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서울의 삶은 야박하기 그지없다. 묘하게 도태되는 기분이 나를 굼뜨게 하고 꿈꾸는 낭만을 쉽사리 앗아간다. 무언가를 좋아하다가도 금세 마음이 시든다. 작년까지만 해도 글을 쓰고 싶어 했는데. 돌고 돌아 서 있는 곳은 현실이다. 그리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서, 나의 고집을 조금만 꺾는다면 만족할만한 그런 현실. 나는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진다. 이 도시에서 "나"라는 인물과 타지에서 마주하는 "나"라는 인물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다.
와이너리가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덕목에는 와인메이커의 기술도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비옥한 떼루아(땅)와 알맞은 온도와 햇살, 그늘을 내어주는 자연적 환경을 꼽을 수 있다. 더 큰 꿈을 바라보고 성장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서울이라는 환경적 요인을 탓하게 된다. 무엇이 진짜 원인인지는 알 수 없다.
해외에서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좋아하는 것을 힘껏 좋아하게 된다. 음식, 여행, 재즈, 공원, 노래, 미술관, 마트 구경, 책. 나의 발걸음은 늘 세상 밖으로 향하고 별거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된다. 뉴욕, 멜버른, 방콕, 암스테르담, 도쿄 그리고 서울. 도시의 에너지가 저마다 다른 것처럼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달라진다. 의아하다.
아. 나는 여전히 파란색 샘소나이트 캐리어를 끌고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홀로 고프로를 들고 서 있던 쌀쌀한 새벽과 JFK공항 입국 심사대 줄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쿰쿰한 한낮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스무 살, 연습생 생활을 청산하고 고유한 내 삶을 찾기 위해 몇 해를 보내야 했던 흑백의 시절처럼 이번에도 시간에 갇힌 걸까.
"돈은 필요 없고, 그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나의 결핍은 타인으로부터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절실해진다. 무언가에 열정 있는 사람들을 선망하게 된다. 나의 동경을 찾기 위해 주변을 어슬렁 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