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새 학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아무리 입시 요강 공부를 해도 그동안 학급관리와 영어 수업만 열심히 했었지 입시 지도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험난한 고3 담임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3월 2일 개학식. 3학년 3반 교실.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간다. 이 세상엔 3종류의 인류가 있다고 누가 이야기했던가?
남자, 여자 그리고‘고3!’
확실히 아이들도 자신들은 영원히 될 것 같지 않았던 고3이 되고 나니 이제서야 실감이 나는 모양이다. 교실에는 비장미마저 맴돌았다.(음...지금 생각해 보면 정작 아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앉아있었는데 처음 고3 담임을 한 나만 너무 결의에 차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진학 상담 시 티슈는 필수 아이템
다음 날부터 매일 2~3명씩 번호순으로 진학할 대학과 학과에 대한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한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 후까지 상담을 진행한다. 학생과 부모님이 함께 상담에 참여하기도 한다. 어떤 어머니는 교무실 입장과 동시에 눈물부터 흘린다. 그래서 상담 시 크리넥스 티슈는 필수다.
나의 하루 일과는 아침 7시 반쯤에 교무실에 도착해서 수업, 상담, 수업, 상담의 무한 반복이 다. 고 3은 EBS교재를 수능 전까지 다 끝내야 하기 때문에 방과 후 수업도 진행해야 한다. 방과 후엔 직장을 다녀서 저녁시간밖에 여유가 없는 학부모님들을 위한 저녁 상담도 기다리고 있다.
상담 내용의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고 3 담임이 되기 전까진 나는 커피가 이렇게 소중한 음료인지 몰랐다. 평소에 커피를 마시지 않았던 덕분에 커피 빨(?)이 엄청나서 나는 미친 염소마냥 하이텐션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학부모님들은 남자 담임 선생님들보다 여자 담임인 내가 더 편하신가 보다. 게다가 커피 다량 복용으로 인해 실실 웃어대는 나를 싫어할 리가 만무했다. 일단 상담에 들어가면 최소 1시간 이상 상담이 진행되고 만다. 처음엔 아이 입시 진학 문제로 상담하던 내용이 가정문제, 학부모님의 주식투자 실패 문제, 고부간의 갈등 문제들로 까지 확대된다. 이럴 땐 뭐라고 답해드려야 하나... 나는 눈물범벅이신 어머님께 티슈를 뽑아 드리며 취미나 종교 생활을 가지며 마음의 여유를 좀 가져보는 게 어떠시겠냐고 조심스레 말씀드려본다.
동국대 보내주세요~
오늘 상담 한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동국대만이라도’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신다.
‘동국대만이라도라니?! 이 아이의 1, 2학년 내신 평점은 평균 4점 후반 대인데 ....(허허..이 녀석 고1, 2학년 학교생활을 정말 신나고 즐겁게 보냈었나 보다...) 동국대는 문과 기준으로 내신 평점 1점 중후반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이 어머니는 동국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진학상담을 하러 오신 것 같다. 이럴 땐 제대로 된 진학 상담보다는 학부모님에게 아이의 성적과 현실적인 입시 상황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다 보낸다. 우리 아이의 실제 진학 상황에 충격을 받으신 어머니가 갑자기 오열한다. 그동안 아이에 대해 믿었던 것에 대한 깊은 배신감과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좌절감 그리고 갱년기 증상까지 더해져 교무실 안 회의실은 갑자기 장례식 분위기가 되었다.
이럴 땐 나도 울고 싶다. 나도 마음 같아선 우리 반 학생들 다 ‘SKY’이에 보내고 싶다! 그러나 이렇게 학부모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알려줘야만 하는 역할이 참 고되다. 오늘만 해도 두 분의 어머니의 눈물을 보아야만 했다. 아~~~ 오늘은 정말이지 기분이 쳐진다. 모르겠다~오늘은 맥주 한 캔 마시고 자야겠다....
고3 담임의 인센티브
다음날 교무실 내 옆자리 선생님의 표정이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다. 그 선생님은 조금 전 학부모 한 분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고3 담임은 애들 좋은 대학 보낼 때마다 학교에서 인센티브 받는다면서요?!!!”
“우리 아들 가지고 장사하지 말라구요!”
어제 그 선생님은 본인의 학급 아이 한 명과 진학 상담을 꽤 오래 진행했었다.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아이여서 내 영어 수업 시간에도 가끔씩 애를 먹이곤 했다. 진학 상담이 짜증 났던 아이는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담임 선생님에 대해 안 좋게 말한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고3 담임들 중 학생들을 서울대 보낼 때마다 인센티브 받지 않냐고~
'인센티브? 그게 뭐지? 새로 나온 간식 이름인가?'
‘인센티브’따윈 전혀 없다. 아, 맞다! 하나 받는 건 있다. 학급 아이가 대학을 잘 갈 때마다 주변에서 보내는 ‘축하’ 그리고 ‘보람’ 뭐 그런 거?
그러나 옆반 담임선생님과 같은 그런 일을 겪을 때면 ‘고3 담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말까지 들어가며 학생 진학에 힘써야 하나...’라고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