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아해>에 대한 고찰..

by 파딩



예전에 시인이 외계인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말로 되어 있으나 온통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책을 집어들었다. 역시 시인은 쉽게 그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13명의 아해들이 달리는 모습에서 이상은 누구를 마음에 무서운 아이로 품고 썼을까.


그 아이는 그가 무서워하는 누구를 투영한 것일지, 아니면 그저 상상에서 나온 아이의 뜀박질을 그리고 싶었던 걸지.


매일 인생을 뒤쫓기는 무언가를 뒤에 두고 열심히 뜀박질해 달려왔는데, 그 뒤에 도사라는 공포감에. 그런 우리네가 뜀박질을 잠시 쉴 때, 거울 가득한 방에서 뜀박질 해 달려온 나의 얼굴과, 그간 뜀박질 하며 서려진 얼굴을 마주한다면 그 얼굴에는 모조리 공포감 밖에 없지 않을지. 달리느라 산소가 부족해 헥헥대는 새파란 입술까지 더해진다면 완벽한 공포겠다. 열심히 달려서 마주한 얼굴이 가쁜 공포감에 휩싸인 얼굴이라면 그것은 정말로 인생에서 마주하지 않고 싶은 최악의 공포 아닐까. 행복하기 위해 달리지만 행복의 끝에 공포가 있길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을테니. 헥헥 달리다가 공포질린, 새파란 입술에 산소 처방기를 여유롭게 들이 마시며 이리 달려 부유해졌기에, 가는 마지막도 평안해 감사하다는 엔딩은 공포에서 벗어난 찰나의 행복감일테지. 인간은 항상 이렇게 달려야만 하는가? 달리지 않으면 돈이 없는데 멈춘 아해는 멈춘 아해대로 입술이 창백해지고 곯은 배에서는 소리가 날텐데. 행복하기 위해 평생 달려야하는 이 아이러니는 참 우습다. 아해들이 시간이 흐르고 흘러, 백살을 바라볼 때 평온하게 산소호흡기를 마주하며 죽기를 바라며 일평생 달리기를 원하는 것일까. 인류와 시간은 참 상극의 모순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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