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oria

by 쥬링

뉴욕에는 다양한 렌트 구조가 존재한다. 스튜디오 렌트, 1BR 렌트, 서블렛, 민박, 하숙 등. 각 구조의 특징과 차이를 알면 상황에 맞는 집을 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뉴욕의 첫 숙소로 서블렛을 택했다. 서블렛은 거주하는 사람(호스트)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정도 집(혹은 방)을 비우게 되어 내놓은 매물로, 그 기간 동안 잠시 빌리는 것을 뜻한다. 일반 렌트와 서블렛의 차이점이 있다면 렌트는 텅 빈 방을 나의 취향을 채울 수 있다는 것과 서블렛은 거주자의 취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집에 잠시 머물 수 있다는 것. 에어비앤비가 떠오르지만 확연히 다르다.


한국에서 서블렛을 구하는 것은 꽤나 불안한 일이다. 호스트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고작 이메일이 전부이고 몇 장 되지도 않는 집 사진과 간략한 설명만으로 집과 주변 인프라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확정을 위해 보증금을 선불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한 번쯤 카페 글에 보증금 렌트 사기를 당한 사람의 후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서블렛을 찾으면서도 늘 불안했지만 다행히 내가 찾은 매물의 주인인 호스트 F는 너무나 젠틀한 사람이었다.


나는 친오빠를 한 달 정도 설득한 끝에 뉴욕 여정의 처음을 함께 하기로 했다. 나는 뉴욕에 머무르기 위해 떠났고, 오빠는 2주라는 긴 여행을 택했다. 나는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미리 구매했기 때문에 우리는 인천 공항에서 헤어져 각자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입국심사를 각자 통과한 뒤 뉴욕 공항에서 다시 재회했다. 나는 옛날에도 오빠를 종종 나의 여행에 참여시키곤 했다. 친구들은 늘 바쁘고 여행에 눈을 뜬 사람은 내 주변에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꽤 재밌는 남매 같다. 우리는 JFK공항에 도착해 7달러짜리 물을 사 먹고, 10여 분 정도 사용하기 위해 캐리어를 실을 카트를 2달러나 주고 빌리는 것으로 뉴욕에 왔음을 실감했다. 우버를 타고 2주간 머무를 숙소인 아스토리아로 향했다.


F의 부재로 인해 그의 친구인 W를 만날 수 있었다. 집 열쇠를 전달하기 위해 F의 집으로 온 그와 통성명을 했다. 분명 한국인인데 정작 한국어를 할 줄 모르던 그는 나에게 그저 미국인이었다. 그는 열쇠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F의 집으로 들어갔고, 남의 집 투어가 어색한 듯 몇 마디와 함께 간략히 집을 소개해주고는 쿨한 인사와 함께 퇴장했다. 2분도 채 안된 느낌이었다. W가 떠난 뒤 우리는 집을 찬찬히 둘러보며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다. 나는 서블렛을 잘 구한 것에 스스로 대견했고, 오빠는 F의 취향이 담긴 집이 퍽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정면에는 거실과 발코니가 보이고 바로 왼쪽에는 주방이 있었으며 집안 곳곳에는 조그맣고 귀여운 피규어와 예술 서적과 조명이 있었고 주방에는 더 프리즈너 와인 컴퍼니의 와인이 하나 있었다. 오빠와 맛있게 먹은 미국 와인 중 하나인데, 그의 집에서 보니 F와의 내적 친밀감이 상승했다. 거실에는 기다란 갈색 가죽 소파와 깨끗하게 세탁해서 놓아진 담요, 커다란 TV와 테이블과 카펫이 어우러졌고 방에는 커다란 침대와 말끔히 비워진 옷장이 있다. 한켠에 있던 주식책은 1-2년 전 즈음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멀리서 보면 깔끔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가구 위에 먼지가 퀘퀘이 쌓인 것도 이 집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환희에 찬 우리는 시차를 거스르기 위해 낮과 밤을 꽉 채워 잠을 잤다. 며칠 뒤 F는 깔끔하게 정리한 아스토리아 맛집 리스트를 메시지로 보내며 우리의 여정을 응원해 주었다. 맨해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진, 조용하면서 그리스 음식이 맛있는 레스토랑이 있고 지하철과도 가까우며 다소 안전한 동네.

Home sweet home.


아스토리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는 아스토리아 공원 Astoria Park이다. 이른 시간에 공원에 나와 러닝을 하는 뉴요커들이 센트럴파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니. 나는 집 근처에 무엇이 있나 구글맵을 보다가 공원을 발견했고, 어느 아침에 오빠와 함께 공원에 가기로 약속했다. 아스토리아 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진 길의 향연이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를 구경하며 공원에 들어서니, 맑고 푸른 하늘과 파란 러닝 트랙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빠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인공잔디에서 고등학생 때 연마한 옆돌기를 했다. 오빠는 나의 화려한 개인기를 보고 마구 웃어댔다. 자연의 푸르름과 활기찬 에너지에 압도되던 순간. 아스토리아의 푸르던 그날이 선명히 남아 있다.


IMG_5530.JPG Astoria Park Running T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