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에이 설렁탕집에서는 흑미밥을 준다

SUN NONG DAN - 엘에이 한식 유행을 이끄는 국밥집

by 퍼시픽워드샵


엘에이 한식 유행이 살짝, 국밥으로 넘어간 것 같다. 지난번엔 한국에서 오신 엄마 아빠를 모시고 코리아타운의 설렁탕집을 찾았다. 한국 가족들, 중국 유학생들(이들에게 한국 음식이 인기다), 어르신들 사이로 다소 당당하게 백인 손님들이 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씩 하고 있었다. “와, 여기는 외국인도 많구나.” 부모님에게는 백인이 동양인 사이에서 국밥을 먹는 게 신기했나 보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K팝, K푸드가 트렌드이긴 한지 국밥집 내 외국인들, 특히 백인의 비중이 많아졌다.


20년 전 미국 동부에 살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베트남 쌀국수가 막 올라오던 시기였는데, 쌀국수집에 백인이 있으면 ‘와, 이런 데에 백인도 와?’라고 괜히 한 번 더 쳐다보곤 했었다. 지금은 베트남 쌀국수나 태국 음식이 미국에서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그땐 그랬다. 1985년 영화 <조찬클럽(The Breakfast Club)>엔 부잣집 클레어가 점심으로 스시를 가져오는데 학생들이 “그게 뭐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한때 스시가 놀라웠고, 태국 음식이 낯설었고, 김치가 새로웠듯. 넥스트는 국밥이 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


엘에이 국물음식 3대장. 왼쪽부터 북창동순두부, 진솔국밥, 선농단.


미국 내 한식의 메카인 엘에이의 국밥 씬은 역시나 다양한데, 요즘 교포 셀러브리티와 로컬 푸드 인플루언서들이 원픽으로 꼽는 곳은 의외로 (소 아닌) 돼지국밥을 하는 진솔국밥이다. 짜고 단 대부분의 미국 한식에 견주면 깔끔하지만, 부산에서 침 흘리며 먹었던 돼지국밥의 맑고 깊은 맛까지는 아닌 것 같다. 진솔국밥은 엘에이에 몇 개 지점이 있고 모두 잘 된다. 최근 오리지널 주인이 OC쪽에 가게를 새로 냈는데 거기가 제일 맛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소 육수가 베이스인 국밥집 중에 최근 유명세를 제대로 탄 곳도 있다.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Beef)>에 등장한 한밭설렁탕이다. 허물어져 가는 노포인데, 설렁탕이 영어로 shul-lung-tang이라고 적혀 있다. 외국인들 사이 줄 서서 기다리며 미국인들에게 설렁탕이 이렇게 핫할 줄이야,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도 엘에이에는 국밥집이 많다. 그중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곳은 선농단이다. 노포는 아니다. 북창동 순두부 같은 기업형 설렁탕집이다. 그런데 뭐랄까, 기업의 맛이 안 난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이었던 곳. 더군다나 이제는 아이가 있다 보니 매장 넓고 화장실 깨끗하고 하이체어를 주는 패밀리 프랜들리 식당을 찾게 된다.


많은 연예인들이 다녀간 흔적과 선농단의 기본찬.
선농단의 메뉴와 따귀해장국


여기서 좋아하는 건 도가니탕. 미국은 도가니가 버리는 부위인지, 도가니 양이 엄청 많다. 다양한 고기가 믹스해서 나오는 원기탕도 원기탕도 푸짐해서 좋다. 두 끼 정도 먹을 수 있는 든든한 양. 기본찬은 부추김치, 일반 김치, 젓갈류가 나오고 물론 리필된다. 식당에서는 물조차 돈을 내고 마셔야 하는 미국에서 반찬을 리필해 주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모닝 메뉴가 있다. 평소 17-20불 하는 설렁탕, 도가니탕, 따로국밥, 육개장을 거의 반값인 11.99에 먹을 수 있다. 지인은 코로나 전에는 6.99인 적도 있었다고 아쉬워했지만 물가가 살인적인 요즘은 이것만도 감지덕지다. 저녁시간에는 탕보다 갈비찜이나 수육 같은 메인 디시를 시키는 테이블도 많다. 갈비찜을 시키면 테판야끼집에서 하듯 즉석에서 토치로 치즈를 구워준다. 갈비찜 위로 불이 화르르 붙는 모습을 보며 어린 친구들과 외국인 손님들이 탄성을 지른다.


아기와 오면 죽통에 고기육수를 덜어놓고, 다른 한 켠에 고기와 밥을 비벼서 같이 먹는다.


처음 엘에이 와서는 현지 식당만 다녔다. 한국에서 못 먹는 걸 먹어보려고. 근데 요즘은 한국 음식을 더 찾는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사실 다른 이유도 있다. 식당에서 한국말로 저기요, 부르고 싶어서다. 미국에선 식당에서 웨이터를 잘 부르지 않는다. 웨이터가 테이블을 도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왔을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는게 매너다. 한국 음식점을 가면 그럴 필요가 없다. 필요하면 필요한게 있다고 손 들고 이야기해도 된다. 한국 사람끼리는 괜찮은 그런 것들이 그리울때. 남편을 꼬셔서 코리아타운으로 간다.


미국의 한국 음식점들은 대체로 오래된 노포가 많다. 20년, 30년 전 한국에 있었을 것 같은 곳들. 가면 시간 여행을 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선농단은 지금 강남대로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다. 시간 여행이 아니라 공간 이동을 한 느낌. 선농단에서 주문을 하면 직원이 묻는다. 밥은 일반 밥으로 드릴까요 흑미밥으로 드릴까요? 처음 이 질문을 받고 너무 놀라서 어버버했었다. 아.. 흑.. 흑미밥이요.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그런데 미국에 살다 보니 이런게 그립다. 선농단에선 잠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그게 제일 좋다.


#맛있는도시산책엘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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