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분을 허락해줘요
평소에 궁금했던 취향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을 말한다. 방향이나 경향? 딱 정해진 것이 아니라, 뭉뚱그려 놓은 듯한데? 그렇다면 나도 취향이란 게 있을까?
어쩌면 그동안 취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게 이런 취향이 있다고 단정 지어 말하기가 싫었던 걸 수 있다.
그 말 한마디로 나를 규정한다는 것이 조금 부족하거나 억울한 어떤.
동네 도서관인 호계도서관에서 이유미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제목은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방법>이었는데, 작가는 2시간 내내 본인의 취향을 스스럼없이 말했다. “전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여행 작가는 되고 싶지 않아요. 돌아다니면서 낯선 환경에 놓이는 것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내 공간이 좋아요.” 강의에서 어쩜 저런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놀라웠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여행이 좋아지거나, 여행 작가로 책을 내게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왜 그동안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 ‘편’인지, 무엇을 싫어하는 ‘편’인지, 편하게 말 못 했을까.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유미 작가는 지금의 자신을 설명하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나’를 면밀히 살핀 것이다. 그랬더니 알게 됐고, 말할 수 있고 거짓이 없으니 편히 말할 수 있게 된 거다. 설령 편하게 말한 게 아닐지라도, 강연에서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아니 적어도 나는 나를 조용히 바라볼 시간이 부족하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숨기기 바빴고, 만회하려 애썼고, 되지 않으면 채찍질과 자책 혹은 포기로 일관했다. 문득, 이제 마흔이 되니 남은 마흔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채워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리가 짧고 무다리처럼 못생겨서 치마를 잘 안 입는다는 내 안의 인식을 ‘바지 취향’으로 바꾸고, 어울리는 바지 스타일을 찾아내는 것이 현명한 일이란 걸 이제야 조금은 이해하겠다.
기고를 위해 마감시간까지 미루고 미뤄, ‘데드라인’에 걸쳐서야 비로소 글을 마무리 짓는 내 습관을 괴롭도록 미워했다. 그전에 보낸 여유로웠던 시간들을 한탄하며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부지런하지 못한 나를 자책했다. ‘마감이 가까워오면 글이 잘 써지는 걸! 그때까지 글감을 잘 생각해야지’라고 다독였으면 어땠을까.
몇 해 전부터 미리멀리스트를 꿈꾸는 나는 보이는 집안의 물건을 ‘쓸모없는 물질’이라 규정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없애기 시작했다. 밤새 눈 내린 삿포로의 어느 마을처럼 하얀 세상을 꿈꿨다. 동선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물건들을 서랍장에 넣어야 안심됐다. 미니멀리즘의 정신이 정리시간을 단축하는데 큰 도움이 됐지만 내가 무엇을 진정 좋아하는지 어느 순간 모르게 됐다.
나에게 ‘취향’이란 단어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야겠다. 그건 다름 아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하루에 조금 비워두는 것이고,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발전을 위한 첫 단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