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거리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애비뉴 Avenue와 동서로 짧게 이어지는 스트릿 Street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애비뉴와 스트릿은 마치 초콜릿 틀이 되어 거대한 땅을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일정하게 블록을 나눠준다. 블록 사이사이는 관광객과 뉴요커가 빠르게 움직이는데, 재밌는 점은 두 무리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 이들을 분간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횡단보도에 있다.
빨간 손바닥*이 버젓이 있음에도 당당히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은 뉴요커(혹은 눈치가 빠른 여행 고수), 신호등 속 하얀 사람이 반짝이기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은 뉴욕 초보 여행자로 봐도 무방하다. 얼핏 들은 이야기로는, 뉴욕에는 효율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뉴요커가 신호를 기다리는 그 시간조차도 자신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쓴다고 한다. 사고가 날 수도 있는 리스크까지 감당하면서 자신이 쏟는 모든 것을 향해 집중하는 그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빽빽한 뉴욕이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걸음 속에 있다.
*뉴욕의 횡단보도 신호등에는 적색 불을 의미하는 빨간 손바닥과 녹색 불을 의미하는 하얀 사람이 있다.
화려한 식당과 상점, 새로운 것들이 끊이질 않는 블록을 걷다 보면 세밀하면서 촘촘하게 만들어진 거리의 디테일에 넋이 나간다. 차이나타운에서 딤섬을 먹은 뒤 소호로 걸어가던 길이 잊히지 않는다. 한 블록 지나니 이탈리아 식당이, 또 한 블록 지나니 태국 음식점, 그다음으로는 지중해 음식점, 다음 블록에는 다시 미국… 이곳을 걸으면 반나절 사이에 중국에 갔다가, 미국에 왔다가, 그리스에 갈 수 있다. 세계 곳곳이 블록마다 응축되어 있는 도시, 뉴욕. 전 세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곳이자 서로 다름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곳. 나는 타임스퀘어에 모인 군중 가운데 서서 도시의 활기를 온몸으로 체감한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콘크리트 빌딩과 까만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진 별과 같은 사람들 틈으로 온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