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꿈의 잔재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지만 괜찮더라

by 파담파담

누군가 내게 인생의 목표를 물으면, 나는 으레 "모르겠다"고 답했다.

몸담고 있는 IT 업계에서 그토록 중요시하는 '커리어패스'에 대해서도 대답은 같았다.

그럼 왜 열심히 일하느냐는 질문에도,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어릴 적에는 책이 제일 재미있었더랬다.

글을 가까이했기에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은 국어였고, 작은 백일장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진로를 정해야 할 때 주변에서는 '작가' 혹은 '국어 선생님'을 권했다.


당시, 나는 추천받은 직업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자신이 없었고, 작가는 생계와 거리가 먼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성적에 맞춰 적당한 대학의 적당한 학과를 선택했다.


특별한 목표 없이 들어간 대학이었지만, 나태하게 살지 않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시험을 볼 때는 높은 성적을 받고자 했다.

남들처럼 좋은 회사에 갈 수 있도록 경험도 쌓았다.


대학교 4학년에는 작은 회사에서 인턴도 했다.

목표가 없었기에, 동기와 선배들을 따라 직무를 선택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반년 간의 인턴 생활은 고단했지만, 어떻게든 끝이 났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할 때는, 프로덕트 매니저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몰랐다.

면접 질문마다 "잘 모르겠다"고 답변하는 모습이 솔직해서 좋다는 회사를 만나,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3년 6개월 동안 나름 열심히 일해왔다.

짧은 경력에 과분한 자리지만, 작은 팀도 이끌고 있다.

직장인의 사명과도 같은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어느 날, 한 동료가 내게 어떤 커리어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회사 업무만으로도 바쁜 와중에, 그 동료와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시작했을 때였다.

동료는 아마 내가 거창한 꿈을 품고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큰 목표를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보면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숨 가쁘게 살아오면서 건강까지 나빠졌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 질문이 계기가 되어, 내 목표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지금까지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아무래도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답은 뜻밖의 순간에서 얻을 수 있었다.


최근 어른이 되어 잊고 있었던 독서의 즐거움을 여자 친구와 함께 다시 깨닫고 있었다.

분위기 좋은 북카페를 찾아다니며, 언젠가 이런 카페를 차리면 참 좋겠노라 말했다.

여자 친구는 나와 참 잘 어울린다며, 북카페 사장이 되면 글도 써보라 했다.


불현듯, 내가 힘들더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고, 통과하기 어렵다는 심사를 한 번에 통과했을 때 즐거웠었다.

잠깐 여유가 생기는 날에는 카페로 글을 쓰러 가며, 오늘은 보람차게 쉬었다며 행복해했다.


글을 쓰는 '작가'는, 돈을 벌지 못할 것이라며 철없게 포기한 꿈이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가'처럼 글을 쓰는게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경험을 기록하고, 배운 것을 글로 남기기 위해 시작한 브런치는, 꿈을 찾는 단서가 되었다.


오랜 외면으로 낡아있던 꿈의 잔재는, 다시금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어주었다.

이제는 누군가 내게 목표를 물으면, "조용한 북카페를 운영하는 작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왜 열심히 일하느냐는 질문엔,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경험을 모으기 위함"이라고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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