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1월 12일

by 쥬링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 싶다가도 홀연히 사라지고 싶은 요즘이다.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쓰고 싶은데,

하나의 일을 끝내면 다른 일로 넘어가는데 시간이 너무 소비된다.

집중을 하고 싶은데 집중이 안 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되는 일과 평소에 하는 일의 갈래가 너무나도 달라서 점선처럼 뚝뚝 끊긴다.

인간관계도 비슷한 것 같다. 각기 다른 사회에 속한 내가 페르소나를 매번 갈아끼운다.


눈이 펑펑 오고 있었다. 첫눈은 아니지만, 두 번째 폭설이 내린 날이다.

나는 우산이 있음에도 두손을 양쪽 주머니에 넣기 위해 눈발을 정면으로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나라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 생각이 나오기 전의 생각은 친구의 공연에 선물을 사들고 갔던 어제를 떠올렸다. 친구는 초대권도 아닌데 뭘 이런 걸 사왔나며 선물을 받았고, 이후에 너무 맛있다며 레몬 무스가 잔득 올라간 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어 없어진 빵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냈다.

오빠는 내게 "네가 다른 사람한테 선물을 주는 거에 비해 너는 받는 걸 못 봤어." 라고 했지만, 나는 받기 위해 선물하는게 아니라고 말했다.

다시, 나라는 사람의 근원은 어디일까 생각했을 때 어제 일이 생각이 났다. 나는 타인의 행복이 내게 번지면 행복한 사람인가? 나는 내가 행복한 것보다 타인의 행복을 바라볼 때가 더 행복한 것 같다고 느꼈다.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꽃 선물을 하는 걸 좋아했다. 눈이 녹아서 물로 사라지듯, 물이 번지는 건.. 수채화? 나는 수채화같은 사람인가? 의식의 흐름이 이어졌다.

연애를 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배려하는게 좋고 편했다. 사랑하니까 다 주고 싶은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지나치는 인연에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내가 브랜딩이 되는 것보다 타인을 서포트하는게 더 맞는 사람일까?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내 삶을 욕심내는 방향이 아직까지도 정하지 못한 게 답답하기만 하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엄마와 딸이 썰매를 끌고 함께 걷는다. 썰매 놀이의 낭만이라니. 횡단보도 옆에는 조그만 눈사람이 서 있다. 슈가파우더처럼 소복히 쌓여가는 눈에 저마다 남겨둔 행복을 지나친다.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이와 같은 소소한 순간들이 내 삶에 주어진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은 인간의 수명이 너무 길다는 생각을 했다. 100세 시대라니. 죽음이 두렵지만 않다면 50세까지만 살고 다시 삶을 리셋해서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양이의 삶, 나무의 삶,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의 삶. 왜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선택하지 못할까?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어떤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