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기억 너머에 아른거리는 익숙한 노랫말. 나는 사실 김치 없이 잘만 산다. 집에는 엄마가 홈쇼핑에서 시킨 김치가 늘 있다. 배추김치, 열무김치, 갓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등. 요즘은 마치 종합세트처럼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적은 양에 묶어서 판매하기에 엄마 같은 소비자의 니즈를 완벽히 충족시켜 준다. 그녀는 아이스박스에 배달된 김치를 꺼내다가 김치통에 잔뜩 넣고 먹기 편하도록 반찬통에 덜어 놓아 주신다. 냉장고 문만 열면 김치가 있는데, 나는 알면서도 엄마의 정성을 배반한다.
"한국인은 김치 좋아하지 않아?!"
김치를 잘 안 먹는다는 나의 말은 외국 친구들을 놀라게 한다. 나는 이러한 성향덕에 멜버른에 있을 때에도 김치에 지출되는 비용을 꽤 아낄 수 있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 중 김치 없이 못 사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김치를 기가 막히게 잘 담그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 손맛 가득한 김치가 먼바다를 건너온 장면을 자주 보고는 했다. 그렇게까지 김치를 먹어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한국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혹시 나는 맛있는 김치를 먹어본 적이 없는 걸까?
지난 목요일, aT센터(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열린 김치의 날 선포식에 참석했다. 우리의 전통 음식인 김치를 알리기 위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나는 이곳에서 김치의 이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발효 음식, 김장철이 되면 이웃과 모여 커다란 바가지 주변에 둘러앉아 김치를 담그던 옛 풍경, 평생을 함께 하는 소울 푸드. 김치는 곧 우리의 유산이자 뿌리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까지는 긴긴 시간이 걸렸다. K-pop, K-food가 빛을 발할 수 있던 이유는 우리의 뿌리를 지키는 수많은 재외 동포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김치를 홀대하는 나와 김치를 알리는 한국 밖 한국인들. 그들과 나의 대조에서 오는 묘한 괴리감이 선포식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타임스퀘어에서 맞이한 첫 번째 밤을 기억한다. L과 나는 타임스퀘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계단에 올라가 사방에 둘러싸인 각양각색의 전광판을 보며 뉴욕에 왔음을 다시금 실감하고 있었다. 수많은 전광판 가운데 시선을 빼앗는 광고가 있었으니. 하얀 배경에서 외국인 모델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천천히 무언가를 음미한다. 뒤이어 등장한 빨간 배추, 김치다. 김치 광고인지도 못 알아볼 만큼 광고는 너무나 세련되고 간결하고 집중도 있다. 나는 김치를 먹는 광고 속 외국인과는 살짝 다르게 입을 쩍 벌리고 놀랐다. 이날의 충격은 흰색과 빨간색으로 처참히 버무려졌다. 어느 드라마 짤로 유명한 김치싸대기 장면이 스친다.
뉴욕에 있다 보니 우리 음식을 알리고자 하는 한국 기업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음식뿐만 아니라 언어로, 노래와 춤으로, 네일아트로, 옷으로, 마른 체형과 까만 눈동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과 비행기 없이도 빠르게 이착륙하는 온라인 플랫폼 속에는 한국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선명하다. 우리는 이 빛을 적극 활용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한편으로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김치~" 하며 손으로 커다란 V를 보이며 웃던 어릴 적이 떠오른다. 며칠 전에는 집에서 오징어와 김치를 넣고 김치부침개를 해 먹었는데.. 이러나저러나 김치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걸 보니 역시 나도 한국인이다. 김치를 조금 더 좋아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