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ty와 vacant

완전과 잠시

by 고시하

empty(완전히 비어있는), vacant(잠시 비어있는)의 차이입니다. 즉 완전히 와 잠시의 차이입니다. 텅빈이란 제목은 empty에 맞는 주제입니다. 돌멩이의 본질, 나무의 본질, 물의 본질 등은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성적 동물, 도구를 만드는 동물, 사회적 동물,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려고 동원했던 표현들은 수십 가지도 넘지만, 사르트르는 그 어느 것도 인간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어떤 한 가지 성질로 인간을 규정하는 대신에 모든 고정된 규정들을 다 지워버린 빈자리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했습니다.


텅 빈 상태는 무한한 가능성이지만, 동시에 끝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함과 모호함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빈자리를 결단과 실천으로 메워가는 것, 그래서 고유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에 대해 당당히 책임을 지는 것, 그게 바로 인간다운 삶이며, 바람직한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텅 비어야 놀기도 잘합니다. 업무, 공부, 해야 될 일들로 채워지면 놀 수 없게 됩니다. 놀아도 논게 아닐 것입니다. 놀이 안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놀이는 실제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기보다는 인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줍니다.




인간의 삶에서 놀이가 중요한 이유는 놀이야말로 강제나 외적 필연에 지배되지 않는 자유롭고도 창조적인 활동의 원형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논다거나 반드시 놀 수밖에 없다는 말은 없습니다. 물론 살다 보면 다른 이유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말이죠.

신입사원이 상사를 따라 홍도 안 나는 술자리에 가서 온갖 재롱을 떨어야 하는 상황도 억지로 노는 상황이 되겠지요. 그러나 그건 이미 진정한 의미의 놀이가 아니라 강요된 노동이며, 힘들고 지겨운 업무의 연장일 뿐입니다.


놀이와 자발성, 놀이와 자유는 때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을 이루고 있어, 놀 때 행복해지는 근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잘 놀 줄 모릅니다.

잘 노는 것도 일정한 연습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법인데,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청난 양의 알코올에 의존한 채 자학을 하거나 “먹고 죽자!”라던가, 리더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군대식으로 노는 “다 같이 원샷! 위하여!”일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놀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유와 자발성, 창조성이 사라진 놀이 자체가 일종의 촌스러운 매스게임이 돼버리는 것이죠. 우리는 대개 '일정한 틀'이 갖춰지고 판이 짜져야 놉니다. 한마디로 누가 먼저 분위기 띄워주고, 멍석을 깔아주거나, 리더가 나서서 지휘를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또 같은 또래의 패거리끼리만 모여서 노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때 구성원들은 최대한 서로 비슷비슷해야 합니다. 나이도 너무 차이 나면 안 되고, 성향도 너무 다르면 안 되며, 심지어 외모나 경제력도 너무 튀거나 처지면 안 됩니다. 모두 비슷비슷, 서로 만만해야 편안하게 잘 놉니다. 왜냐? 우리들은 대개 놀면서도 남의 눈치를 심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계절이 생기는 것은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때문이 아니라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가 만드는 평면을 공전궤도면이라고 하는데 지구의 자전축이 이 궤도면에서 23.5도 기울어져 있습니다.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으면 어떤 때는 햇빛을 정면으로 받고 어떤 때는 비스듬히 받죠.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고 한낮에 더운 것도 햇빛을 정면으로 받느냐 비스듬히 받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지구가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면 따뜻하고 비스듬히 받으면 춥죠. 사계절이 생기는 것은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궤도면에 수직이 아니라 기울어져있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삐딱하게 자전을 하므로 계절의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삐딱한 지구, 이 삐딱함이 사계절을 선물했습니다. 항상 곧고 바른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삐딱한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지구가 이렇게 삐딱하게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계절이 없었을 것이고, 지구가 돌지 않았으면 밤낮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일 수 있지만 시간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시간이란 변화에 대한 인간의 관념일 때가 많습니다. 변화가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시간을 느낄 수 있을까요? 시간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겨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아마 그런 세상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과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구의 이 삐딱함이 시간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습니다. 공간 현상인 자전축의 삐딱함이 시간 현상인 계절과 연관된다니!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여 시공간 4차원을 제안했죠. 시간과 공간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 것이 시공간 4차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 4차원을 이용하여 상대성 이론을 완성했습니다.

삐딱함은 공간의 문제이며, 공간이 시간에 영향을 주어서 계절이 생겨났다고 할까요? 시공간 4차원이 그렇듯이 시간과 공간은 이렇게 서로 교묘하게 얽혀있습니다.


삐딱함은 놀이입니다. 절대자의 변칙입니다. 현실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나다움의 풍요로 삐딱함이 다가올 때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서둘러 원형을 찾기 위해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보다 오늘은 삐딱함이 낙오가 아닌 행복일 수 있다는 여유로 둘러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