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지하철은 잠들지 않는다.
뉴욕에 가기 전, 지하철 공부를 조금 깨작인 적이 있다. 지하철 티켓은 역에서 구매하면 되고, 무슨 라인이 있고, 막차는...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뉴욕의 지하철은 24시간 운행한다는 것을. 뉴욕에 가기 전까지 삼촌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뉴욕을 간접 체험하곤 했다. 특히 지하철을 걱정하는 나에게 가보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며 지하철 노선도를 보는 어플 하나를 알려주었다. 복잡하게 얽힌 노선도는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쾌쾌하고 쿰쿰한 냄새 틈으로 사람들이 섞인다. 무작정 칸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봤으니 돈을 달라고 윽박지르는 젊은 흑인, 엉덩이를 반 내놓은 채 의자 밑바닥에 엎드려서 자는 노숙자, 의자 칸을 무시한 채 두 발을 쭉 뻗고 앉은 여자, 보드를 타고 소란스럽게 역사를 질주하는 청소년까지. 열차에 오르면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한 공간을 공유하게 된다. 지하철에 타면 나도 모르게 아시아인이 서 있는 쪽으로 향하게 된다. 조그맣고 마른 내가 덩치 큰 외국인 틈에 서 있는 게 심리적으로 불안하다고 느끼는 건지, 같은 동양인 틈에 서 있는 게 조금은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지하철의 속도는 소음에 비례한다. 빠른 만큼 시끄럽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지하철은 스크린 도어도 없지만, 잘 보존되고 나름의 질서가 있어 오늘날까지 탈만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뉴욕의 지하철을 익히는 것은 쉽다가도 어려웠다. N라인인 줄 알고 탔던 Q라인은 맨해튼에서 롱 아일랜드 시티로 건너가지 않고 센트럴파크 쪽으로 올라갔고, 6 트레인의 안내 방송을 들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서 뭔가 했더니, 갑자기 급행열차가 되어 월 스트릿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맞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다가도 엉뚱한 곳에 도착해 길을 돌아가는 게 다반사였다. 환승 제도가 없고 교통비도 비싸다 보니 몇 블록씩 걷는 게 일상인 사람들도 있다. 걷는 행위를 즐길 수 있는 게 뉴욕의 매력이지만, 스트릿을 타고 칼바람이 되어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걸음을 재촉하기도 한다.
지하철에는 철로 만들어진 문에 빨간 바가 단단히 고정된 비상구가 있다. 이 문은 돈을 지불하고 나가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지만, 몇몇 배려심 많은 사람들이 비상구 앞에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어쩔 때는 단순히 편의를 위해 비상구로 나가는 사람을 포착한 일반인이 문을 잡고 들어가면 뒤이어 다른 이들이 우르르 지하철로 들어가기도 한다. 1번에 $2.75, 한화로 3,600원 정도 되는 비용이니, 이 광경을 본 L은 "이것이 뉴욕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라고 눈을 반짝이며 말하기도 했다(물론 이 불법적인 행위를 적발하는 경찰도 있다).
새벽에도 멈추지 않는 지하철은 뉴요커의 삶을 대변한다. 분주함 속에서 피어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지하철을 달군다. 지하철은 속력을 가한다. 나는 얇고 매끈한 메트로 카드를 꺼내 지하철에 올라탄다. 사람들 틈으로 합류한다. 우리는 잔잔하면서 폭발적인 에너지의 기류를 타고 함께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