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할 여건이 못된다

운동! 결국 마음의 문제지 상황의 문제가 아니다.

by 이자까야

한때 운동 관련 글들로 브런치에서 수많은 분들의 자극제가 되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운동 전도사'는커녕 병원 주치의에게 "운동 좀 해라"라는 말까지 듣게 된 걸까?


헬스장에서 혼자 운동하고 있으면 외국사람들이 혹시 운동선수냐고 물어왔던 적이 있었다.

유명 잡지사에서 특집기사(주제가 '운동하는 전문 직장 여성'이었다)로 운동 모델 제의도 들어왔던 나였다. (탑과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거였는데 그 당시 남학교 교사로서 시대가 보수적이고 말이 많이 나올 것 같아 촬영을 포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깝다. 내가 언제 또 그런 유명 잡지에 출현해 볼 기회가 있겠나...)


어쨌든 그때의 건강의 아이콘은 어디 가고 지금 내 모습은 비쩍 말라버려 수분기조차 없는 좀비 같다.




내가 연재했던 운동 관련 글이 브런치에서 갑자기 약 12만 조회까지 나와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아..,. 자꾸 '과거' 시제로 말하니까 가슴 한 켠이 저려온다)


냉정하게 '과거의 잠시 잠깐 동안의 영광스러웠던 기억'은 뒤로하고 그동안 내가 왜 운동을 하지 못했나에 대한 이유들을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1. 일단 2021년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해였다.(*이전 글 참조) 하도 끔찍했던 시기라 그때의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다.

공황발작으로 다량의 없인 일상생활이 힘들었고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 (정신과 약을 복용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약을 복용하면 신체증상은 완화되지만 정신도 나른해져서 무엇인가를 집중력있게 하기 힘들어진다)


2. 거식증까지 와서 1년간은 음식을 잘 섭취하지 못했다. 영양링거 또는 암식단 음료 1~2개로 하루를 버텼다. 현재는 음식을 조금 먹을 순 있다.


3. 심한 우울증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잔 지 2년이 넘었다.(하루 평균 2~3시간 미만으로 자긴 하는데 매일이 너무 피곤하다) 그래서 병원 진료 때문에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기진맥진해서 집으로 돌아와 뻗어 버린다. 솔직히 지금도 피곤한 상태다.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는다. 미칠 노릇이다. (참고로 수면제도 내성이 생겨 이제 효과가 미미하다)


4. 공황발작 때문에 번잡한 곳에 잘 나가질 못하니 운동할 수 있는 공간제약이 많다.('여자 헬창'이었던 나는 예전엔 오히려 신나는 음악이 빵빵 터져 나오는 헬스장의 열기가 좋았다. 퇴근 후 없던 힘도 생겼다. 그러나 지금 내게 헬스장은 너무 시끄럽고 사람도 많아 심계항진이나 과호흡등의 신체증상이 올 수도 있는 위험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5. 예전에 자전거 타다 덤프트럭 뒷바퀴에 깔려서 오른쪽 발목이 으스러져서 큰 수술을 했다. 나이 들수록 발목 수술 부위에 후유증이 올라오는 듯하다. (부딪히고, 깔리고, 날라가는 등 교통사고는 총 6번 당했다. 거짓말같지만 사실이다)


6. 20대 때 놀이공원 기구에서 떨어져서(뉴스에나 나올 법한 이 사건은 다음에 자세히 다루어볼까 한다)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나름 큰 수술을 했다. 수술 후 다시 제대로 걷는 데까지 재활기간 합쳐서 4 개월이 넘게 걸렸다.


*뼈는 부러지고 난 후 다시 붙으면 뼈 밀도가 올라간다. 그래서 뼈는 더 강해진다. 격투기 선수들의 주먹이 그래서 무서운 거다. 그러나 인대는 비유하자면 고무줄과 같아서 한 번 다치고 나면 완전하게 복구되지 않는다.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나이질뿐 예전 기능을 온전히 되찾을 순 없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축구하다 다리 부러진 아이와 다리 인대 늘어난 아이 둘 중 누가 더 걱정이 될까? 평생 남는 휴유증이라는 측면에선 뼈 부러진 것보다 인대부상이 더 심한 부상이다. (내가 근무하는 남고 특성상 평균 한 반에 인대 다치는 아이 2~3명, 뼈 부러지는 아이 1명씩은 꼭 있다)


7. 몇 년 전 요가 아쉬탕카를 수련하다가 오른쪽 어깨에 있는 외회전근계(인대)를 심하게 다쳐 8개월간 어깨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지금도 후유증은 남아있다.


8. 나이가 많다. (나를 젊게 봐주는 분들껜 고마운데 난 나이가 많다. 금년부터 만 나이 체제를 시행해서 감사하다. 덕분에 나이가 다시 깎였다. 하지만 나이는 줄어들었는데 몸은 더 늙었다 ㅜㅠ)


9.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개인사에서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이 부분이 현재 가장 큰 문제점인데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어 안타깝다)


10. 운동을 오래 쉬고나니 시작 자체가 어렵다.


플랭크하려다 이러고 잔 적 다 들 한번씩 있지 않은가?


위의 사항들이 내가 그동안 운동을 못한 이유들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변명들'이다.


그런데...

때론 이런 구차한 수 만 가지 이유를 한 번에 무력화시키기는 계기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

나의 이 모든 변명을 일축시켜버리는 사진 한 장.

1997년에 태어난 시온 세이버.

선천적으로 하지가 없이 태어났다.

고등학교생때 레슬링 선수였으며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이 선수는 어떻게 일반인도 하기 힘든 운동을 해 낼 수 있었을까?!


처음엔 사진이 합성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시온 세이버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봤다.


"No excuses and just do it!: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그냥 닥치고 해!"란 뜻이 되겠다.

나는 그동안 변명덩어리였다.


시온 세이버처럼은 못해도 최소한 징징대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은 닥치고 해야겠다.


운동하는데 변명은 필요 없다. 운동을 할 수 없는 백 마디 이유를 갖다 붙여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냥 하기 싫어서 안 한 거다. (윽...내가 말하면서도 내가 엄청 찔린다)


그래서 나도 오늘 다시 운동복을 입고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계단 오르기, 줄넘기를 열심히 하고 왔다. 예전에 내가 운동했던 종류와 퍼포먼스에 비하면 초라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한 운동의 종류가 아니라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겠다는 마음 그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운동 기량도 올라가겠지


속담에 "나는 바담풍해도 너는 바람풍해라"라는 말이 있다. 본인은 제대로 안 하면서 남한테만 열심히 하라고 한다는 말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일단 나부터 시작하고, 변하고, 조금이라도 발전한 뒤 전처럼 다른 분들께 쉽고 재미있는 운동 방법을 소개하고 싶다. (나도 양심이 있지, 내가 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분에게 지식만으로 운동을 알려주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다음번 병원 진료 갔을 땐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어? 이자까야 환자분 뭔가 몸이 많이 좋아지셨는데요?!"라는 말을 꼭 듣고 싶다.




"Impossible(불가능)"에서 빈칸 하나만 띄우면 "Im possible(나는 가능하다)"라는 말이 된다.


Impossible에서 빈칸 하나만 띄우고 '우리의 의지'만 살짝 끼워 넣으면 모든 게 가능해진다!


* 내가 하는 말은 남도 듣지만 나 스스로도 듣는다. 이 글은 어쩌면 내가 내게 하는 말이다. 내가 나 자신을 증언하고 증명하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울증에도 똥배에도 줄넘기(우울증 환자의 줄넘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