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참 다양한 공간에서 일했다. 처음 검사가 되었을 때는 내 방이 없었다. 그 때는 6개월간 선배 검사방에 책상 두고 얹혀 살면서(?) 일을 배우라고 했다. 곧 독립(?)해서 내 방이 생겼지만 검사실은 엄밀히 말해 수사관, 실무관과 함께 쓰고 많은 사건 관계인들이 드나드니 ‘내 방’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검사들이 연차가 올라가면 검사실 외에 대개 ‘집무실’이라고 부르는 별도 공간이 주어지기도 한다. 청사 사정이 좋으면 낮은 연차에도 ‘집무실’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서울 근무할 때 우리 부에는 가장 선배인 수석검사에게만 집무실이 있었다. 집무실이 따로 없는 다른 검사들은 사람 좋은 공중보건의 방을 공동 휴게실처럼 썼다. 아침에 출근하면 대개 거기 모여서 믹스커피에 담배 한 개피 피우며 수다를 떨었다.
지방 근무 때는 운 좋게도 청사 사정이 괜찮아 나에게도 ‘집무실’이 있었다. 실제로 그 방에서 일하는 검사도 있지만 나는 주로 쉬거나 전화를 받거나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가끔 쪽잠을 자는 용도로 썼다. 과천청사를 쓰는 법무부에서는 과장님은 되어야 자기 방이 생긴다. 그래도 검사들은 고맙게도 창가 자리로 배정해 주었다. 우리 과장님은 대개 전화로 검사를 불렀지만 급하면 자기 방에서 큰 소리로 검사 이름을 불렀는데 그럴 때마다 서류 챙겨 과장님 방으로 얼른 뛰어가는 게 일상이었다. 어쩌다 청와대를 가보았더니 비서실 건물은 상상 이상으로 좁고 낡았다. 그래도 법무부 때는 다른 사람보다 좀 넓은 책상에 가림막(?)도 있었는데 청와대 비서실은 그마저 생각하기 어려웠다. 어째 연차가 올라올수록 근무 환경이 나빠진다고 푸념도 많이 했다.
로펌에 오면서 다시 내 방이 생겼다. 개인 변호사들은 자기 사무실을 제법 멋지게 꾸미기도 하던데 로펌은 이미 정해진 공간이라 쉽지 않다. 사무실마다 다를 수는 있겠는데 대개 고객들은 회의실 등 별도의 공간에서 만난다. 그래서인지 회의실은 근사하게 꾸며도 변호사들 방은 좋게 말해서 심플하다. 생각보다 공간이 좁다. 변호사들마다 방을 하나씩 주려다 보니 가벽으로 공간을 구분한 경우가 많아 방음이 잘 안 된다. 처음에는 신경 쓰이는데 몇 년 지나면 그냥 무시하고 산다. 옆 방 변호사님 오늘 저녁 약속이 있다는 걸 내가 아는 것처럼 내가 주말에 지방갈 일이 있다는 걸 옆 방 변호사님도 안다. 우리 사무실은 약간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연차에 상관 없이 방 크기가 일정하고, 흔한 명패도 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밖에서 보면 누구 방인지 구분이 안 된다. 누군가를 찾아가려면 해당 층에 가서 비서에게 방을 물어봐야 한다. 신입 변호사들은 가끔 자기 방도 헷갈려 옆 방에 잘못 들어가기도 한다. 나도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나름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똑 같은 방이지만 그 사이에도 선호는 있다. 어떤 건물은 구조상 어쩔 수 없이 창문이 없는 방이 생기기도 하는데 주니어들은 이런 방을 ‘먹방’이라고 불렀다. “O년차는 되어야 먹방 탈출한다, 어느 분야를 지원하면 먹방에서 빼준다더라” 근거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말들이 돌았다. 일반적으로 건물 구석을 선호하고 출입문 근처를 싫어한다. 구석 방이 어떤 사정으로 비었을 때는 번거로움을 무릎쓰고 굳이 방을 옮기는 분도 있다. 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적어 조용하다는 논리인데 나는 지금껏 구석 방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으나 지나다니는 사람 때문에 방해 받은 적은 거의 없다. 다른 차이가 없으니 방 위치를 가지고 자기 지위를 인정받겠다는 생각은 혹시 아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나 대개 고위직 출신이거나 연차가 높은 분들이 구석 방을 차지하고 계셨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이제 여러 기업들이 정해진 방이나 자리를 주지 않고 ‘공유 오피스’ 개념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회사에 가도 빈 자리 한 곳에 앉아 노트북 꽂고 일하는 식이다. 더 나아가 원래 회사 아닌 다른 곳에 ‘거점 오피스’를 따로 두어 출퇴근 시간도 아끼라는 회사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편리하고 비용도 적게 들고 효율적이라 하겠지만 왠지 낯설다. 아직까지는 로펌들이 변호사들에게 각자 방을 주고 있어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원, 검찰에 있다가 새로 입사한 변호사들 방에는 대개 재직기념패나 기념 액자 같은 물건을 잘 보이는 자리에 진열해 놓은 경우가 많다.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은 학위기를 자랑스럽게 걸어 놓기도 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나마 몇 개 안 되는 기념패며 액자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검찰 생활이 짧다 보니 자랑할 것도 없어 청와대 근무 시절 액자를 가장 가운데 두기도 했다. 아마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표시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걸어온 길이 곧 자기를 나타내는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개월 몇 년이 지나면 어떤 사람은 처음 그대로 기념패며 액자를 잘 모셔두고, 어떤 사람은 싹 치워버린다. 나는 다 치워버린 쪽이다. 처음에는 집 어딘가에 보관했었는데 그나마 이사하면서 대개 정리한 듯 하다. 그런 예전 물건들이 나를 보여준다는 생각은 솔직히 유치하다. 추억은 가끔 꺼내 보면 충분하지 내 주위를 항상 둘러싸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면 지나간 어제에 대한 집착은 사람을 늙고 추하게 한다. 나는 언제나 '오늘'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