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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 Apr 24. 2023

[로펌 일상] 8. 옷차림

‘패션’이라 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법조인에게도 옷차림은 나름 중요하다. 공무원이든 회사원이든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많은 평가를 받아 보고 나름 여러 사람 평가도 해 보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 ‘인상’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고 거기에 옷차림도 일정 부분 기여한다. 그 뿐 아니라 어떤 복장을 하느냐가 그 사람을 나타내거나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그가 속한 조직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한다. 


군법무관 3년 내내 군검찰관으로 일했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영내에서도 군복을 입지 않았다. 같은 법무관이고 내 상급자인 법무참모는 늘 군복을 입었지만 유독 군검찰관과 헌병대 수사관은 영내에서도 양복을 입었다. 무슨 규정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내 선배들도 후배들도 그렇게 했다. 그 때는 부대 내에서 범죄수사를 하면서 계급장이 보이면 나 보다 계급 높은 사람을 어떻게 조사하겠냐는 명분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낮은 계급을 숨기고 ‘수사’라는 권한을 내세우고 싶었는지 모른다. 


초임검사 시절 그 때만 해도 선배 검사들이 후배들의 옷차림 가지고 지적하는 일이 제법 있었다. 대개 짙은 네이비 아니면 그레이 정장에 화이트 셔츠, 튀지 않는 넥타이와 구두끈이 있는 검정색 구두를 신었는데 복장 규정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 대개 부장이나 선배들이 입는 대로 따라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관공서는 여름 냉방이 신통치 않아 노타이에 반팔 셔츠를 입었는데, 그 때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그렇게 입으라는 공문도 내려오곤 했다. 나도 멋 모르고 끈 없는 블랙 로퍼를 신고 갔다가 선배 검사로부터 한 소리 들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때도 가끔 남다른 패션 감각을 보여주던 사람들이 간혹 있었는데 어김없이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에 비해 여자 검사들은 그렇게 비슷하게 입지는 않았지만 튀는 복장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뒷말이 나왔다. 언젠가 친하게 지내던 선배 여검사가 그 해 초임 여검사 중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오거나 여름에 민소매를 입고 출근한 사람이 있었다며 흥분(?)하던 기억도 있다. 공무원을 그만두자마자 처음으로 브라운 구두를 하나 구입했는데 뭔가 새롭게 출발한다는 느낌도 들고 약간 일탈(?) 같은 느낌도 있었다. 




로펌도 옷차림이 아주 자유롭지는 않다. 사무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정장을 고수한다. 일 하면서 여러 기업 사람들을 만나지만 비서실 정도를 제외하면 정장을 갖춰 입는 회사는 이제 거의 없는 듯 한데 로펌은 외국도 그렇고 여전히 정장을 입는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회의가 많아지면서 약간 느슨해지는 경향도 있기는 하지만 특히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될 경우 한여름이라도 거의 예외 없이 넥타이까지 갖춰 입는다. 더운 여름은 역시 고역이지만 다들 그렇게 하니 어쩔 수 없다. 보수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긍정적인 편이다. 내가 의뢰인이라면 내 변호사는 깔끔하게 정장을 갖춰 입고 잘 손질된 구두를 신고 나타나면 좋겠다. 나는 그런 변호사의 외관이 상대방에게 '잘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믿는다. 


비싼 옷을 입을 필요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몇 가지 신경 쓰는 부분은 있다. 정장은 대개 별다른 무늬가 없는 짙은 네이비나 그레이를 입는다. 스트라이프나 패턴이 너무 강하거나 약간 튀는 색상의 정장은 특히 클라이언트를 상대할 때는 잘 입지 않는다. 블랙도 입지 않는데 나는 블랙 정장이 너무 답답한 인상을 준다고 생각한다. 셔츠나 타이는 개인 취향이겠는데 내가 좋아하는 색은 블루, 버건디, 그린이다. 공무원 때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인지 블랙 구두도 상가집 외에는 신지 않는다. 법관이나 검사를 거쳐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화이트 셔츠에 솔리드 타이를 고수하는 분들도 있는데 개인 취향이겠지만 나는 그것도 별로라고 생각한다. 많은 변호사들이 모여 있다 보니 옷차림도 천차만별이라 얼핏 다 비슷해 보여도 가만히 보면 남다른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사람부터 허리춤에 셔츠 한 자락 삐져 나온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까지 정말 다양하다. 




옷차림에 대해 예전에는 조직 문화 측면이 강했다면 점점 자기 표현이 강해지는 느낌이다. 회색 바지에 네이비 자켓을 걸치고 출근한 부장검사도 보았고, 크림색 데님 팬츠에 깅엄 셔츠를 입고 구내식당에서 밥 먹는 선배 변호사도 보았다. 나도 예전에는 다른 사람 눈치를 참 많이 보았는데 나이를 좀 먹다보니 꼭 그럴 필요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일은 핑크색 셔츠를 입고 출근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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