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해서 교사가 되었다.

자유분방한 취업 준비생이었던 나는 어떻게 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까.

by 이자까야

교직생활 20년이 넘도록 내가 가장 많이 들어왔던 말이 있다.


“네? 교사라구요? ”

“교사인 줄 전혀 몰랐어요”

“교사 느낌이 아닌데...?”


그렇다면 '교사 같다'라는 말이 무엇일까? ‘교사’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는 무채색 계열의 카디건 등의 옷을 입고 한 손엔 교무수첩과 분필을 들고 인자해 보이면서도 다소 고지식해 보이는 그런 모습을 의미하는 건가? 도대체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의 교사란 말인가?


“백댄서세요?”


몇 년 전쯤 꽃집에 선물용 화분을 하나 사러 간 적이 있었다. 찬찬히 이 꽃 저 꽃을 구경하고 있던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꽃집 사장님은 “학생이세요?”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속으로 '이 나이에 학생 소리를 듣다니... 아싸~~계 탔다~~~'고 은근히 기뻐하며 “에~이, 학생은 아니죠~. 저는 직장인입니다” 라고 입이 귀에 걸린 채(서른 중반이 넘어가면 타인에게서 '학생'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쁨 지수가 급격하게 올라간다) 대답했다. 꽃집 사장님의 “그럼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나는 “제가 무슨 일 할 것처럼 보이세요?”라고 반문했다. 2~3초 후에 꽃집 사장님 입에서 나온 말은 “혹시 백댄서 아닌가요?”... 웃고 있었지만 사뭇 진지한 사장님의 표정에 방금 들은 그 대답이 장난이나 농담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백...댄...서... 충격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다. 내가 백댄서로 보이다니?!!!


과연 나는 어떤 교사인가?


하긴... 생각해 보니 나를 처음 보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직업에 대해 대체로 이렇게 예상했다. 뮤지컬 배우, 무용 강사, 뮤지션, 헤어 디자이너 등등....그들의 예상과 추측에는 그 어디에도 학생들을 지도하는 자상하고 지적인? 학교 영어 선생님의 이미지는 없었다. 어쨌든 그런 류의 다양한 대답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던 나였지만 꽃집 사장님의 '백댄서'라는 대답은 여태껏 들었던 대답들 중에 가장 센세이션 했다. 그 덕분에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나는 어떤 교사인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소위 소명이라고 하는 나만의 교육관 또는 교육 철학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 같고 대학교 4학년 때에도 대부분의 사범대 학생들처럼 임용고시에 올인하는 그런 학생도 아니었다. 물론 나름 열심히 공부하며 생활하는 근면한 학생이었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임용고시생이라기보다는 (물론 임용고시 공부는 하고 있었다) 외국계 회사, 항공사 직원 또는 홈쇼핑 쇼호스트도 꿈꾸는 취업 준비생이었다.


교생 실습 때부터 이미지 폭망 하다...


누구나 다 알 듯이 교사 자격증을 따려면 사범대생은 4학년에 교생실습을 4주간 가야 한다. 나는 그 당시 인근 중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게 되었다. 비록 교생실습에 별 감흥이 없었던 나였지만 내 머릿속의 '교생 선생님'에 대한 막연한 로망 같은 이미지는 예전 초코파이 광고에나 나올법한 아이들에게 친절하며 풋풋하고 청초한 교생 선생님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긴 머리 찰랑이며(그 당시 나는 긴 생머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말 걸어주는 그런 따뜻한 교생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교생실습 일주일 후의 나는 소위 일진 학생들 그리고 비행 청소년들을 잡으러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강력계 형사 같은 교생이 되어 있었다.


무서운 일진 학생들


일진 아이들은 처음부터 나를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언니'라고 불렀고 학교 복도에서 나와 마주칠 때면 내가 입은 옷의 브랜드를 체크했다. 처음 교생실습 일주일 동안은 소위 좀 논다고 하는 학생들은 나를 전혀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았다. 하긴 그 학생들은 학생부 선생님들조차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나 정도의 초짜 티 나는 교생 정도는 동네 언니보다도 우스운 존재였던 것 같다. 그들은 으슥한 건물 뒤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담배를 폈고 무리 지어 다니며 동급생 또는 후배 학생들의 돈을 빼앗았다. 그러다 결국 사건이 일어났다.


일진 잡는 '추노'같은 교생 언니


영어 교생 대표로 수업 시연을 맡게 된 나는 중학교 3학년 한 교실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떨리는 수업을 하게 되었다. 수업이 10분 정도 진행되었을 때 일진 중에서 가장 키가 컸던 한 여학생이 체격이 외소하고 평소에도 겁이 많아 놀림을 받았던 한 남학생의 교복 상의를 커터 칼로 찢으며 괴롭혔다. 그 교실에 있던 모든 선생님들은 어쩔 줄 몰라하셨고 교단에서 수업을 진행하던 나는 책을 집어던지고 그 여학생을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끌고' 나갔다. 몇 시간 동안 우여곡절과 사투? 끝에 그 여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사과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 날부터 일진 잡아 교화시키는 교생이 되어있었다.


일진들의 왕 언니가 되다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한 것이 학생들과 잘 지내보려고 착하고 부드러운 교생의 이미지를 연출?할 때 보다 날것 그대로의 터프한 교생 선생님의 모습이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했던 학생들의 마음 한구석을 건드려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나는 싸움 잘하고 잘 놀던 날라리 언니가 우연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어 교생 선생님이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터프한 건 맞고 힘 쎄고 열혈 다혈질도 맞지만 나는 중, 고등학생 때 공부만 열심히 한 학생이었는데 왜 그렇게 믿고 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삶의 터닝 포인트


교생실습이 거의 끝나갈 4주 차 무렵 그때 그 일진

학생들에게 “저도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저도 언니처럼 공부라는 걸 시작해 보려 합니다”... 등등의 팬레터와 반성문 그 중간쯤 되는 편지들을 받게 되었다. 나는 어느덧 일진들의 '왕 언니'가 되어있었다. 내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학교에서 겉돌고 사고만 일으키던 아이들의 '날라리 교생 언니'가 되어버렸지만 내가 어린 학생들의 삶에 그리고 그들의 삶의 방향성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한켠 뿌듯한 보람과 기쁨으로 되돌아왔다. 나만을 위해 살아왔던 삶에서 타인을 위해서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마음속에 교사가 되고 싶다는 구체적 바람이 생긴 시점이.


벌써 20년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학교 외부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전히 내 직업이 교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다. 한 때 선생님처럼 보이기 위해 구입한 무채색 계열의 카디건과 재킷만 수십 벌이다. 나의 외모는 여전히 전형적인 선생님의 이미지와는 멀다는 사실을 이젠 스스로도 인정해야겠다. 뭐 그러면 어떤가? 학생들을 예뻐하고 사랑하며 여전히 그 아이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에너지가 있으면 된 것 아닌가? 그리고 앞으로 남은 교직생활에서도 나는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힘세고 에너지 뿜뿜 넘치는 선생님으로 남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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