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담임은 누가하나요?#4

수능이 끝난 후의 교실

by 이자까야

11월 셋째 주. 드디어 수능이 끝났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의 외모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아이들이 펌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머리를 펌을 하는 것이 마치 고등학생에서 성인으로 되는 통과의례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아침 조회를 들어가니 한 학급 전체가 ‘브로콜리’ 재배 밭 같다.


그 와중에 그동안의 학교 두발 검사에 항변이라도 하듯이 한 녀석은 머리를 너무 뽀글뽀글~하게 볶았다. 흡사 바람 불어도 한 오라기의 흔들림도 없는 ‘할머니 뽀글이 펌 헤어’가 완성(?)되었다. 과도한 욕심이 부른 참사랄까? 학급의 아이들도 그 아이에게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뽀글 머리 아이’는 낙담하며 오늘 당장 다시 미용실 가서 머리를 스트레이트로 피겠다고 한다.


“처음에 펌을 하면 원래 한동안은 심하게 곱슬거려. 한 2주만 참아봐. 그러면 컬이 적당히 풀리기 시작해서 자연스러울 거야.”


나는 고3 담임이 되면서 학생에게 처음으로 진학이나 공부가 아닌 패션에 대한 조언 및 위로를 해 주었다. 매일 아침마다 복장 검사를 칼같이 하던 담임이 ‘네 헤어 스타일 괜찮아’라고 칭찬 같은 위로를 해 주니(사실 위로다!) 아이는 살짝 얼떨떨해하면서도 감동을 받는 눈치다.



12월 첫 주가 되자 수능 성적이 발표된다. 수능 성적표를 확인하고 아이들의 얼굴엔 희노애락의 만감의 표정들이 교차된다. 게다가 이때부터 대학마다 순차적으로 수시 합격 발표를 하기 시작하는데 교실에서 아이들은 떨리는 손으로 대학 사이트에 접속하여 자신의 수험번호를 입력한다. 접속자가 폭주하는 모양인지 결과 확인이 몇 초 더 지연된다. 몇몇 학생은 그 순간이 견디기 힘들어 발을 동동 굴린다. 갑자기...교실은 합격의 기쁨과 탈락의 슬픔이 뒤범벅이 된다. 어떤 아이는 합격 소식에 환호의 소리를 지르고 어떤 아이는 갑자기 “시발!” 짧고 굵은 욕설 한 마디를 내뱉은 후 책상에 엎드려 이어폰을 꼽고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그중 한 아이는 “역시 남자는 군대!”라며 갑자기 입대 선언을 한다. (학급에 한 두 명은 이런 극단적인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새해에 입대를 하여 졸업식에 참여하지 못해 어머니께서 울면서 졸업장을 대신 받으러 오셨다.) 12월 한 달 동안은 학급 학생들과 더불어 나도 함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제 정시 지원 상담을 슬슬 시작한다. 그런데 수시모집에 비해 정시모집은 수능성적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수능성적과 대학 지원 배치표를 함께 펼쳐놓고 지원 가능 대학을 상담한다. 그래서 수시 지원에 비해 업무량이 많지 않다. 그리고 12월부터는 고1, 2 담임 선생님들에 비해(고1, 2 담임 선생님들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학생부 입력 때문에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고 일해야 한다. 고 1, 2 담임교사들에겐 12월이 가장 힘든 시기다.) 고3 담임들은 상대적인 시간 여유가 많아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시간적 여유를 누린다.(9월과 10월은 그렇게 죽을 것처럼 힘들더니 12월이 되니 갑자기 고3 담임도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훗..나라는 사람은 참.... ) 나도 그동안 못했던 쇼핑도 좀 하고 질끈 묶고 다녔던 머리도 세팅하고 출근하니 동료 선생님들이 ‘노량진 고시생 몰골에서 취업에 합격한 사람 모습(?)’ 같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해주신다. 하긴...10월 달엔 헤어 스타일은커녕 시간이 없어 머리도 매일 못 감고 다녔으니 나도 할 말은 없다...



연말이 되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자 학급 출석부와 교무일지를 정리하다 보니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학급 출석부와 교무일지에는 매일의 전쟁 같은 내용들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학생들과 진로 상담을 하며 학생과 싸우기도 하고(교무일지 귀퉁이에 ‘나쁜 새끼...’ 등등의 욕도 좀 써 놓은 것을 보니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꽤 화가 많이 났었나 보다... 허허...), 대학 안 가고 평생 게임이나 하며 피시방에서 살고 싶다는 녀석을 공부시키려고 설득하느라 진이 다 빠지기도 하고(이 녀석에 대해서도 교무일지에 써 놓은 것을 보니 어느 순간 교무일지는 업무용이 아니라 내 일기장이 되어버렸던 것 같다.), 그 아이들의 합격 소식에 함께 웃고, 울며 1년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렇게 아이들과 각본 없는 한 편의 드라마를 찍으며 학생들을 좀 더 이해하고 업무적으로도 많은 것을 배운 한 해였다. 그리고 고1, 2 담임 때보다 몇 배는 힘들었지만 다른 학년들과 다르게 고3 아이들과는 힘든 시기를 함께 잘 견뎌내면서 학생들과 끈끈한 전우애 같은 감정도 생겨났다.(이때 아이들은 지금 만나도 가족처럼 반갑다.) 10여 년 만에 망설이다 결국 고3 담임을 지원했지만 막연하게만 알던 대학입시 요강에 대해 온몸으로 겪으면서 배웠고 학생들 인생의 첫 관문을 통과시킨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느낌이다.

전국의 고3 수험생들과 고 3 담임 선생님들, 언제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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