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매트 위에서 3명의 학생들이 나의 구령에 맞추어 동작을 연이어 수행하고 있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중 한 명은 결국 ‘난 안돼...틀렸어...‘라는 자포자기의 표정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소년의 이마에선 땀이 연신 흐른다.
단어 암기 배틀에서 탈락하면 요가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교실에 있는 나머지 다른 학생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이 3명의 요가 소년들을 구경하던 중 갑자기 나와 눈이 마주친다. 아이들은 모두 사색이 되어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는 영어 단어들을 중얼거리며 재빠르게 암기하기 시작한다.
4교시 영어 수업시간.
아이들은 오늘도 요가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 영어 단어를 암기한다.
단어 암기 제한 시간은 3분. 아이들은 평소에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어휘를 암기하기 시작한다.
3분 뒤의 단어 테스트는 서바이벌 배틀 형식으로 진행된다. 조금 전까지 잡담을 나누며 친분을 과시했던 짝꿍이 지금은 나의 적이 되어야 한다. 짝꿍과의 영어단어 암기 경쟁에서 이겨야만 한다.
‘저 녀석이 탈락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야 저 고통스러운(?) 요가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몇몇 아이들은 빙의하듯이, 어떤 아이들은 ‘쇼미 더 머니’ 프로그램에서나 볼 듯한 래퍼처럼 단어들을 빠르고 리드미컬 하게 중얼거리며 암기에 열중한다.
‘look at, look into, look out, look up to, look down on....’
‘제길, 이번 어휘들은 왜 이렇게 헷갈리는 거야! 틀리면 요가를 해야 하는데!’
“Stop!!!”
나는 시계를 보고 제한 시간 3분이 끝났음을 알린다.
“선생님~~~ 시간 좀 더 주세요~~~네?!!!!”
아이들이 애원한다. 하지만 어림없다. 나는 한쪽 분단을 가리키며 외친다.
“3분단 전체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3분단 아이들은 체념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른 분단 아이들은 환호하며 기뻐한다.
이제 3분단 아이들의 숨 막히는 단어 배틀이 시작된다!
가끔은 책상 위에서 다양한 요가 동작이 펼쳐지기도 한다.
위의 내용은 나의 평범한(?) 영어수업 시간의 한 모습이다. ‘여고도 아니고 남고에서 요가라니? 게다가 영어 수업시간에?!!’ 이렇게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남학생들은 유달리 영어단어 암기를 싫어한다. 나의 학창 시절에도 영어 어휘 실력이 곧 영어 실력이었다. 영어 공부를 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솔직히 인정하자. 그놈의 영어가 우릴 힘들게 했던 건 영어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많은 영어 어휘들을 매일 꾸준하게 암기해야 하는 것이 귀찮아서였기 때문이라고.
영어 단어를 모르면 어떤 문법 공부도 말짱 도루묵이다. 영어 듣기도 마찬가지다. 단어를 모르는데 무슨 문장이 들리고 이해될 것인가?
‘글로벌 시대의 인재로 키우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식의 거창하지만 뻔한 동기유발보다는 매일매일의 일상과 같은 수업에 활력이 중요했다. 다행히 디스크 치료를 위해 배우기 시작했던 나의 13년 차 요가 경력이 뜻하지 않게 수업시간에 빛을 발휘했다. 한 때 개그콘서트에 나왔던 ‘달인 김병만 선생은 13년 동안 도를 닦았다’라는 멘트가 나오던데 나의 13년 요가 경력 정도면 아이들에게 요가를 가르치며 영어도 가르치는 것도 나름 효과적인 교수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