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아르메니안 수도원을 찾아서, 디고르(Digor)

by Neonsky
이번 여행 최고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분명히 길을 안다고 했잖아!

-디고르 마을을 안다고 했지 위치는 몰라

-무슨 소리야 이미 트래킹을 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강경한 폴란드 아재 그렉의 언성이 높아진다. 덩달아 순박하게만 보이던 택시기사의 표정이 굳는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켄트 아니의 지배인과 이야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일까.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카르스의 고원에서 차를 멈춘 채 실랑이를 벌이는 그 둘의 모습은 사뭇 비장해 보였다. (물론 결국 돈을 조금 더 달라는 이야기였지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우리는 디고르(Digor)라는 마을 인근에 위치한 아르메니안 수도원을 보기 위해 택시를 대절했다. 기존 아니유적 투어가 2시간 남짓 진행되는 데 반해 3시간으로 예약을 하고, 추가로 트레킹까지 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길을 잘 찾지 못하자 택시기사가 강짜를 놓는다. 길을 모르니 돌아가자, 그냥 디고르 마을로 가는게 어떻겠느냐. 카르스 성채에 데려다 주겠다. 등등 갖은 묘수를 동원해 우리를 설득한다.


하지만 평소같았으면 적당히 타협했을 나이지만, 세월이 만들어낸 꼼꼼함인지, 원래 성격탓인지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그렉이 문제였다. 결국은 적당히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차를 세웠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운 우리


무작정 구글 GPS에만 의지한 채 길을 나섰다. 도로 부근에서 간간히 터지던 인터넷이 간헐적으로 끊기고, 인적마저 끊긴 광야로 접어들었다. 고작 3,4키로미터 인근에 위치한다는 구글맵을 믿고 직선으로 방향을 정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저 멀리 낭떠러지에 가까운 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한때는 계곡이었는지, 물이 말라버린 돌길은 슬쩍 발을 잘못 내딛었다간 바로 바스러져 버릴 것 같은 약한 지반이었다.


몇번을 발을 헛디디고, 잔뜩긴장한 채 비탈을 내려오길 20분여. 우리 셋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고 가도가도 보이지 않는 수도원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왜이리 외진 곳에 수도원을 지었을까. 그래도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수백마리 양때가 산 비탈을 타고 내려온다. 그 아찔하고도 황당한 광경에 고개를 들어 산 정상을 바라보니 등 뒤로 태양을 짊어진 채 우리를 응시하는 양치기가 보인다. 언뜻 목동으로 보였으나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니 중년에 접어든 양치기였다.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두마리의 개를 진두지휘하며 양을 몰아가는 그의 모습은 위풍당당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말도 안된다고, 글을 쓰기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트레킹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던 내게 꼭 선지자처럼 갑자기 등장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먼지가 몸에 잔뜩 묻어 털이 잿빛에 가깝던 양 떼 수백마리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때부터였을거다. 황량하기 그지 없던 산비탈이, 현실에서 비현실의 경계로 변하던 순간이.


거짓말처럼 우브와 나는 양치기에게 다가가 손짓과 발짓으로 아르메니안 성당에 대해 물어왔다. 그는 이 좁은 산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성당을 만날거라고 일러주었다. 친절하진 않았지만 강단이 있어보이는 그는 우리를 불쾌하게 여기지도, 그렇다고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이건 트레킹에서 돌아오며 우브와 그렉과 이야기했지만, 정말이지 자기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지만 황당한 순간이었다고. 한국인과 폴란드, 스웨덴 사람과 터키(그것도 옛 아르메니안 인으로 추정되는)사람이 산 비탈에 서서 수백마리의 양떼를 배경으로 대화를 하는 순간이라니.

잠시간 흥분을 가라앉히고, 언덕을 넘으니 깎아지는 듯한 낭떠러지를 배경으로 작은 길이 나읶있다. 암석의 갈색과 칙칙한 수풀의 녹색이 어우러진 절벽, 그리고 그 끝에 위태롭게 서있는 아르메니안 수도원은, 마치 아니ani유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만을 뚝 잘라다 가져다 놓은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곳곳에 금이간 아치와 이미 무너저내리기 시작한 한쪽 벽. 눈바람이 많이 불기로 유명한 이곳 카르스에서 위태롭게 서있는 이 수도원은 이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싶었다. 앞으로 터키에 다시 온다면 수도원이 지금의 모습대로 남아있을까

절벽에 위태롭게 서있는 성당을 보니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분명 카르스에 많은 돈을 벌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아니유적,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낙서를 일삼고, 방치된 채 붕괴되기만을 기다리는 디고르 수도원이 수십년뒤에도 남아있을 수 있을까.


장시간 여행을 하다보면 점차 관광지 그 자체 보다는 숙소의 상태로,

내가 끌고 다니는 짐가방의 무게로,

그때 그때 허기를 채우는 식사로, 내 상태가 좌우된다.

여행을 통해 삶이 확대되기는 커녕 의식주라는 아주 단순한 것들로 삶이 축소된다.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심장은 더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아무리 멋진 풍경을 뚝 잘라다가 앞에 가져다 놓는다 할지라도 더이상 크게 맥동하는 일이 없다. 여행에 지쳐 삶이 축소되는 경험을 할 때, 이 이상 여행을 지속하는 게 옳은 걸까? 아니면 돈낭비 시간낭비일 뿐인 오기에 불과할까.


사실 카르스로 향하는 여정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여행의 설렘을 부정했다. 이미 파괴될대로 파괴된 옛문명의 흔적. 이문화의 가치를 이해할 만한 안목이 없었을 뿐더러 이미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심장은 설사 어떤 웅장한 건물을 가져다놔도 크게 맥동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디고르의 수도원이 가져다 준 의외성, 카르스라는 도시가 전해준 경험은 쪼그라든 심장을 다시 맥동케하는 감동이 있었다.


그렉과 우브를 만나고, 아니유적과 마침내 디고르의 수도원을 찾아 나선것은 여행이 전해주는 뜻밖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꼭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남들이 해보지 못한 극한의 경험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다만 채 세월의 더께가 쌓이기도 전에 문화재의 가치를 손상시키거나 이문화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협소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자. 지금 이렇게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도 오랜세월을 버텨온 디고르의 수도원이 있다. 당도하기 힘든 곳, 잊혀진 곳이지만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벅찬 감동이 있는 곳. 세월의 더께가 쌓인 유적은 문화나 지역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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