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건네는 작업 멘트가 아니다. 우리 반 학부모님들이 내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교무실 제 직통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그 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업무 중에 이 번호로 전화하시면 제가 받을 수 있습니다.”
“............”
잠시 침묵이 흐른다.
하지만 나는 그 침묵을 깨고 우리 반 학부모님들에게 친절히 교무실 내 자리 직통 번호를 알려드린다. 하지만 학부모님들은 별로 탐탁지 않아하는 표정이다.
“다른 담임 선생님들은 핸드폰 번호를 다 알려주시던데....”
한 어머님이 혼잣말인 듯 아닌 듯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 그 말인 즉 다른 선생님들은 다 본인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던데 너만 왜 유별나게 행동하냐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말일 것이다.
학부모님들은 내 카톡 친구
사실 작년까지는 학급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에게 내 핸드폰 번호를 전부 공개했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학교 업무 시간이 끝나고 퇴근을 해도 퇴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예를 들어, 나의 핸드폰 번호를 학부모들이 알게 되면 의도하지 않게 학부모들과 카톡 친구가 되어버린다. 학교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일들 중 하나가 학부모들을 상대하는 것인데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학부모들 입장에서도 담임교사가 대하기 어려운 존재일 수도 있겠다) 카톡 친구라니.... 어쩌다 잘 나온 내 사진을 카톡 프로필에 업데이트라도 할라치면(우연히 잘 나와 모델은 아니어도 홈쇼핑 모델처럼 이라도 나온 그런 사진이 있다면 자랑하고 싶지 않은가?) 잠시 후 내 핸드폰에 이런 카톡이 도착한다.
“어머, 선생님 사진이 잘 나왔네요~”
“선생님, 싱가폴 여행 다녀오셨나 봐요~~ 호호호.”
나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식물 갤러리
학부모들에게서 이런 카톡을 받으면 갑자기 내가 올린 카톡 프로필 사진을 재빠르게 자체 검열하기 시작한다. 사진 속의 복장은 야하지나 않은지,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해서 체면에 금가는 그런 모습은 아닌지... 서둘러 방금 업로드한 카톡 프로필 사진을 체크 해 보니 이런! 사진 속의 나는 바다를 배경으로 시원하게 어깨와 다리가 많이 드러난 옷을 입고 있었다. 결국 킴카다시안처럼 섹시하게 나왔다고 자기만족했던(물론 내 친구들은 동조 해 주지 않았지만) 사진을 후다닥 가을 낙엽 사진으로 대체 해 버렸다. 어깨와 쇄골이 훤히 드러난 담임 선생님의 사진을 감상했던 학부모님과 어떻게 다음 날 교무실에서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진학 상담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카톡 프로필 사진은 식물 갤러리이다...
퇴근 후엔 나도 자유를 외치고 싶다!
솔직히 학교를 퇴근하면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듯 교사의 무게감과 책임감을 툭 내려놓고 자신에게 솔직한 자연인으로 생활하고 싶다. 잘 나온 내 사진을 SNS에 올려 자랑질도 하고 싶고, 내 속마음도 시원하게 표현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철저한 자체 검열과정을 통한 내 카톡 프로필 사진만이 나의 경직된 현실을 반영한다. 즉, 내 카톡 프로필 사진은 주로 식물 갤러리나 동물 갤러리에서나 볼 듯한 다육이, 해바라기 또는 강아지 사진 등으로 대체되어있다.
'내가 예민하다고?'혹시 누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비유하자면 당신의 인스타그램에 시어머님이 팔로우를 신청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시고모님, 시아주버님, 시누이 등등의 분들이 팔로우를 계속 신청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당신의 인스타그램 사진에도 친구들과 얼큰하게 술 한 잔 하는 모습, 노래방에서 신나게 열창하는 모습 대신에 요리하는 모습 또는 우아하게 책을 읽는 모습 등으로 대체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