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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 Nov 13. 2023

[로펌 일상] 10. 이메일 2

변호사들은 다 말 잘하고 글 잘 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아래 문장들은 모두 최근 실제로 내가 다른 변호사들로부터 받은 이메일에서 골랐다.  


<회사측에서 별도로 검토하지는 않은 것으로 이해됩니다.>

<회사에 확인해보는 것은 좋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내용은 알고 계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위 세 문장이 모두 같은 이메일에 있다. 나도 습관처럼 ‘~것’을 쓰지만 대표적인 군더더기다. 거기에 굳이 쓸 필요 없는 수동태까지 아주 풍년이다. 나는 "별도로 검토하지는 않았습니다“, ”확인해 보면 좋겠습니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가 더 좋다. 표현이 길다하여 유식해 보인다거나 공손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괜히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경우도 보이는데 '사료됩니다' 라던가 '가사', '일응' 같은 표현들이다. 오랜 기간 자주 쓰다보니 그냥 나오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유식해 보이기 보다는 불친절하거나 도리어 사려 깊지 못하다고 느껴진다. 간략하고 간명한 표현이 가장 쉽고 아름답다. 


<미리 테스트를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때 화상 회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내용 모두 질문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것'은 자주 ‘~같다’로 이어진다. '~같다’라는 표현은 확신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는 대상에는 쓰지 않아야 옳다(김정선).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와 달리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는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그냥 어색하다. “테스트를 해 보면 좋겠습니다”, “회의 가능합니다”, “질문했으면 합니다”로 쓰면 간명하다.


비슷한 예로 ‘~하여 보다’도 정말 많이 쓰인다.


<진행 상황을 확인하여 보았습니다.>

<가능한 범위에서 생각해 보아 주세요.>

<업무를 처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확인하였습니다’”, “생각해 주세요”, “처리하겠습니다”라고 써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 번 더 말하지만 길다고 공손한 표현이 아니라 그냥 어색하다.




<변호사님, 잘 정리되어 ’있어서‘ 제목만 수정하였습니다.>

<예비 장표의 성격을 갖고 ‘있어’ 별도 파일로 나누었습니다.>

<향후 우리의 일정에 ‘대해서’ 문의하셨습니다.>


위 문장의 ’있어서‘, ‘있어’, ‘대해서’도 굳이 쓸 필요가 없다. ‘눈이 덮여 있는 마을’ 보다는 ‘눈이 덮인 마을’이 간명하다(김정선). 문법적인 내용은 잘 모르지만 없어도 말이 되면 군더더기라고 생각한다. ‘~에 대해’라는 표현도 습관적으로 많이 쓰는데 불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냥 ‘일정을 문의하였다’로 쓰면 깔끔하다.      


<다음달 중순 정도에는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후배 변호사가 회사 관계자로부터 들은 내용을 이메일로 적어 보냈는데 전문임을 표시해야 하고 수동태도 반복되어 영 불편하다. 아예 “~로부터 들은 내용”이라고 제목처럼 적고 이하 “다음달 중순 정도 마무리 예상”처럼 보고서식으로 요지를 기재하면 쓰기도 읽기도 편하다.


<상세히 살펴보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직접 방문하시어 제출하시는 것으로 논의되고 있어 우선 회람하여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수동태의 반복만큼 억지로 명사형을 만들어 쓰는 표현도 참 어색하다. 또 어떤 후배들은 겸손이 지나쳐 저 짧은 문장에 ‘시’가 세 번 등장하기도 한다. ”상세히 살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접 방문하여 제출하기로 논의 중이므로 우선 회람 부탁합니다”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변호사는 결국 말과 글로 먹고 산다. 명문장은 바라지도 않고 그냥 깔끔한 글을 쓰고 싶지만 늘 마음 뿐이다. (참고로  위에서 인용한 책은 오랜 기간 교정일을 하고 있는 김정선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이다. 2016년 1월에 나온 책인데 내가 구입한 책은 무려 초판 38쇄다. 어려운 맞춤법 책이 아니라 나름 뭉클한 이야기도 들었으니 한 권씩 구입해도 후회는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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