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은 여러 사람이 팀을 이뤄 일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회의가 많다. 어느 회사, 조직이나 회의는 꼭 필요하지만 자칫 시간 낭비가 되기 일쑤다. 나름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는 로펌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원활한 회의 진행을 막는 훼방꾼들은 그 행태도 다양하다.
우선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무실에 어떤 나이 많은 시니어 변호사는 10~15분 지각은 다반사고 심할 때는 30분씩 늦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회의는 한창 진행 중인데 뒤늦게 들어와서는 다시 처음부터 설명해 보라는 식이니 아주 속 터진다. 이런 일이 자주 있다보니 그 분 모시고 일 하는 변호사들은 아예 회의 대신 이메일을 쓰거나 회의는 따로 하고 별도로 찾아가 설명하기도 하는데 다 시간 낭비 아닌가. 내가 대우를 받으려면 다른 사람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일치감치 회의실 가운데 자리를 차고 앉아 회의 시간 내내 혼자 떠드는 사람들도 문제다. 30분 회의에 29분 혼자 떠들거면 차라리 이메일로 요지만 적어서 돌리는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회의 시간을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훈화 시간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회의를 왜 하는지부터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만약 새로 합류한 멤버에게 그간 상황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경우라면 1:1로 따로 진행할 일이다. 이런 부류 중에 최악은 본인의 치솟는 감정을 억지로 나눠주려는 사람들이다. 고객의 어렵고 억울한 사정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그 억울한 마음을 변호사들도 똑같이 가져야 하나? 회의 시간 내내 열변을 토하는데 정작 듣는 사람은 괴로울 뿐이다.
사실 아무 사전 자료 없이 맨 땅에 헤딩 식으로 진행하는 회의는 많지 않다. 거의 대부분 사전에 회의 자료가 배포되거나 적어도 배경 설명에 대한 문건/이메일이 회람되는데 한 글자도 읽지 않고 회의에 들어와서는 지금부터 설명하라거나 다른 사람들은 활발히 의견 나눌 때 멀뚱멀뚱 쳐다보는 사람들도 민폐다. 회의는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지 나를 가르쳐주는 학교 수업이 아니다(수업을 원하거든 수업료를 내시라). 또 회의 시작하자마자 지난 주말 골프 얘기, 사무실에 대한 불평, 온갖 신변잡기로 회의 시간을 다 잡아 먹는 사람들도 참 불편하다. 회의 참석자 중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우선 회의 시간을 짧게 잡고 가급적 비대면 회의로 진행하면 도움이 된다. 회의실을 사랑방으로 생각하는 분들에 대한 사전 예방책이다.
특정인이 문제가 아니라 회의 참석자들이 전반적으로 힘든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집단 무기력증에 빠지는 경우다. 별로 영양가 없는 회의에서 이런 경우가 많은데 회의 진행자가 사전에 내용 정리하여 참석자들로부터 동의를 받는 식으로 짧게 진행하면 도움이 된다. 어차피 이런 회의에서 활발한 토론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빠르게 넘어가자. 상황이 힘들 때 회의를 하면 가끔 서로 남탓하며 얼굴 붉히는 경우도 힘들다. 특히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자기 책임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아군'이라는 점을 왜 자꾸 잊어 버리는지 모르겠다.
COVID 이후 비대면 회의가 많아지니 새로운 민폐들도 많다. 비대면 회의는 꼭 사무실에 나오지 않아도 회의 참석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지켜야할 매너는 있다. 아이들 우는 소리, 길거리 경적 소리, 네비게이션 안내 멘트, 계산대 점원 목소리 등등 온갖 소리가 다 들리니 도무지 집중이 어렵다. 정 부득이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한 조용한 장소를 찾아보자. 비대면 회의는 듣는 사람의 반응을 볼 수가 없는 만큼 특별히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면 다 동의한다고 보고 넘어가야 하는데 여전히 미심쩍은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도 괴롭다. 이런 분들이 비대면 회의로는 토론이 안 된다며 자꾸 대면 회의를 고집하는데 원인 진단부터 틀렸다. 반대로 얼굴 안 보인다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무임승차하거나 심지어 접속은 해 놓고 딴 짓하는 사람들은 솔직히 괘씸하다. 효율적인 비대면 회의를 위해서는 진행자를 미리 정하고, 진행자는 회의 순서와 내용을 미리 구상하고 들어가야 한다.
내일도 이런 저런 회의가 많은데 훼방꾼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