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왕따 교사되다

"당신을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나요?"

by 이자까야

“우리 아이가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렇게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해대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아이가 대학이나 갈 수 있을까요?”


학부모들과 진학 상담을 할 때 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학부모님들의 애가 타는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커밍아웃부터 해야겠다.


나는 선생님들이 포기했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포기한 그 아이가 선생님이 되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가 어떤 쵸콜렛을 꺼내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한 사람의 미래를 섣부르게 판단하는 건 어쩌면 우리의 오만함이지 않을까?


나는 학습 부진아였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실 앞 복도.

모든 수업이 끝난 후 나는 교실 앞 복도를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나를 본 옆 반 담임이 우리 반 담임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 선생님 반 쟈는 키가 참 크네예~~”

(초등학교 3학년 때 나의 키는 이미 160센티미터에 가까울 만큼 덩치가 컸다. 슬픈 사실은 그 이후로 키가 30년이 넘게 안 크고 있지만.)

“아... 쟈요? 키는 큰데 ‘학습 부진아’예요. 아가 많이 모잘라요...”


*학습 부진아 : 특수교육학 용어로써 학습 가능성에 비하여 기대되는 학업 성취 수준에 못 미치는 아동을 일컫는 말이다. 이 아동들이 흔히 보이는 인지적 특성으로는 낮은 기억력, 기초 학습 능력 및 학습 전략 부족, 언어 능력 빈약 등이 대표적이고, 정의적 특성으로는 주의력 결핍, 부정적 자아 개념, 낮은 학습 동기, 낮은 지적 호기심, 사회적 부적응성 등이 지적되고 있다. -특수교육학 용어사전 중에서-


학습 부진아라... 담임은 내가 들을까봐 나름 작은 소리로 말했겠지만 나는 분명히 들었다.

교육학 서적에나 나올 법한 어휘의 의미를 알 리 없었던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대충 담임이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는 희한하게 누군가 나를 ‘디스’하면 귀신같이 알아내는 그런 촉이 있지 않던가?


학.습.부.진.아... 학교에서 나는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사실 나는 한글도 초등학교 2학년까지 잘 몰랐다.

분침, 시침을 보며 시계를 읽을 줄도 몰랐다. (내 배꼽시계만 정확했다. 껄껄...)

구구단도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때까지 마스터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나 스스로 답답할 정도로 학습 속도가 느렸다.

아니 그보다 책상 앞에 10분 이상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잠시만 앉아 있어도 엉덩이가 둥실 공중부양되는 느낌을 받았다. ADHD라는 말이 지금은 일반적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생소한 표현이었다.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 주의력결핍 과다 행동장애) 어쩌면 나를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말인지도 모른다.


구구단을 9단까지 다 못 외우면 방과 후 교실에 남아서 다시 암기하고 담임 선생님에게 검사를 맡고 가야 했다. 오늘도 통과 못 하면 나는 손바닥을 맞는다. (예전에는 체벌이 일상적이었다. 참고로 나는 국민학교 세대다. )

그 날은 나와 김종철만 남았다. 저 녀석은 구구단 3단까지 밖에 못 외운다.

그래도 나는 7단까지 외우는데 말야....저 아이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매우 자존심 상한다. (지금 생각하면 ‘도진개진’인데 말이다.)


“칠팔은?”


육십사... 였던가? 담임 선생님의 기습 질문에 제길...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칠 팔은 ‘오십육’을 왜 바로 대답을 못하냐고?!!!

오늘도 집에 일찍 가긴 글렀다. 저쪽에 앉아 있는 종철이가 코를 벌름거리며 나를 보고 비웃는다.

아... 열 받는다...



나는 리틀 몬스터였다

여러 가지 집안 사정 때문에 외할머니와 단둘이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살았다.

그 당시 나는 매우 산만한 아이였다. 항상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원숭이처럼 높은 곳이라면 어디든 기어 올라갔다. 옷장이며 냉장고 냉동실 문이며 매달리고 나무며 담벼락도 기어 올라갔다.

할머니께서는 손녀 한 명을 키운 것이 아니었다. ‘꺅꺅’ 소리 질러대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온갖 것들을 들쑤시고 다니는 새끼 원숭이를 키우셨던 셈이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쳤다.

큰 짱돌을 옆집 창문에 던져 창문을 깼다. (TV 드라마에서 한 남자 주인공이 쪽지를 ‘작은 돌멩이’에 실로 묶어 2층 여자 친구가 있는 방으로 던지는 장면을 봤는데 그게 그리 인상적이었다.)

‘벨튀’(남의 집 벨을 누르고 튀는 것)로 우샤인 볼트처럼 달리기 실력을 연마했다.

이웃집 방 창문에 문이 열려있으면(예전에는 지금처럼 아파트 단지보다 허름한 주택이 더 많았다.) 집에서 정성 들여? 물감을 섞은 물을 분부기에 넣어 그 집 방안에다 물감을 분사하고 냅다 도망갔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도 내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단지 그 당시에는 그게 너무 재미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사고를 칠 때마다 사과하고 다니시느라 바쁘셨다.

우리 할머니는 철없는 손녀 하나 때문에 늘 이웃들에게 고개를 숙이셨다.


할머님은 일제 강점기와 6.25.를 모두 겪으신 분이다. 힘든 시기, 소위 집안 살림 밑천으로 태어나 평생 집안일과 농사일만 하시느라 한글과 숫자도 전혀 읽고 쓸 줄 모르셨다. 공부를 못한 것이 평생 한이셨던 할머니는 늘 내게 “사람은 모름지기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염원과 한이 서린 그 말을 어린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나의 최초의 상


이렇게 동네 사람들과 학교 선생님들 모두 포기한 내가 생애 최초 학교에서 ‘상’이라는 걸 탔다.

바로 ‘공 멀리 던지기 상’.


체육 시간에 투포환 던지기 비스무리한 공 던지기 수업을 했는데 내가 공을 던지자 “우~~와!!!”라는 아이들의 함성과 함께 공이 저 멀리 포물선을 그리며 운동장 끝으로 날아갔다.

단지 그걸로 상을 받다니 다소 의아하지만 어쨌든 내가 상이라는 걸 받은 건 사실이다.


방과 후 상장을 한 손에 팔랑거리며 들고 할머니께 달려갔다.


“할매!!! 내 상장받았다!!!”


상장을 할머니께 보여주며 나는 한껏 뽐을 냈다.


“아이고~ 맞나? 우리 손녀가 상을 탔나?”

“잘했네~ 잘했어~ 공부 1등 했나? ”


한글을 모르셨던 할머니는, 평생 학교를 다녀보지 못한 할머니는 손녀가 받은 그 상장이 성적 우수상이라 생각하고 기뻐하셨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머니를 실망시킬 수 있었을까?


“맞다~ 내 이번에 공부 윽시로 열심히 했다아이가~”

“ 내 잘했제?”


“잘했다! 잘했고말고~~!”


그때 태양처럼 환히 웃으시던 할머니 미소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동안 할머니께서는 내가 공부를 잘 하길 희망하셨음에도 당신의 손녀가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는 것에 대해 창피하게 여기시진 않으셨다. 그리고 성적 때문에 야단친 적도 없었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옆집 지은이와 비교한 적도 없었다.


처음엔 할머니의 웃음을 보고 비록 거짓말이었으나 할머니를 잠시 기쁘게 해드린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용돈도 두둑이 받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마음 한편으론 나의 거짓말과 할머니의 그 찬란한 미소가 뒤섞여 죄책감이라는 것의 무게에 짓눌렸다.

할머니에게만은 나는 루저가 아니라 ‘우수하고 뛰어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자기 충족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예언이나 생각이 이루어질 거라고 강력하게 믿음으로써 그 믿음 자체에 의한 피드백을 통해 행동을 변화시켜 그 믿음을 실제로 이루어지게 하는 현상을 말한다.

나는 죄책감을 느낀 그 날, 그리고 할머니께만은 ‘훌륭한’ 아이가 된 그 날 정말로 뛰어나고 훌륭한 아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엔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할머니께 진짜 성적 우수상을 안겨드리고 싶었다.

그때부터 책이란 걸 펼쳐 보기 시작했다.


책을 꺼내려고 간만에 책가방을 열었는데 “ 아이씨!!! 놀래라!!!” 귀뚜라미 한 마리가 가방 안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두 마리, 세 마리... 내 책가방에 귀뚜라미 가족이 살 정도로 나는 얼마나 공부를 안 했던가...


처음 해 보는 공부라 교과서에 무슨 말인지 모르는 단어들이 수두룩했다.

난 분명히 한국 사람인데 한국인이 아니었다.

세종대왕님이 슬퍼하실 정도로 교과서에 나온 어휘들을 이해한다는 게 어려웠다. 이해하다가 도저히 모르는 내용들은 그냥 무턱대고 암기했다. 화장실에 갈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책을 들고 암기했다.


암기하다 보니 점차 내가 암기 한 내용들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반복되다 보니 저절로 복습이 되고...차차 상형 문자 같은 어휘며 기호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할머니께서는 ‘공부하는’ 나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다.

할머니 방 한쪽 벽에는 나의 ‘공 멀리 던지기 상’이 ‘성적 우수상’으로 둔갑되어 액자에 넣어져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진짜 성적 우수상을 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습 부진아라는 소리를 들었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드디어 성적 우수상을 받았다. 할머니께 했던 거짓말을 ‘진짜’로 만들기까지 만 2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누군가는 초등학교 공부를 한 걸 가지고 대단한 유세를 부린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한글도, 구구단도 잘 몰랐던 내가 전 과목에서 우수상을 받았다는 것은 내겐 대단한 성취였다. 게다가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 학원이나 과외의 도움 한번 받지 않고서 말이다. 문맹인이었던 내가 혼.자. 힘.으로 문명인이 된 듯한 변화였다.


지금에서야 내가 깨달은 것


지천명이라는 나이를 앞에 둔 나는 이제야 할머니의 사랑과 믿음의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할머니께서는 내가 처음 성적 우수상이라고 들이밀었던 그 상이 공부를 잘 해서 받은 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해마다 공부를 못 따라가 학교에서 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들어야만 했던 할머니께서, 엊그제까지도 사고를 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아야만 했던 할머니께서 그렇게 나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나에 대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나의 가능성을 기다려 주신 것이다.

나를 변화시킨 건 나에 대한 할머니의 믿음이었다. 내가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도 나의 노력을 폄훼하거나 결과를 재촉하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내가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해하셨다. 그 믿음과 응원이 남보다 학습 속도가 느렸던 나를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중, 고등학교, 사범대를 거쳐 교사가 되었다.


할머니의 유산


할머니께서는 이제 하늘에 계신다.

내 옆에 계시진 않으시지만 살면서 힘든 일에 부딪힐 때,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좌절할 때 할머니의 찬란한 미소가 나를 다시 일으킨다. 그리고 내가 나를 다시 믿도록 만든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의 미성숙함과 부족함을 이유로 부모의 기준과 속도를 강요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어른이 되는 과정의 기회를 박탈한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계획이 아니라 부모님의 계획 속에서 살아간다.

조금 늦을 수도 있고, 자신이 판단한 결과의 실수를 통해 배우는 값진 경험을 빼앗긴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무너진 자존감과 스스로 무언가를 해 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의 소멸이다.


퀀텀 리프를 믿어라

대나무의 폭발적 성장을 비유하여 표현하는 말로 ‘퀀텀 리프’(quantum leap)라는 말이 있다. 대나무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1년, 2년을 기다려도 죽순은 땅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그러나 4년째가 되면 땅 위로 올라온 죽순의 길이는 겨우 30cm. 드디어 심은 지 5년째가 된 대나무는 마디 마디의 생장점을 통해 하루 1m 가까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기 시작한다. 4년 동안 별 성장이 없는 죽순에 실망하고 포기를 생각한 그 순간에도 대나무 뿌리는 자라고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언젠가는 멋지게 성장할 거라는 믿음을 한 번도 버리지 않으셨다.

그 믿음과 응원이 자양분이 되어 내가 어두운 땅속에서 점프하여 성장하게 할 수 있던 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삶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지금 당신은 자신을 루저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당신의 자녀가 당신이 원하는 속도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실망하고 있는가? 꽃봉오리가 맺히는 시기는 각기 다르다.

우리는 각자 고유의 과정과 속도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나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자신을, 그리고 당신의 자녀를 믿어주길 바란다.

우리의 가능성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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