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요가시키는 건 좋은데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다 큰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선생님이 요가를 시킨다고 순순히 따라 하더냐?’라는 질문이었다.
그 말이 맞다. 절대 그냥 따라 할 리가 없다. 다소 삐뚤어진 자아가 충만한 사춘기 절정의 아이들이 고분고분 선생님 말을 듣는다? 게다가 요즘처럼 학생 인권이 우선시 되는 때에 학생들에게 영어 수업시간에 요가를 강요했다간 몇몇 학생들이 학생인권 침해를 주장하며 민원을 제기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세상일은 생각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1년 동안의 나의 영어 수업을 위한 큰 그림의 계획이 필요했다.
먼저 아이들이 한껏 군기가 잡혀있는 학기 초 첫 수업시간에 각 반에 들어가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
앞으로 우리가 1년 동안 하게 될 영어수업 방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영어수업 시간에 웬 요가?’
‘영어 공부도 싫구만, 무슨 요가까지 하래?’
아이들은 이 처음 보는 독특한 영어 선생님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살짝 나를 이상하게 보거나 거부감을 표현하는 학생들도 몇 명 보인다. (체육시간 조차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스마트폰만 하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들 중에는 운동하는 것에 대해 경기에 가까운 거부감을 보이는 아이도 있다.)
‘여기서 물러서면 안 돼!’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꿋꿋하게 나의 수업계획을 설명해 나간다.
이쯤에서 나는 아이들이 혹할 만한 약장수 같은 멘트 하나를 던진다.
“얘들아~~ 요가를 꾸준히 하면 키가 더 많이 클 수 있어!”
‘뭐라고? 키가 많이 클 수 있다고?!!!’
초점 없던 남학생들의 눈빛에 광채가 나기 시작한다. 사춘기 남학생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몸무게도 아니요, 피부도 아니요, 바로 ‘키’다. 학급에서 키가 제일 크다는 이유만으로 반 내에서 무시를 당할 일은 거의 없다. 남학교에서 키는 일종의 권력이니까.
이 기회를 틈타 나는 아이들의 관심에 더욱 불을 지핀다.
“요가를 하면 각 관절과 성장판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키가 더 커지고 스마트폰 때문에 생긴 거북목만 펴져도 지금 키에서 최소 2cm는 더 커질 수 있단다~~”
이때 나는 ‘이제 쐐기를 박을 타이밍’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몇 가지 현란한 요가 동작을 직접 선보인다.
(이 순간을 위해 학기 초에 한동안 신축성 좋은 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브륵사 아사나(나무자세)’
‘트리코 아사나(삼각자세)’
남학생들 앞에서 영어 선생님이 요상한(?) 요가 동작을 선보이는 게 창피하지 않냐고? 엄청 창피하다!!! (이럴 땐 나는 왜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힘든 길을 걸어가는지 내 스스로가 참 피곤한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난 아이들 앞에서 ‘앞으로 1년 동안의 영어 어휘 학습 증진을 위해서’ 체면보다는 실리를 택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등교할 때도, 교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스마트폰만 하는 아이들의 건강도 챙겨 주고 싶었다.
학생들의 나에 대한 이미지는 내가 요가를 직접 시연하기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다.
“우와~~~ 대박! 미쳤다!!”
(요즘 아이들은 감탄의 말을 이렇게 ‘미쳤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오늘 이 시간만큼은 체면을 내려놓은 마당에 보너스로 가로, 세로 다리 일자 찢기도 선보인다.
“오~~~~~” 아이들의 감탄이 이어진다.
곧이어 어떻게 하면 키가 커질 수 있는지 구체적 질문이 아이들로부터 쇄도하기 시작한다.
일단 아이들의 흥미를 일으키는 건 성공적이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이제부터 영어수업시간에 어휘 암기와 중요 구문 암기를 어떻게 진행하고 수업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요가를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핵심 내용을 꺼낸다.(이 순간을 위해 나는 얼마나 서커스 단원처럼 요가 퍼포먼스를 했던가...) 아이들은 앞으로의 수업에 대해 흥미반 걱정 반의 표정들이다.
평소 연마 했던 다리 찢기 기술을 수업시간에 과감히 선보인다. 효과적인 영어수업을 위해서라면 이쯤이야 뭐....
이렇게 해서 다음 시간부터 영어요가 수업이 진행되었고 아이들의 반발 없이 수업에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왔다. 물론 이 수업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생겨났다. 수업시간에 배운 요가로 인해 체형교정에 효과를 본 몇몇 아이들은 공짜로 요가를 배우기 위해 일부러 영어단어 암기 테스트를 포기하는 것이다. 게다가 교복 대신 체육복까지 입고 웃으며 나를 반긴다. 음....나의 원래 의도는 이런 게 아닌데....언제나 기상천외한 아이들을 위해서 나는 또 어떤 방법을 강구해야 하나... 앞으로 또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학교행사때 각 반 주제곡을 정해서 불러야했는데 영어 단어 암기와 요가에 지친 우리반은 한이 서린(?) 땡벌 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