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부정이 아닌 인정 결핍
마지막에 사랑하는 피터 목 조르는데 그 목소리가 떨림에서 죽음으로 가는 장면이 너무 소름끼쳤다. 청각 만으로 보는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연출이 가능하다는 게 정말로 소름 돋았음
그러면서 울고 있는 주인공..
중간의 거친 영어 쓰는 경찰관은 어떻게 된 걸까.
이런 거 볼 때면, 사랑하면 대신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는 말은 순 구라다.
물론 여기서는 이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 아니었겠지만.
거짓말은 연쇄적인데, 그에 따라오는 죄책감은 비례 반비례를 따지기 어려운 것 같다. 처음 살인 후에는 반비례, 마지막 살인 이후에는 폭발적으로 비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처럼, 정말 그래야 중독은 끝나는 것일까.
중독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것은 더 큰 자극일까?
중독의 엔딩은 충격 밖에 없는 건지.
리플리는 그러면 언제 살인을 끝냈을까.
만약 이 이후에는 살인을 끝냈을까?
자기 멸망으로 간다는 결론 말고, 다른 결론은 무엇이 있을까.
아니면 완전 숨는다고 해도,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면, 그 깊이가 남 다르다면 더 이상의 살인은 멈출까?
리플리가 자기 부정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 의견에는 반대한다.
자기 부정이라기보다, 할 수 있는 자신에게 취한 자아도취다.
결국, 나라는 부족한 인간을 수용할 수 없다는 마음보다는, 이를 택할 수 있고 연기할 수 있는 나 자신에 취해가는 것. 그래서 중독이고, 자아 중독이다. 끊을 수 없는 중독이 또 다른 중독을 낳았고, 살인이라는 이 중독은 또 끝을 모르고 달려간다. 악순환...
리플리가 과거를 지우개로 지우고 싶다 발언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부정을 인지하기 싫어서 하는 발언이 아닌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
리플리? 안나?
자기 상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상황에도 나는 그 사람인 척, 사람들이 나를 믿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정이 필요한 사람들인 것.
결국 자신에게 없던 인정을 채울 수 있는 수단으로 가짜 인정을 택한 것.
가짜 인정으로 자기 자신의 인정을 채운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남은 못해도 나는 한다는.
그치만 인정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를 메우기 위해 살인이 일어난다.
간극이 벌어지는 순간 인정은 한순간에 몰락한다.
찢어진 천막 위에 위태로이 놓은 무언가가 바로 인정이다.
외줄타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리플리 사람들은 찢어진 천막 위에서 아슬하게 양 옆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멧 데이먼 미친 비주얼이다...진짜 미친 비주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