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2교시 수업을 마치고 잠시 커피를 마시며 숨을 돌리고 있던 그때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사색이 되어 교무실로 달려왔다.
“선생님~ 선생님~~~ 큰일 났어요!”
“빨리 교실 쪽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이는 다소 상기되고 흥분된 표정으로 외쳤다. 우리 반 아이가 교무실 문을 다급히 열어젖히고 얼굴을 들이밀 때부터 뭔가 느낌이 불길했다. 왜 항상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않던가? 나는 학생과 서둘러 교실 쪽으로 뛰어갔다. 교실로 향해 뛰어가는 그 잠깐 동안 머리로 온갖 생각을 했다.
‘책상 위에서 뛰다가 누가 다쳤나?’
‘아니면 교실에서 축구하다가 교실 대형 TV를 깨 먹었나?’
우리 반 교실 앞 복도로 들어서니 두 명의 학생들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싸움을 본 적이 있는가? 자고로 남학생들의 싸움은 큰 반원을 그리며 그림처럼 상대방을 향해 자신의 주먹을 날린다거나 또는 공중에 점프하여 니킥을 날리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TV 드라마 작가가 만들어낸(확인은 안 해봤지만 왠지 여성 작가가 그려낸 모습일 것 같다.) 환상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남학생들의 싸움은 드라마속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현실 속 남학생들의 싸움은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들의 싸움처럼 서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손톱으로 할퀴며팔과 다리를허우적대고 있다.
두 학생의 씩씩거리며 엉켜 붙어 있는 모습이 흡사 논두렁 거머리 한 쌍이 달라붙어 있는 형상이라고나 할까...
주변에 몰려든 학생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한 발 뒤로 물러 난 채 내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다.
“그~~만!!!”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이 새끼들아!!!”
(남학교에서는 욕도 시기적절하게 쓰면 효과적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상냥한 목소리로 “여러분~ 여기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요?” 뭐 이런 식으로 말하면 너무 이상하지 않을까?)
“어디 학교까지 와서 감히 싸움질이야?!!!”
평소에도 성량이 큰 나였지만 싸움을 눈앞에서 목격한 나는 두 녀석을 향해 복도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싸우고 있던 아이들보다 화가 더 치민 나는 우리 반 아이를 상대편 아이에게서 떼어냈다. 덕분에 상황은 부지불식간에 종결되어버렸다.
나의 엄청난 기백에 두 아이들은 싸움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선채 서로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 너희들 둘 다 당장 교무실로 따라와!!!”
그들은 왜 싸운 걸까?
나는 두 녀석들을 이끌고 교무실로 향했다. 아까보다 조금은 제정신을 찾은 듯한 두 아이들은 친구들의 염려 어린 시선을 뒤로한 채 터벅터벅 교무실로 따라왔다.
교무실에 두 아이들을 앉혀놓고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건 뭐...전쟁 통에 버려진 고아들 마냥 둘 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우리 반 상진이는 한쪽 눈에 혈관이 터져서 눈에 핏발이 서있고 입술도 찢어진 모양인지 입술이 퉁퉁 붓고 피가 맺혀있었다. 옆 반 현태는 왼쪽 뺨에서 피가 나고 있었고 머리는 산발 쑥대머리가 되어있었다.
처절하게 싸운 흔적은 흰색 교복 셔츠에 묻어 있는 핏자국과 가슴팍에 찍힌 선명한 운동화 발자국으로도알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 두 녀석들은 뭐가 그렇게 화가 나고 열이 받아서 저렇게 싸운 걸까...
상진이와 현태는 평소에 늘 붙어 다닐 정도로 친한 사이였고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등하교도 같이 하곤 했다. 싸움을 목격한 아이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 둘은 이미 1교시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한바탕 1차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아이들이 겨우 싸움을 뜯어말린 후 2교시 수업이 시작되어 잠시 싸움이 소강상태가 되었다가 2교시 수업이 끝나고 다시 맞붙었단다.
“그러니까 너희들 왜 싸운 거니?”
“.........................”
두 녀석들 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꽉 다물고 말이 없다.
“왜 싸운 거냐고?!!!”
내 목소리는 아까보다 한 층 더 커졌다. 교무실에 계시던 몇몇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 우리 쪽을 흘끔 보신다.
“................................”
두 녀석들은 끝까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묵비권인 건가...? 끝까지 입을 다물고 결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두 녀석들을 보니 둘 사이에 무엇인가 큰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두 아이들을 학생부로 인계하고 사건 경위에 대한 진술서를 작성하게 했다. 그리고 학생부 담당 선생님과 옆 반 담임 선생님께도 상황을 알려드렸다. 문제는 이 두 아이들의 부모님들에게 연락하는 일이었다. 옆 반 담임 선생님도 걱정이 많아 보이셨다. 옆 반 현태는 늦둥이 아들이었다. 그런데 우리 쪽도 큰일이다! 우리 반 상진이도 누나만 셋인 막내라 상진이 어머님도 유달리 상진이를 금지옥엽 하는데.... 이를어쩐다...잘못하면 아이들 싸움이 아니라 어른들 감정싸움으로 확대될 것 같았다.
그들의 진술
다음 날 상진이는 눈에 안대를 하고 얼굴이 퍼렇게 멍이 든 채 나타났고, 현태는 왼쪽 뺨이 찢어져서 7바늘이나 꿰매고 학교로 왔다. 다음 날 학폭위(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고 학생부 담당 선생님들과 나, 그리고 현태 담임 선생님, 양쪽 어머님들이 참석했다.
두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양쪽 어머님들 표정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학생부 담당 선생님께서 상진이와 현태가 작성한 진술서 복사본을 우리 모두에게 읽어보라고 나누어 주셨다. 진술서를 읽어보고 갑자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제야 싸움의 주인공들인 이 두 녀석들이 나에게 싸운 원인을 끝까지 말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진술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침 자습시간에 매점에 가서 함께 빵을 사 먹던 도중 상진이가 장난으로 손가락으로 현태의 엉덩이를 찔렀고, 갑자기 똥침을 당해 화가 난 현태는 상진이에게 더욱 세게 똥침을 하여.....’
다 큰 아이들이 빵 사 먹다가 뜬금없이 친구 엉덩이에 똥침을 먹이며 장난하다가 화가 나서 심한 몸싸움까지 한 거라고?!!! 그랬다. 이 두 녀석들은싸운 이유가 본인들이 생각해도 너무 쪽팔려서 내게 말을 하지 못했던 거다!
처절한 싸움의 원인은 똥침이었다...
소위 왕따, 또는 지속적인 괴롭힘 같은 심각한 학교 폭력 같은 이유들을 생각하셨던 상진이 어머니도, 그리고 현태 어머니도 자신들의 아이가 똥침 같은 장난으로 몸싸움까지 하게 된 것에 대해 창피하고 당황하신 모양이었다. 두 분 다 고개를 숙이고 진술서 종이만 만지작거리셨다. 결국 아이들 싸움은 양 측 간의 사과로 잘 마무리가 되었다.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싸움이란...
고등학교 남학생들은 체격이나 외모는 거의 성인 남성과 다를 것이 없이 보이지만 행동하는 수준은 아직 어린 경우가 많다. 초등학생들끼리는 싸워도 체격이 작으니 대체로 작은 싸움이 벌어지지만 고등학생들은 싸우기만 하면, 특히 몸싸움은 대형사고가 일어난다.
마치 어린이가 몰고 다니는 대형 자동차 같다고나 할까...
내가 정말 어이가 없던 건 며칠 뒤 이 싸움의 주인공들은 다정하게 다시 매점을 같이 가서 빵을 사 먹고 놀고 있는 모습이었다. 죽어라 싸우며 그 난리를 칠 때는 언제고...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오늘도...힘과 호르몬이 넘쳐나는 남자 고등학교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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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학창 시절이 그립거나 요즘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서툴지만 열심히 학교 일상들을 기록으로 남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