이라는 선입견이 너무 강해 그럴지도 모른다. 하이트, 카스, 테라 같은 국산맥주들이 다 비슷한 가벼운 라거라 우리 생각도 그렇게 굳어진 셈인데 사실 맥주는 정말 다양하다. 하이트, 카스가 맛과 향보다는 목으로 넘어가는 짜릿한 탄산의 느낌을 즐기는 술이라면 기네스는 그 질감과 향을 즐기며 천천히 조금씩 마셔야 좋은 맥주다. 그저 한 잔 술에 취할 목적이라면 희석식 소주든 밍밍한 맥주든 그 두 가지를 섞어 마시든 별 상관 없겠지만, 매번 그렇게 마시기엔 세상은 넓고 맛있는 술도 많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흥미와 관심이고, 작은 관심들이 모여 취향이 되고 삶을 더 풍부하게 한다고 믿는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기네스 한 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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