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영어로?

by 이자까야

교사도 수업시간에 두려운 것이 있다.

수학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기습적으로 교과서 외의 어려운 수학문제에 대해 질문하면 행여나 학생 앞에서 문제 풀이의 답이 틀릴까봐 긴장이 된다고 한다. 솔직히 교사도 사람인지라 가끔 틀릴 때가 있다.

우리가 매일 걸어다니는 길도 어떤 날은 삐끗하며 자빠지는 일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인지라 선생님이 질문에 대한 답이라도 틀리게된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처럼 싸늘한 눈빛을 선생님에게 던진다.


"당신은 교사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군요. 탈락!"


영어 담당인 나로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어 단어를 알아야 한다는 '영어 교사의 원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내가 일반 사람들보다는 영어 공부를 많이 했겠지만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영어 사전'도 아니거니와 영어 알파벳이 들어간 단어라면 어떤 단어라도 컴퓨터처럼 1초 만에 척척 대답하는 것은 어렵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가끔 수업 도중 영어 스펠링을 실수하기도 한다. (물론 틀린 부분은 정정하여 학생들에게 제대로 주지 시킨다. )


교사 첫 해에는 학생들의 심판대에 꽤 많이 올랐었다.

교사가 된지 몇 개월도 되지않은 나는 교사의 모습보단 교생의 이미지에 더 가까웠다. 그런 나를 아이들은 테스트해 보고 싶었나보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실력 테스트라기보다 멘탈 테스트에 가까웠지만) 몇몇 짓궂은 학생들은 자신들이 제시한 영어 질문에 대한 내가 틀리기라도 할 경우엔 실컷 놀려주겠다는 기세였다.


그 날은 영어 교과서 본문 내용 중 '오징어 squid '라는 단어가 나오는 단락이 있었다.


"선생님, 그럼 문어는 영어로는 뭔가요?"


뜬금 없이 한 남학생이 헤죽거리며 큰 소리로 질문했다.

그 순간 잠시 정적이 흐르고 모든 학생들은 나를 쳐다보았다.

교직 생활 3개월차에 접어든 햇병아리 교사였던 나는 긴장이 되어선지 등에 땀까지 났다. 하지만 다행히 쉬운 질문이었다.


나는 친절한 목소리로 "문어는 octopus 라고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때 교실에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떼창 소리.


"욜~~~역시 쌤~~"


다행이다. 하지만 1차 관문을 통과하자마자 1분단 뒷쪽에 앉은 덩치 큰 녀석이 또 다른 질문으로 반격했다.


"쌤~ 그럼, 고등어는 뭐라고 하나요?"


"고등어는 mackerel이라고 합니다"


점점 수업시간은 교과서 본문 내용과 상관 없는 노량진 수산시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학생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대답해야했다.

왜냐하면 난 영어에 관한한 모든걸 알고 있어야만 하는 영어 선생님이니까. 설령 모르는 것이라도 아는 척을 했다. 햇병아리 교사였던 나는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2번째 기습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통과하면서 아이들은 또 환호를 했다.


"올~~ 쌤 천재, 천재~~"


스스로도 학생들의 기습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대답한 내 자신이 뿌듯했다. 속으로 "역시 난 타고난 교사야~"(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정신 연령도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 교과서 진도를 서둘러 나가야만 했다. 마음을 다시 다잡고 수업 진도를 나가려는 찰라, 이번엔 가운데 분단에 앉아 있는, 딱 봐도 개구지게 생긴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영어로 뭐예요?"


"네?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영어로요? 음...영어로는... 골드..."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 녀석들은 오늘 수업을 안 하려고 처음부터 장난을 친거였다. 그리고 내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영어로 어떻게 아냐고?! 불교대학 영어교수도 아닌데!


"이느무시키!!! 너 교실 뒤로 나가서 손들고 있어!!!"


나의 사자후같은 호통에 그제서야 아이들은 장난 가득한 웃음기를 거두었다.


결국 그 날의 영어수업은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질문들과 놀림, 그리고 나의 고함 소리와 뒤섞이면서 엉망이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사라면 아이들의 모든 질문에 척척 대답할 수 있어야 학생들 앞에서 체면이 선다는 완벽주의적 생각 때문에 여유있는 수업을 하지 못했던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나를 스스로 창피해 하고 자책했다.


교직 경험이 하루 하루 늘어가면서 체력은 전보다 떨어져 아쉽지만 대신 교탁 위에서의 노련미가 생겼다. 그리고 교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한다는 강박증도 내려 놓았다.


교사는 모든것을 알고있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새로운 지식을 배울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라는 어느 글귀처럼 이젠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학생들 앞에서 더이상 창피해 하지 않는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그 부분을 조사하고 공부하여 질문한 학생에게 설명해준다.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있다. 가르치면서 함께 배우고 성장한다라는 뜻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열심히 공부하여 학생에게 알려주면 된다. 그러면 질문한 학생은 그에 대한 답을 알게 되어 좋고, 나도 더 많이 알게 되어 좋다.


매일 가르치며 배운다. 그렇게 교사와 제자는 각각 하나씩 더 알아가고 성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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