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온실 광녀 사건.

by 이자까야

학교는 언제나 소란스럽다. ‘고요함’이란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교실이나 복도에 있으면 아이들의 소란함과 떠들어대는 소리 때문에 귀가 멍해질 때가 많다.(그래도 한 가지 위로가 되는 점은 남학생들의 목소리는 중저음이라 그나마 견딜 만은 하다. 한 여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 말에 따르면 여학생들은 ‘돌고래 초음파 소리’를 질러대서 가끔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단다.) 비유하자면 학교에 있다는 건 세일 기간에 백화점 행사장 한가운데에 하루 종일 서 있는 기분이랄까? 어딜 가도 학생들 또는 선생님들이 있다. 이 넓은 학교에 잠시 혼자 고요히 있을 공간이 없다니...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여서 잠시 정신적인 휴식 또는 힐링이 절실히 필요 한 그런 때가 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했다. 중학교 옆에(우리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다.) 통유리로 된 낡고 아담한 유리 온실이 있다는 것을. 온실에 들어가 보니 온갖 식물과 화분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다. 햇볕을 마음껏 받고 초록초록 컬러를 뽐내고 있다. 사방이 유리벽이라 채광이 좋고 따스해서 살짝 졸리듯이 눈이 스르륵 감긴다. 아이들의 시끌벅적 소란한 소리도 여기에서는 멀리 아득하게 들려서 마치 다른 공간에 들어온 것 같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미니 단풍나무 분재는 뿌리가 화분을 뚫고 온실 바닥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한 무리의 군자란에서는 연한 주황색의 꽃 내음이 어떤 향수보다도 달콤하다. 어린아이 키만큼 쑥 자라 버린 로즈메리도 허브 주제에 나무 인척 위풍당당 서있다. 터프한 청록색을 자랑하는 로즈마리 잎을 만져보니 의외로 향기는 부드럽고 감미롭다.

“유레카~~~!” 매일 소란스럽고 정신없는 이 남학교에서 나만의 힐링을 위한 작지만 소중한 공간을 발견한 것이다! 남학교에 통유리로 된 미니 온실이라니...

그때부터 속상한 일이 있거나 정신적으로 지칠 때면 아무도 몰래 조용히 나만의 아지트인 온실로 가서 짧게는 몇 분 길게는 한 시간 넘게 힐링하다 업무에 복귀하곤 했다.

삐끄덕~~’뻑뻑해진 낡은 온실 문을 열고 온실에 들어서면 갑자기 세상의 소음에서부터 해방된 기분이다. 온실 바로 옆 중학교 건물에서는 아직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하이톤의 중학교 남학생들이 원숭이처럼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하지만 온실 문을 닫으면 소음이 어느 정도 차단된다.) 나는 온실 사용료(?) 대신 온실에 올 때마다 식물에 물을 준다. 온실 관리인이 따로 있을 수 있겠지만(그러니 식물이 마르지 않고 잘 자라고 있는 거겠지) 통유리로 들어오는 햇살이 강해서 식물들은 항상 수분이 부족한 것 같았다. 잎사귀가 몇몇 개는 햇볕에 타들어 간 것도 보인다. 그래서 가위도 가져가서 시든 잎사귀나 줄기도 잘라준다.


그날도 수업 공강 시간에 온실로 갔다. 흙이 바싹 말라있어서 식물 하나하나에 정성 들여 물을 주고 있었다. 식물들이 많아서 소외된 식물들 없이 물을 다 준다는 것도 은근히 힘이 든다. 그러다... 듣고 말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미친년아~~~~!!!”하고 부르짖는 소리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고등학생들이고 중학생들이고 요즘 아이들은 하도 대화에 욕을 많이 섞어서 하니까 그러려니 했다. 아마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떠들어대나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또 “미친년아~~~!!! 머리 긴 미친년아!!!” 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보다는 좀 더 큰 소리였다. 좀 전까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머리 긴’이라는 대목에서 뭔가 기분이 싸~~했다.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다시 “미친년아~~~ 꽃에 물 주는 긴 머리 미친년아!!!”라는 아까보다는 더 커진 목소리가 들렸다. 물을 주던 물 조리개를 집어던지고 (이때 나는 세 번의 욕설에 이미 심장이 ‘쿵쿵쿵’ 비트박스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욕설이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온실 바로 앞 한 중학교 건물 2층에서 어떤 중학생 아이가 내게 욕을 한 것 같다. ‘중학생 꼬꼬마 주제에 감히 고등학교 선생님께 욕설을 해?!!!’ 무방비 상태에서 욕설을, 그것도 한 번에 ‘쓰리쿠션’(?)으로 당한 나는 온실을 나와 소리가 났던 중학교 건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중학교 건물 2층은 중학교 2학년 교실이었다. 소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막강한 종족이 살고 있는 ‘중2 교실’! 하지만 나는 교생 때부터 일진 잡던 교사 아니던가! 아까 욕설이 들렸던 위치로 추정되는 중학교 2학년 교실로 들어가서(마침 중학교 쉬는 시간이었다.) “선생님한테 감히 욕한 놈이 누구야?!!!”며 고래고래 사자후를 내뿜었다. 다급히 뛰어오느라 헝클어진 긴 머리에 얼굴이 시뻘개진 채 모종삽까지 들고 있는 이상한(?) 여자를 보고 중학생들은 겁을 먹은 모양인지 일순간 조용해졌다. 교실에서 들려오는 소란한 소리를 듣고 학급 담임 선생님께서 다급히 교실로 들어오셨다. 담임 선생님의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욕을 한 해당 학생을 찾아내서 오늘 중으로 고등학교 교무실로 끌고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날 오후 3시쯤 내가 있는 교무실로 중학교 선생님께서 보조개가 귀여운 조그만 중학생 한 명을 데리고 오셨다. 나를 ‘온실 광녀’ 취급했던 그 욕설의 주인공이었다. 고등학교에서 하루 종일 커다랗고 시커먼 고등학교 남학생만 보다가 아직 2차 성징도 안온 듯한 피부가 보송보송한 아이를 보니 차마 야단을 칠 수 없어 좋은 말로 다음부터는 욕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돌려보냈다. 몇 시간 전에 화가 치밀었던 상황에 비해 너무 싱겁게 끝난 마무리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난 3월.

그해 나는 고 1 담임으로 배정되어 새로운 우리 반은 어떤 아이들 일지 기대하며 입학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를 발견했다! 낯이 익은 그를.

나는 고등학교 새 교복을 입고 긴장한 채 운동장 맨 앞줄에 서 있는 한 신입생에게로 다가갔다.


“안녕?” “ 반가워~”

내가 웃으며 인사하니 그 신입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쳐다만 본다. 나는 밝게 이렇게 말했다.

“ 나 몰라?” “학교 온실 그 미친년~~”


무표정하던 그 신입생의 표정에 급격한 변화가 몰려든다. 조금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복잡 미묘한 표정을... 그리곤 아마 나의 마지막 말에 입학하자마자 험난하고 다이나믹해질 자신의 고등학교 생활을 본능적으로 예감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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