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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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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라 Feb 15. 2023

남자화장실에 끌려가서 맞은 이야기 3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었다.

교무실에는 수업이 없는 선생님 몇 분만 계셨다.

그 당시에는 담임선생님이 예체능 과목을 제외하고 모든 수업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 담임선생님도 안 계셨다. 그래서 교무부장 선생님에게 가서 화장실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 쏟아냈다.


"그 아이들이 너를 대체 왜 때린 건데?"


질문이 돌아왔다. 이건 걱정이 없었다. 여자화장실에서 미리 예상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준비한 멘트를 꺼내놨다.


"우리 반인 남자애랑 조금 다퉜는데요. 걔가 화가 났는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저를 엄청 때린 거예요."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니?"


"네?"


어, 이건 예상 못한 질문이었다. 선생님한테 맡기려고 교무실에 찾아온 건데 나더러 그 아이들의 운명을 결정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해야 하지? 마음 같아서는 똑같이 때려주고 싶은데 그렇게는 안될 것 같고…'


'사과? 아니 그건 너무 약하지 않나?'


'아닌가 나도 교과서를 그렇게 많이 찢었는데…'


'공평하게 나도 똑같이 때리고 내 교과서도 찢으면 안 되나?'


찰나의 시간 동안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단 걔네들을 불러주세요."


선생님은 내 말을 듣자마자 바로 6학년 복도에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 마이크를 켜셨다.


"아, 수업 중에 죄송합니다. 6학년 1반 000, XXX, 6학년 4반 삼진이, 6학년 6반 000, 6학년 7반 XXX은 지금 교무실로 오세요."


선생님이 안내방송을 하는 동안 나는 걔네들이 교무실에 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어서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다섯 명의 남자아이들이 교무실에 동시에 들어왔다. 저들끼리 복도에서 만나서 들어온 건지 줄지어서 들어오는 모습이 얄밉다. 곧바로 나는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걔네들을 보자 나는 조금 의기양양해졌기 때문이다.


교무실 맨 끝에는 검은색 고급 소파가 있었는데, 학부모가 오면 앉아서 상담을 하거나 선생님들끼리 아침에 회의를 하는 소파였다. 처음으로 그 소파에 앉았다.


“대체 왜 여자애를 화장실에 데려가서 때린 거니? “


“…”


“부모님 오시라고 전화할까? “


“아뇨!” 황급히 내가 말했다.

“삼진이가 진우를 괴롭혔고요. 아 진우는 저희 반 친구예요. 제가 그게 화가 나서 삼진이의 교과서를 찢었어요.”


삼진이는 말이 없었다. 삼진이는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내가 잘못을 한 가해자가 된 것 같았다. 아니, 저기요. 맞은 건 나라고요.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던 나머지 4명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차례대로 사과를 했다. 그마저도 일진>이진> 사진> 오진 저들끼리의 서열 순서로 사과를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까 정말 웃긴 애들이었네.


선생님은 사과를 했으니까 이제 슬슬 이 육자회담을 마무리하시려는 것 같았다. '그래, 엄마한테만 안 알려지면 되었다.' 나도 빨리 끝내기를 바라고 있어서 안도했다. 선생님은 다들 교실로 돌아가라고 하셨고 나는 삼진이랑 같이 교실로 들어가기가 싫어서 선생님 옆에서 뭉그적 댔다.


남자아이들은 모두 교무실에서 나갔고 나는 선생님께 연고를 바르러 보건실에 가도 되냐고 허락을 받은 뒤 보건실에 가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나와 삼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서로를 싫어하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굳이 티를 내지 않는 관계를 지속했다. 사건 이후, 나의 13살 인생에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자화장실을 지나갈 때면 나를 밟고 있던 10개의 실내화들이 생각난다는 것이었다.


몇 개월 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 지망으로 쓴 동네 여자중학교에 진학했다.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사건의 마무리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 것처럼

"예, 뭐 별 일 아니었어요!" 하며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내 인생의 에피소드 중 하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중학교를 통학할 때 마을버스를 타고 다녔다. 내가 타는 마을버스 노선에는 내가 다니고 있는 여자중학교, 근처 남자고등학교가 속해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면 남학생들이 가득했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맨 뒷자리를 쳐다봤는데 남학생 5명이 앉아있었고 그중 가운데 앉은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다. ’아 이거 트라우마구나.‘ 나는 초등학교 때 겪었던 그 사건이 나에게 트라우마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심지어 당시에도 구타를 당하던 그 잠깐의 순간만 무서웠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남자화장실 구타 사건은 내 마음속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는 저어기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삼진이와 중학생이 된 이후에 길거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는 집으로 가고 있었고 삼진이는 어디를 가는지 모르겠지만 눈이 마주쳤다. 삼진이는 웃으면서 반갑다는 듯이 내게 걸어왔는데 그 순간 나는 너무 무서워서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서 통화목록 맨 위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삼진이는 "하이"라고 인사만 건네고 제 갈길을 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집에 가는 길 위에서 스스로를 원망하고 원망했다.

‘나 왜 이렇게 찌질하지?’

상담이라던가 정신과 진료라는 것을 모르는 15살 여자아이는 트라우마의 원인을 본인의 찌질함으로 돌렸다. 그때로 돌아가서 그 여자아이를 만난다면 카페에 데려가서 케이크를 사주고 싶다.


Image by James Kim from Pixabay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보려 한다.

그러니까, 삼진이가 진우의 스케치북을 찢어버린 6학년 4반 교실의 쉬는 시간으로. 왜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눈깔이 돌았을까?


그건 무조건 우리 오빠 때문이다.


도 솔 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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