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보지 못할 평상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긴 큰 수술이었다. 당신은 말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구먼. 평생 필 담배도 다 폈고, 하늘에 먼저 간 마누라 보는 것이 남은 소원이여.”
텅 빈 담뱃갑 구석에서 돛대 하나 꺼내 들고 불을 지폈다. 금연이라 적힌 스티커 앞에서 버젓이 연기를 내뱉었다. 집은 니들 알아서 정리하라고 말끝을 흐리면서. 저녁때가 지나 하나 둘 7남매가 모두 모였다. 미운 정 한 번 더 주고받은 셋째 딸이 창밖을 보며 말을 내뱉었다.
“평생 징글징글하게 속 썩이더니 또 볼 작정인교? 울 어매는 아부지 피해서 멀리 도망갔소. 하늘에서 여행 다니고 있단 말이오. 만날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고 여기서 곱게 늙은 할머니나 만나든지 말든지.”
수술 잘될 거니 걱정 말란 말을 그렇게 나누는 사이었다. 같이 늙어가는 게다. 수술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수술대 위에 놓인 깡마른 바지랑대 같은 노인은 지쳐 잠들어 있었다.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면 타닥탁 소리 내며 쓰러질 것 같은 곧고 약한 부지깽이 같았다.
의사는 장남과 첫째 누나를 불렀다. 수술로 목숨은 부지했으나, 올해 추석 못 지내실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좋아하는 가을 곶감은 못 먹는 거다. 306호 병실 창밖에는 매미가 사력을 다해 울고 있었다.
“아버지. 수술 잘됐다카니까, 이제 담배 좀 그만 피우시고요. 일주일 정도만 회복 잘하면 퇴원할 수 있다캅니더.”
아무도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셋째도 그 순간은 가만히 있었다. 한 마디라도 더 하면 눈물이 나와 부지깽이를 태워버릴 것 같아서다.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산 둘째가 힘을 써 일인실로 각별히 모셨고, 명절에도 제대로 얼굴 못 보여드린 다섯째는 더 각별히 몸을 닦아드렸다. 암세포가 몸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는데도 까슬까슬한 흰 턱수염은 자랐다. 면도도 해드렸다. 당신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공장 일을 한 시도 손 놓지 못하는 여섯째가 여기 와 있는 이유를.
당신은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몸에 붓기가 좀 있지만 한 여름에도 입맛이 돈다며 좋아하셨다. 맏며느리가 주말마다 해다 주는 간장게장이 목요일만 되면 동날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마당에 평상을 만들었다. 평상을 반 정도 가릴 만한 감나무 아래에 앉아 지나간 뽕짝 라디오를 듣곤 했다. 짜장면도 시켜 드셨다. 주말마다 부지런히 찾아온 막내딸은 평상에 앉은 당신을 보면 눈물이 났다. 내년 여름에도 앉으려면 평상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아버지 말이 자꾸 생각 나서다.
창원시 대산면에 사는 노인네는 나의 외할아버지다. 외할아버지의 셋째 딸이 나의 엄마다. 심장수술이어서 할아버지 가슴 한가운데엔 칼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나 역시 전보다 한 번이라도 더 외가댁에 얼굴을 내밀었다. 태국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약국에서 산 타이거 밤 두통을 들고 할아버지께 갔다.
“근육통이나 뻐근한데 바르시면 돼요 할아버지. 파스 같은 거예요.” 일명 호랑이 연고. 외국에서 손녀가 사 온 연고는 만병통치약이었다. 받아 들 땐 뭐 이런 것을 다 사 왔냐고 멋쩍게 그러시더니, 일찌감치 한 통은 온몸 구석구석 쑤시는 데에 바르고 계셨다. 늘 입고 계신 조끼를 벗어 옆에 두고, 셔츠를 올리시더니 칼자국에 연고를 듬뿍 발라 문대셨다. 야윈 가슴팍에 문지를 때마다 갈비뼈가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고 시원타.”
이 약으로 당신의 심장까지 완치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수 백, 수 천 개는 사드릴 수 있는데 말이다. 할아버지는 결국 두 통을 다 쓰시고, 할머니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나셨다. 가족들이 유품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뚜껑 덮인 컵에 반쯤 남은 물과 빈 호랑이 연고 통을 오랫동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