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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사

scenario

by 쥬링

V, L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다.


V: 나 이제 알았어.

L: 뭘?

V: 너는 언어가 주는 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네. 늘 그랬던 것 같아.

L: (생각하며) 그런가.

V: 사랑해.

L: 응?

V: 같이 있으면 좋아. 시시콜콜한 대화의 온도도, 같이 듣는 노래도, 네가 읽는 책의 구절을 몰래 훔쳐보는 것도..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


끈적한 밤공기가 바람이 되어 불어온다. 약간의 청량함이 두 사람을 덮는다. L은 깊은 생각에 잠기다 잔잔하게 요동치는 호수의 물빛을 보고 한순간 눈물이 차오른다.


L: (그렁그렁한 눈물을 애써 모른 채 하며) 덥다.

V는 L을 쳐다본다.

V: (L의 뺨을 쳐다보며) 너 울어?

L: (눈물을 닦는다) 우리 너무 멀리 돌아온 것 같지 않아? 좋아하던 마음이 다 어디로 흩어졌었는지, 어쩌다 다시 왔는지 하나하나 헤아리기도 이제는 너무 아득해.

V: (L의 눈을 지그시 보며) 근데 왜 울어..

L: 나는, 네가 기억하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아. 근데 그 모습이 지금은 내게 없는 것 같아서.. 네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 지금의 내가 아닌 걸 알아서.

V: 그런 말이 어딨어. 왜 그런 미운 말을 모질게 해.

L: 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V: 음.. 존재만으로 충분한 거. L, 나는 늘 너였어. 우리가 먼 길을 돌아온 것도 맞고 네가 불안을 겪는 시기인 것도 알아. 삶의 모양새가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네가 변한 건 없어. 옛날이나 지금이나 넌 한결같아. 네가 어떤 모습을 생각하던 내겐 그저 맑게 웃는 L이야.


L, V를 쳐다보며 눈물을 터트린다.

V: ...너무 늦게 깨달아서 미안해.

(L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천천히 껴안는다.)

V: 지나간 시간은 흘려보내고 우리는 새롭게 채워나가면 되지. 내가 이끌어줄게. 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네 모습으로.

L: (고개를 파묻고) 사랑해.


F.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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