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도 똥배에도 줄넘기(우울증 환자의 줄넘기 #2)

히말라야 안나프루나는 못 올라도 줄넘기 1000개

by 이자까야


세상에서 가장 만만하고도 태산 같은 줄넘기.


몇 년 전 등산을 좋아하시는 지인분이 네팔에 있는 히말라야 안나프루나를 등반하고 오셨다고 자랑하셨다.


자녀들 다 대학 보내고 났더니 갱년기가 왔다고 하셨다.

우울하고 삶에 의욕도 없어서 뭔가 도전하고 싶으셨단다.


그렇다고 북한산, 지리산도 아니고 안나프루라라니...


내게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해 준 50대 후반의 어느덧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 보다 많아지기 시작한 그 여성분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아담한 키에 통통하지만 단단한 체형과 자신감 넘치게 웃는 모습이 강남 가로수길 에서 볼법한 세련된 복장에 깔끔하게 세팅한 헤어 스타일의 젊은 여성들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아니, 좀 더 원초적으로 표현하자면 젊은 나이의 축복인 탱탱한 피부와 풍성한 머리숱과 윤기를 가진 20대들보다, 오랜 기간 중력과 싸워온 그 탄력감과 힘, 그리고 수 십년 인생의 고난을 극복해 본 사람한테서만 나오는 그 아우라 있는 멋짐은 나의 하찮은 어휘력으론 표현하기 힘들었다.


의느님은 예쁜 얼굴로는 만들 수 있을 지언정 그런 아우라와 카리스마는 만들지 못하니까.


그 분의 나비효과인건가?

모든 것들이 멈춰 있던 나도 뭔가라도 도전하고 싶었다.

나보고 "모든게 잘 될거야" 라는 막연한 위로의 말들보다 그 분의 경험담이 내겐 힘이 되었다.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줄넘기는 히말라야의 안나프루나 등반 같은 모험"이었다.


거의 1년 동안은 발작 때문에 누워만 있었고, 병원 한 번 가는 것도 내겐 험난한 일이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무릎 관절이 부어오를 때면 노인용 지팡이를 짚어야만 했다. 이명증과 갑작스러운 외부 자극에도 발작하며 쓰러질 수 있으니 모자를 눈밑까지 깊게 눌러 쓰고, 귀마개로 꼼꼼히 소리를 차단 해야 했다.


내 모습은 딱 지팡이 든 여자 심봉사였다.


멀고, 귀 먼 심봉사의 줄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여자 심봉사의 줄넘기.


방 안이라는 동굴에 웅크리고 세상과 단절하고 있던 나였다. 그런 내가 밖으로 스스로 나가 줄넘기라는 뜀박질을 한다는 것은 '건강하고 멀쩡했을 때의 나'에겐 그저 조깅 쯤의 운동 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내겐 커다란 결심이 필요했다.


"줄넘기를 뛰면 엔돌핀, 세로토닌이 나와서 우울증이 줄어들 수도 있을거야."


"줄넘기를 하면 체력이 생겨서 발작을 해도 잘 버틸 수 있을거야."


"줄넘기를 하면 조금이라도 몸이 튼튼해지니까 그러면 정신력도 올라가겠지."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다시 나가게하기 위해 나는 나만의 온갖 대의명분으로 나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집구석 히끼꼬모리로 우울증과 발작에만 매몰되어 있었을 것이다)


일단 줄넘기를 1000개만(?)해보자라고 생각했다.

일단 1000개라니?!

정신과를 다니고 있긴 하지만 내가 진짜 미치긴 미쳤었나보다. 1000개 라는 횟수를 우습게 알다니말이다.


초등학교 이후 처음 하는 줄넘기.


아픈주제에 꼴에 자존심은 남아서는 곧 죽어도 줄넘기 1000개를 채우고 싶었다.


줄넘기 1000개라... 무모하긴 했다.


요가도 3일만 안해도 유연성이 떨어져 몸이 뻗뻗해지는데 1년을 꼬박 누워만 있던 내가 냅따 줄넘기 1000개를 하겠다니.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이라는 노래와는 달리 현실은 제아무리 쿠션감 좋은 새 운동화를 신고 줄넘기를 해도 금방 땅바닥에 주저 앉아 땅과 한몸이 되었다.


"줄넘기 줄 한 번 돌리고 제 자리에서 한 번 뛰는게 이리도 힘든 일이었나?!"


"내게만 지구의 중력이 강한건가?"


70개 채 뛰지 못하고 천근만근 이 몸쓸 몸땡이는 땅위에 뜨는둥 마는둥 하더니 또 자리에 풀석 주저 앉아버렸다. (그날 엉덩이로 바닥 청소를 많이 한 것 같다.)

입 안부터 목구멍까지 물기가 말라 살짝 오바이트가 쏠렸다.

이거...공황발작의 심계항진인건지, 운동 부족으로 인한 심장 펌프질에 과부하가 걸린건지...어쨌든 내 심장은 요동치며 펄떡였다.


초등학교 이후 나의 첫 줄넘기.

뛰다, 땅바닥에 주저앉다를 수 없이 반복했다.


400개 정도에 도달했을 때는 입안에서 욕까지 튀어나왔다. 무능해진 나를 향한 욕이었는지,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그 몹쓸 인간을 향한 욕이었는지, "ㅅㅂ, ㅆ,ㅈ"등의 자음으로 시작하는 온갖 욕설이 방언처럼 튀어나왔다.


욕하면서 줄넘기를 했다.

괴롭힘 당했던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줄넘기를 했다.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던 나를 향해 욕을 하며 줄넘기를 했다.

가해자를 향해 욕을 하며 줄넘기를 했다.

욕설 덕분인지 화가 치밀어 올라 없던 힘도 생겼다. 오기와 분노로 점철되었던 줄넘기는 결국 1시간은 더 걸려 1000개의 횟수가 채워졌다.

종아리 뒤쪽은 쥐가 나고 어깨와 팔도 결리고...몸은 너덜너덜 해진 듯 했으나 마음만은 간만에 맛보는 뿌듯함이었다.


"우울해도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날 내 일기장에 쓴 그 날의 한 줄 평이다.


학교에서 오랫동안 산만한 덩치의 남고생들에게 운동도 가르치던 나였다. 세월을 탓하기 전에, 내가 환자라고 변명하기 전에 냉정히 지금의 상황은 받아들여야했다.


나는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는거다.


음식을 도저히 못 먹으면 (우울증약과 우울증 자체의 부작용인지 미각 기능이 많이 떨어진다. 또한 음식을 먹으면 명치 부위에 통증이 느껴져서 잘 안먹게 된다) 영양 링거라도 맞으면 된다.


발작이 올 것 같으면 얼른 안정제를 먹으면 된다.


영양 링거로 인해 인슐린 수치가 올라가면 그냥 식염수 수액이라도 맞으면 된다. 그러면 조금 기력이 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줄넘기.


이 줄넘기 줄을 뛰어 넘을지 말지는 오직 내 선택이다.


나는 매일의 내 한계의 을 넘기로 했다.

선을 넘고 높이 뛰고 싶었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마음먹고 나름의 지행합일을 실천한 지도 벌써 1년. 브라운아이드 소울의 '벌써 1년'이란 감미로운 노래와는 사뭇 다른 '나의 지난 줄넘기 1년'은 나와의 처절한 겨루기 시간이었다.


건강할 땐 '운동도 간지나게'를 외치며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던 나였다. 헬쓰장을 가거나 필라테스학원, 또는 요가원 정도는 가서 운동해줘야 운동다운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건강했던, 그리고 운동에 허세가 많았던 과거의 나'는 줄넘기는 어린이들이나 하는 운동이라 생각하고 과소평가 했었다.


체면 그게 뭐라고!

나는 남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추락하고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중력에 거슬러 뛰어오르는 줄넘기 였다.


"초등학생인 우리 아들 두 놈들 6년 동안 태권도장 보내 놨더니 주구장창 줄넘기만 하더라구~

태권도보다 줄넘기를 더 잘해.

그 동안의 학원비를 계산해보니 아들놈들 줄넘기값에 차 한대 값을 낸 셈이더만. 껄껄~"


불현듯 식사모임에서 요즘 아이들의 학원비에 대해 투덜댔던 한 지인분 말이 생각났다.


그러네! 그러니까 나도 꾸준히 줄넘기를 하면 나도 차 한대 값은 버는 셈이네!


이러한 자기 설득으로 일주일에 3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줄넘기를 하기로 했다.


처음 줄넘기 1000개 하는데 걸린 시간 1시간 남짓.(줄넘기 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았다.)


몇 달이 지나자 줄넘기 1000개 하는데 걸린 시간 40분 이내로 단축되었다.

(줄넘기를 좀 더 가볍게 뛸 수 있게 되었지만 700개 정도부터는 어김 없이 깊은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온갖 자기 변명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줄넘기 1000개 뛰는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매일 노력하지만 매일 쉬운 일은 없다.

그저 꾸준함과 인내로 할 뿐이다.

줄넘기의 횟수와 비례하여 나의 근육은 좀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길 바란다. (사실 근육이 좀 붙었다)


나는 줄넘기를 하면서 물리적으로는 "같은 자리에서 뛰기" 를 하고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이제는 샤넬백을 두른 나보다 줄넘기를 어깨에 둘러 매고 집앞 공터로 나가는 내가 좀 더 간지나는 것 같다.


더이상 줄넘기 신공을 보여주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두렵지 않다.



"어린이들아~ come on yo! "

"얼마든지 상대해주리라! "

" 이번엔 산전 수전 공준전 다 겪어본 어른의 줄넘기를 보여주리라!"



언젠가는 안나프루나에서 수 많은 외국 등산객들 앞에서 줄넘기를 하는 나를 희망해본다. 아마 등산객들이 나를 진짜 또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럼 혹시 또 아는가?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인사가 될지.

이런 생각을 할때면 우울해서 죽고싶다가도 적.극.적.으.로. 살고 싶어진다.


병의 완치, 또는 상황의 극적 변화, 인생 역전 같은 단어에는 큰 기대가 없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나아질거라는 믿음을 계속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It doesn't get easier.

You just get better.


ㅡ 이 말은 내가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 줄넘기 주의사항

1. 줄넘기를 하기 전엔 반드시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준비운동 없이 바로 점프를 했다가 종아리 비복근에 쥐가 나서 바닥에 대굴거리는 불상사를 겪을 수 있다.(나는 이미 겪었다^^;)

2. 줄넘기 회수는 나처럼 무식하게 1000개만을 외치지 말고(나는 극단의 자극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컨디션에 따라 회수를 조금씩 늘려가면 좋다. 뛰다가 힘들면 쉬어가면서 해도 괜찮다. 한 달 뒤쯤엔 1000개는 가뿐히 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3. 줄넘기는 어른이라고 선수용 줄넘기를 사용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선수용 줄넘기는 줄이 날렵하고 흡사 쇠줄 같다. 줄넘기 뛰다 걸리기라도 하면 허벅지나 종아리에 스스로 채찍을 때리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이것도 난 이미 겪어봤다ㅠ)


4. 줄넘기를 한다고 해서 다리만 피로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다음 날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보면 안다. 어깨와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심한 근육통을.(그래도 숟가락 들 힘은 있으니 걱정안해도 된다)

팔과 어깨로 줄넘기 줄을 회전 시키기 때문에 어깨 외회전근계, 전완근의 운동량이 많기 때문이다.


줄넘기 전과 후 팔과 어깨 스트레칭을 많이 하면 근육 피로도가 많이 줄어든다.


5. 성인이 해도 줄넘기 가격은 몇 천원 대면 충분하다. 특히 살빼고자 한약 또는 병원에서 식이조절제 등 괜히 비싼 돈을 내고 부작용만 겪지말고, 커피값 한잔이면 10키로 이상은 뺄 수 있다. 가성비 최고다!


6. 무릎 관절이 혹시 아프거나 불편할 경우 무릎 보호대를 하고 앞 발을 사용하여 줄넘기를 낮게 뛰면 부상예방에 도움이 된다. (줄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만 낮게 뛰는 것이 포인트다)


7. 팔을 몸 양옆에 붙인 상태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줄넘기 봉을 살짝 눌러준 뒤 손목으로 줄을 돌려야한다.


8. 비가 오거나 기상악화로 인해 야외에서 줄넘기를 하지 못 할 경우에는 주차장이나 필로티 건물 1층 등의 비가 맞지 않는 곳에서 줄넘기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줄 없는 줄넘기도 시중에 많이 판매하고 있으니 실내에서도 줄넘기를 할 수 있다.(단 아파트나 윗층에 살경우 층간소음을 조심하자.)


* 줄넘기 효과

1. 살은 당연히 빠진다. 어떤 분이 내게 점프를 하면 얼굴살이 쳐지지않냐는 심박한(?) 질문을 했다. 운동을 안해서 피부가 탄력을 잃고 늘어지는 것이지 줄넘기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면 운동선수들은 매일 뜀박질하는데 불독처럼 얼굴살이 쳐져야하는게 맞지 않을까? 오히려 뛰기를 하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탄력 시술하는 사람들보다 더 탱탱하다.


2. 살이 빠지면서 당뇨, 중성지방이 줄어들고 심혈관계가 강해진다.


3. 뼈가 강해진다. 나이 들면 키가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우리 뼈는 중력의 자극에 저항할 수록 골밀도가 올라가서 뼈가 더 단단해진다.


4. 점프를 하는 것 자체가 상체와 하체를 동시에 움직여야하고 줄을 회전 시키기 위해 팔 근육들도 사용해야 한다. 이때 몸의 균형을 제대로 잡기 위해 복부, 즉 코어에 힘을 많이 주게 된다. 한 마디로 똥배살이 빠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중년의 꿀벅지 만들기 -스쿼트와 월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