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보단 면을 좋아한다. 맛있는 빵을 먹어도 면에서 오는 감동만큼은 아니었달까. 하루는 엄마의 베이킹 재료를 빌려 초코 머핀을 만들었는데,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사람들이 왜 빵을 좋아하는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성과 기다림의 미학과 고도의 기술이 맛있는 빵을 만든다는 것을 제누와즈(케이크 시트)를 만들 때 깨달았다. 머핀 만들기에 성공한 나는 얼마 뒤 기념일을 축하할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제누와즈를 굽다가 오븐에서 돌덩이를 꺼냈다. 아마 머랭에서부터 잘못된 것 같다.
뉴요커의 아침을 여는 데 빠질 수 없는 것은 아침에 갓 구운 베이글과 따뜻한 커피. 무심히 베이글을 물고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을 든 비즈니스맨을 미드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뉴욕의 베이글이 노란 택시와 피자만큼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뉴욕에 가면 아침에 베이글을 먹어봐야지.'
웃기고 안타까운 얘기를 하자면, 오빠가 뉴욕에 함께 있을 당시에 맨해튼의 픽어베이글을 방문했는데, 당시 네이버 블로그의 추천만 보고 베이글에 기본 크림치즈와 훈제 연어를 추가해서 둘이 하나로 나눠먹은 것. 미국도 처음이고 뉴욕도 처음이고 베이글 가게도 처음이니 블로그의 말을 따라 완벽한 궁합을 주문했다고 생각했지만 결제를 도와주는 직원이 둘이 왔는데 베이글 하나 가지고 되겠냐는 눈빛으로 That's it? Anything else?라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우리는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수많은 크림치즈와 베이글의 조합으로 취향에 맞는 베이글을 고를 수 있는데. 가게 이름처럼 Pick! 할 수 있는데 누군가의 맛 조합으로 취향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게 너무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뒤로 베이글 집에 한번 더 갔다. 좋아하는 블루베리가 들어간 베이글과 딸기 크림치즈를 골랐다. 연어 베이글보다 2.5배 정도 저렴했던 것 같은데 빵도 정말 쫀득하고 적당히 쫀쫀하고 꾸덕한 크림치즈가 물리지도 않는 게 정말 맛있었다. 포장한 베이글을 거리에서 먹었다. 파란 하늘과 핑크색 베이글의 만남. 마지막 한 입 남은 베이글을 하늘을 향해 들어 색을 음미한 다음 입으로 쏙 넣었다.
생각해 보면 뉴욕의 음식점에는 개개인의 취향과 컨디션을 배려해 주는 곳이 즐비하다. 한 번은 파이브가이즈(미국의 햄버거 가게)에 가서 버거를 주문하는데, 야채를 고르는 메뉴판을 보여주면서 뭐 넣을래?라고 물어보길래 한국의 버거와 같을 거라고 생각하고 괜찮다고 말했다가 빵과 패티만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버거를 시켰으니 버거가 그대로 나오고 야채를 추가하는 줄 알았는데, 이 나라는 워낙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보니 버거까지 맞춤으로 제공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이 날도 오빠와 함께 있었는데 나는 결국 직원에게 사정사정을 해서 야채를 따로 받아냈다.
뉴욕은 개인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품어준다. 나는 낯선 문화로 인해 갸우뚱하게 되지만 이내 적응한다. 도시의 배려심이 따스하게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