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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Aug 19. 2023

여행할 땐, 책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고 말하는 작가 김남희의 말에 마음이 깊게 공명되었다.


'여행할 땐, 책'


이 책의 제목마저 나의 본능과 지적 허영심의  공복감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공황발작이라는 족쇄에 두 발이 묶여 마지막 여행은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이 책 한 권으로 나의 목마름에 목을 잠시 축인다.


책을 있는 동안 저자와 함께 옥죄이는 현실에서 잠시 이탈하여 이나라, 저 나라를 잠시 여행하는 기분을 느껴본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만큼은 나도 여행가인 동시에 독서가인 노마드족이 될 수 있다.


여행하고 있는 각 나라, 각 지역과 연관 있는 책들을 소개하는 참신한 발상의 책이라니. 역시 김남희 작가는 작가다. 나도 책 한 권에 영감을 받아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여행가방을 꾸리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저자의 말처럼 낯선 곳으로 여행하는 동안은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나는 자유로우면서도 외로운 이방인의 자격을 누릴 수 있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장. 내 삶은 온전히 거리에서 채워진다.

2장.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3장. 지친 허리를 일으켜 다시 한 걸음을 뗀다.


책의 구절구절이 시처럼 유려하며 작기의 희로애락의 감정의 디테일한 편린들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저자의 시선과 감각을 따라가며 나도 언젠가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동시에 나도 이런 여행자이고 싶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 돈도 안 되는 일을 돈 써가면서, 궁핍과 고통을 훈장처럼 여기며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경우는 길을 걷는 동안 누리게 되는 영적인 순간이 바로 그 보상이었다...(중략) 그 경험은 보다 내밀하며 친근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이른 아침 골짜기를 뒤덮은 짙은 안개가 만드는 풍경화 속에 홀로 서 있을 때, 1천2백 미터의 고개를 넘다가 순한 말들의 순한 눈동자와 마주칠 때, 황혼 녘 대성당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 그런 순간에 나는 대지와 만물에 깃든 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끼곤 했다...(중략) 그럴 때면 삶은 이미 넘치도록 충만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다."  ㅡ27쪽 중 ㅡ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내게 살면서 그동안 어떤 곳을 여행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여행 갔던 지역들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 행위가 '여행'이었는지, '단순한 맛보기 체험식에 그친 관광'이었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내게 있어 여행은 '주마간산식 깃발여행'이었던 것 같다. 남들 다 가는 명소를 나도 들리고, '나도 여기와 봤노라~ '라며 인증샷을 찍고, 블로그에 올라온 맛집들(그것도 대체로 광고성 블로그 맛집 소개에 속은 적이 많았다)을 들렸다. 급하게 후다닥 타인들이 명소라고 하는 곳에 발도장을 찍곤 얼마나 많은 곳을 갔다 왔는지 체크하며 자족했었다. 지금생각해 보니 그건 여행이 아니라 단기 관광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여행자였던 적이 없었다.


심지어 여행이든, 관광이든 새로운 곳에 도착하여도 그곳에 내가 하던 업무며 현실의 문제를 짊어지고 갔다. 보라카이 해변가에서 못다 처리한 행정업무를 걱정했으며, 제주도 올레길에선 깨끗하게 정리하고 오지 못한 집안일을 걱정했다. 육신만 새로운 곳으로 이동했을 뿐 나는 여전히 현실의 복마전에 머물고 있었다. 이러니 새로운 풍광, 전혀 다른 공기, 햇살, 이색적인 거리등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작가 김남희의 책 <여행할 땐, 책>을 읽으며 온전한 여행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몸과 함께 마음도 함께 가는 여행이 진짜 여행이다. 여행지와 관련된 소설이든, 에세이든 관련 책을 가지고 간다면 현실의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좀 더 여행에 몰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 같다.


몸과 마음이 함께 가는 온전한 여행, 다음엔 꼭 하리라.






독서라는 행위가 주는 매력은 준비 없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이토록 쉬운 일탈은 없다. 책을 집어 들기만 하면 된다. 숨 막히게 답답한 이 세계를 잠시나마 벗어나 책 안의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삶이든 선택할 수 있다. 멀리 떠날 수 없을 때 나는 책 속으로 떠난다.

                                                                          p138 중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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