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입생

누가 그를 다시 떠나게 만들었는가.

by 이자까야

예상하지 못한 전입생이 왔다


5월 어느 날 개인 사정으로 며칠 동안 학교를 못 나간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우리 학급으로 새로운 전입생이 한 명 배정되었다.


내가 학교에 없던 그 며칠 동안 내 핸드폰에는 학교에서 걸려 온 전화와 우리 반 아이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들로 핸드폰 수신음이 수시로 울려댔다.


"띠링~"

(학급 회장으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

선생님 ~ 우리 반에 전학생이 한 명 왔는데 장난 아니에요~! 대~박!!!



"띠링~"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

선생님, 선생님 반에 새로 온 아이가 전학 온 첫날부터 사고를 쳤어요! 그 학생이 수학 선생님과 한바탕 싸움이 붙었습니다!



"띠링~"

(상담 선생님으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

선생님 반 전입생이 수업 시간에 난동을 피워서 며칠 동안 정규 수업 대신 상담실에서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띠링~"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

선생님~~ 하필이면 선생님 결근 중일 때 선생님 반에 전입생이 배정되어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일단 학교로 복귀하시면 전입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시고 지도 방향에 대해 함께 토의를 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등등.....


결근하는 동안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전입생 한 명 때문에 학교가 난리였다.


"도대체 어떤 학생이길래 이렇게 야단법석이지?..."


전입생이 학교로 복학한 이유


며칠 후 나는 살짝 두려운 마음을 안고 학교로 복귀하자마자 제일 먼저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그 전입생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


전입생은 타 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바로 전학을 온 것이 아니라 다른 학교를 다니다 자퇴를 했단다. 그 상황에서 큰 사고를 쳐서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재판을 받을 때 학생 신분일 경우 판결이 '일반인보다는 유리하게 적용되기 때문에'(오호~ 이런 것도 있구나...) 학생 신분을 갖기 위해 학교에 복학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그 아이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학교로 복학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업 태도가 매우 불손하고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 선생님께서 그 아이의 수업 태도에 대해 지적하자마자 자신의 핸드폰으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그 선생님을 신고했단다. 그리고 다른 수업시간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사고들을 일으켰다. 그 전입생은 전학 온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이미 학교에서 전 학년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명성,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이를 어쩐다냐...

그동안 많은 전학생들을 겪어봤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이야 우리 반 전입생에 대해 "블라블라~ " 마음 편히 말할 수 있겠지만 담임인 나는 그 아이를 어떻게 지도할지 마음속엔 고민 덩어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전입생의 문신(feat. 가두리 양식장)


나는 교실에서 학급 아이들과 며칠 동안 못 본 회포를 짧게 풀고 난 후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전입생이 있는 상담실로 총총걸음으로 갔다.

상담실 안쪽 작은 방으로 들어서니 딱 봐도 몸이 다부져 보이는 남학생 한 명이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 : "안녕~ 반갑다~~ 선생님이 네 담임 선생님이야~~~"


전입생 : "......."


나 : "하필이면 네가 전입하자마자 쌤이 없어서 네가 적응하기 힘들었겠다."

"여러가지 힘든 일이 있었다며?"


전입생 : " ......"


: (나의 속마음 : 이 녀석에게 두 번이나 씹히다니..그래도 굴하지 않고~밝게 웃으며) 호호~ 넌 참 과묵한 아이구나?


눈썹이 진하고 가무잡잡한 그 아이는 무섭게 생겼다기보다는 이목구비가 진하게 잘 생긴 편이었다. 여러 사람들한테 그 아이에 대한 묘사를 들었을 때는 무시무시한 조폭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섭다기보다는 경계와 의심이 가득 차 있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 보통 전입생에게서 느껴지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어색함이 아니라 과도한 자기방어가 느껴졌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학교 자체를, 또는 어른들을 못 믿는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데 왼쪽 팔에 총 천연색의 잉어인지 붕어인지 모를 화려하고 큰 문신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문신의 모양과 크기를 보니 팔뚝부터 어깨 죽지까지 이어지는 큰 잉어 두 마리가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왼 팔 전체가 '가두리 양식장'이라니...


"이야~~~ 팔에 문신했네~~! "

"문신 고퀄(고 퀄리티)인데~"

"이 문신 다 새기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겠다. 금액도 무지 비쌌겠고..."


뜬금없는 '나의 문신 칭찬'에 뻣뻣했던 복학생의 표정은 다소 온화해지며 아주 살짝 부끄러워하는 듯한 미소가 잠시 지어졌다 사라졌다. 아마 이 아이는 학교라는 곳에서, 그것도 선생님한테 문신으로 칭찬을 받기는 생전 처음이었으리라... . 그런 아이가 찰나였지만 내게 미소를 지어 주니 고맙기도 했고 마음이 짠 했다. 이 아이는 늘상 칭찬보다는 야단과 질타 그리고 처벌에 익숙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적대적으로 느꼈을 것이고...


이 아이가 문제를 일으킨 사건들을 살펴 보면 의도적으로 잘못했다기보다 잘못된 습관들이 아이의 몸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와서 야기된 것들 같았다. 교실에서 어떻게 앉아 있어야 하는지, 수업시간에 필기는 왜 해야 하는지, 교칙이 왜 존재하는지,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왜 경청해야 하는지... 등등


작은 희망


어쨌거나 뜻밖의 '문신 칭찬'으로 인해 아이의 빗장 걸린 마음의 문에 약간의 틈을 타 나는 아이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상담실에 갇혀서 아무것도 안 하면 지루할 수도 있고 꼭 대학 진학이 아니라 사업이든 장사를 하려면 영어라도 할 줄 알면 앞으로 두고두고 유리할 거라고 설득을 했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그 아이와 하루에 영어 단어 20개 암기를 상담실에서 하게 되었다.


다행히 아이는 매일매일 나와의 영어단어 암기 약속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공부 자체의 흥미보다는 낯설고 모두가 적대적으로 느껴지는 이 학교에서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담임 선생님에게라도 작은 의리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떤 형태로든 상관 없었다. 그 아이의 생활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면.

조금씩 그 아이가 학교 생활을 적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원점이 되다


그런데 며칠 후 결국 아이는 또 다른 사고를 쳤다. 다른 선생님들과 또 다시 마찰이 생긴 것이다. 결국 그 아이의 어머님이 학교로 오셨고 어머니는 울면서 가정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가정불화로 인해 아이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게 되었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일 하느라 아이는 어릴 때부터 늘상 혼자 방치되었다고 했다. 그러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술, 담배를 시작으로 절도, 싸움 등 사고를 치기 시작했고 그것이 점점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아이의 어머니는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에게 문제아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대하기 때문에 아이가 학교에 더 정을 못 붙인다고 원망했다. 그 어머니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 두가지 요인만으로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이겠는가?


학생의 어머니는 아이의 잘못을 한번 더 눈감아 달라고 했다. 우리 학교로 전입한 지 한 달 채 되지 않아 그 아이의 벌점은 이미 최고 점수를 넘어버렸다. 그는 나의 말은 잘 듣는 편이었지만 여전히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적대적이고 반항적으로 행동하여 수업시간이 중단되기 일쑤였다. 이미 학급 내에선 선생님들과 맞짱?뜨는 그 아이를 멋있게 보기 시작하는 철없는 추종자들이 생겨나서 수업시간에 함께 이탈하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학교 자체를 나오지 않는 아이도 생겨났다. 그와 더불어 학급에서 수업 분위기에 대한 다른 학부모님들의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담임 역할에 대한 회의감


어쩌면 내가 학급에서 그 아이를 통제하지 못하면 우리 반을 그 아이가 통제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 아이의 담임으로서의 나와 학급 전체를 이끌어야하는 담임으로서의 나. 두 가지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그 순간에 하필이면 예전에 배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공리주의'가 떠올라서 씁쓸했다.


전입생의 상황과 처지가 누구보다 공감이 갔지만 담임으로서의 역할은 너무 제한 적이었다. 하루 종일 이 아이를 위해 붙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규 수업과 행정업무와 그리고 학급 관리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주 짬짬이 이 전입생을 돌보아서 이 아이의 삶을 바꾼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학급 내 수업 분위기가 계속 나빠져 학급의 나머지 아이들도 챙겨야만 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중간에 끼여 전전긍긍대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그 아이는 우리 학교에 적응을 포기해 버리고 또 다시 자퇴라는 극단적 결정을 내려버렸다. 학생 어머니는 하염없이 우셨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들은 대안학교 추천과 아이가 지금은 성장통을 심하게 겪고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위로의 말이 전부였다. 잠시 동안 인연이 되었던 그 아이와 그렇게 끝이 났다.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해 적대감만을 보여줬던 그 아이가 내게라도 잠시 마음의 곁을 내어 주었는데 결국 내가 아무 도움도 못 되었다는 미안함과 그 아이가 떠나고 그 아이에게 매료?되었던 몇몇 아이들의 탈선(무단 결석, 음주 등등)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안도감의 모순적인 감정에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희망...


지금도 나는 가끔 그 아이를 생각한다. 나는 그 아이의 가정환경을 바꾸어 줄 수도 없었고, 그 아이만을 지도하는 가정교사같은 역할을 해 줄 수도 없었다. 내 헛된 욕심처럼 정신적 멘토 역할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언젠가 세상에 대한 분노심을 조금은 누그러뜨리고 자신에게 희망을 걸고 믿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것이 동력이 되어 자신의 꽃을 활짝 피웠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봄과 여름에 피는 꽃도 있지만 가을과 겨울에 피는 꽃도 있다. 지금은 늦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아이가 가을 또는 겨울에 누구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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