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에 연차가 아무리 많이 쌓여도 솔직히 새 학기가 시작할 때면 걱정과 약간의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한다.(이번에도 1학년 담임이 되었다)
“이번 신입생은 어떤 학생들일까?” (반대로 학생들은 이번 선생님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고 걱정할 것이다)
작년 학생들은 재작년 학생들보다 많은 말썽을 피워서 꽤나 고생을 했다. 그런데 최근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정말 한숨만 나온다.
요즘 대학생들은 선생님들 위에 서고 싶어 하고,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논리가 아닌 그릇된 생각들로 도전한다.
그들은 강의에는 출석하지만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
그들은 그릇된 논리로 자기들 판단에만 의지하려 들며,
자신들이 무지한 영역에 그 잣대를 들이댄다.....(중략)
볼로냐 대학을 수학한 14세기 스페인 프란체스코회 사제였던 알바루스 펠라기우스가 그 당시 대학생들에 대해 개탄하며 쓴 글이다. 이 글을 보니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요즘 내가 학교에서 매일매일 느끼는 감정들을 전혀 다른 시대의, 그리고 전혀 다른 문화의 사람에게서 느꼈기 때문일까?
에피소드 #1
불현듯 한 학생이 떠올랐다.
우리 반 학생이었던 A는 토요일 밤에 내게 긴 장문의 카톡 문자를 보내왔다. 독후감 대회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학교 측에서 자신이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장려상을 준 것이고, B가 우수상을 받은 것은 B의 성적이 높아서 선생님들이 B에게 상장을 몰아준 것이라는 민원 문자였다. 독후감 대회는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학생들이 제출한 원고 내용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원고를 제출한 학생들은 알 수 없었다.
독후감 경시대회는 공정하게 치러졌다.
적극적인 의사표현과 무례함의 사이
학생 A의 문자를 읽고 나니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평일도 많은데 굳이 주말 밤늦은 시각에 담임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 당황스러웠거니와 교내 경시대회 자체에 대해 추측과 불신을 가득 담아 보낸 항의 문자 내용에도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물론 뉴스에 나왔던 숙*여고 사건 같은 일들이 우리를 불신하게 만들었지만, 불공정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학교보다 공정한 학교가 훨씬 더 많다)
다음 날 전화를 걸어 학생 A에게 대회 평가 기준과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여 학생의 오해를 풀어 주었다. 그러나 A의 행동에 요즘 학생들의 ‘적극적인 자기 표현력’과 어른에 대한 ‘무례함’의 경계선에서 어느 쪽으로 해석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에피소드 #2
또 다른 일도 있었다.
한 번은 학급 아이 한 명이 아침 자습 시간과 수업 시간 내내 잠을 잤다. 그 아이를 따로 불러서 야단을 쳤더니 나를 노려보며 ‘담임 선생님이 뭐라 하든 소신껏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학교에서 행동해도 된다’고 엄마가 말했다고 했다. 그리곤 ‘학생부의 담임 평가 따윈 두렵지 않다’고도 했다. 평소 매우 조용했던 그 아이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그런 말을 들으니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그동안 해왔던 학생지도 가치관에 혼란이 왔다.
학생인권은 면죄권?
요즘 ‘학생인권’이 중요한 시대이긴 하지만 수업 시간에 다른 행동을 하거나 종일 책상에 엎으려 자는 학생도 깨워서는 안 되는 건가? 이것이 학생인권을 해치는 일인 것인가?그리고 학생인권을 어디까지 존중해 줘야 하는 것인가? (최근 1~2년 사이에 학생이 선생님으로부터 야단을 맞거나 학교생활에 대해 지적을 받으면 학생인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충동적이고 아직 ‘해야 할 것보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아이들을 지도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작년엔 학생의 학습 태도에 대해 지도하다 인권을 무시당했다며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는 한 학생의 협박 아닌 협박을 듣고선 속상한 마음에 퇴근길에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3시간을 넘게 집 주변 동네를 계속 걸어 다니며 마음을 삭혀야만 했다.
지나고 나면 힘든 기억보다 좋은 추억만 남아서인가?
가끔 예전 학생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의 리처드 아이바흐가 말한 ‘좋았던 옛 시절 편향(Good-old days bias)’ 증상인 건가? 아니면 예전 학생들이 훨씬 예의 발랐던 것일까?
사제관계가 세대 간의 갈등이 되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사회적,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긴다. 그 변화 속에서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에 서로 용인하지 못하는 기준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특히 구세대의 20세기 선생님들이 신세대의 21세기 학생들을 지도하는 학교 현장에서는 세대 간의 서로 다른 논리와 사고방식 때문에 이해와 화합보다는 마찰이나 갈등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특히 작년부터는 학교가 교육의 장이라기보다는 매일이 학생과의 전쟁터가 된 듯하다.
물론 교사들도 체벌과 같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들을 정당화해서는 안되고 현재의 문제점들에 대해 숙고하고 반성하는 진솔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 우리 때는...” 이라는 말로 학생들에게 조언이 아니라 꼰대처럼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해마다 변해가는 아이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버겁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엔 학생과 학부모님들에게 학원보다도 존중받지 못하는 학교의 위상은 학생인권이 모든 학교 교칙과 교사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요즘 아이들을 잘 지도할 수 있을까
20년이 넘는 교직 생활 동안 유독 최근 2년이 참 힘들었다. 학교에서 기계적으로 수업만 하고 학생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게 내버려 두고, 학교에 잘 오지 않아도, 지각을 자주 해도 학교생활에 대해 지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지각을 하지 말라고 훈계하고, 수업 시간에 잠을 깨우면 학생은 인권이 침해되었다고 따진다.
교사인 내게도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다
10년 전, 아니 5년 전만 해도 학생이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거나 선생님에게 버릇없이 행동하면 학부모님들은 사랑의 매를 때려서라도 사람 구실?할 수 있는 아이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사랑의 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부모님들의 '학교에 대한 믿음'이 그리운 요즘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최근 2년 동안 나도 꽤 많이 힘들었나보다. 하하~
“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
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 시대에 점토판에 새겨진 말처럼 언제나 기성세대는 신세대를 버릇없게 보았던 것 은 사실이다. 나도 어렸을 땐 선생님들이나 어른들이 보기에 꽤나 버릇없는 아이였겠지? 이번 새 학기부턴 더 이상 의기소침해지지 말고 좀 더 요즘 아이들을 이해하고 소통을 해 보려 노력해 보아야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또 생기고 상처도 받겠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