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더께가 더해진 아니(Ani) 유적

by Neonsky


20년의 세월을 건너뛴 우정이란 게 가능할까?


우브와 그렉은 무려 20년 전에 터키를 여행했다. 그때 함께 앙카라를 여행하며 또 다른 동행이자 터키인 친구인 모하메드를 만났고 그 당시의 추억을 간직한 채 서로 다시 한번 여행을 같이 할 날을 꿈꿨다고. 인터넷도 시원찮고, 나라도 민족도 다른 세명의 친구가 2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 2019년 다시 동행을 꿈꾼다.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만 같은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서로의 늙은 모습을 확인하며 너털웃음을 짓는 우브와 그렉이 눈 앞에 있다.

디고르 성당을 찾아 트래킹을 떠나는 우브와 그렉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가정도 이뤘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다는 그들. 하지만 은퇴를 할 때까지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그간 서로 만날 수 없었다고. 나이가 들어 서로 은퇴를 한 뒤에야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청춘의 여행을 다시 시작한다. 아니(Ani)라는 옛 영광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왔고, 당시의 모든 동행을 만나기 위해 다음날 기차를 예매해 두었다고 한다. 그러다 다시 카르스에서 여행을 시작하고, 앙카라로 나머지 한 친구를 만나러 떠나는 여행을 떠난다.

아니 유적을 관통하는 옛 실크로드 길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끊임없이 격돌했던 이 카르스에서, 세명의 친구가 20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만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의 주인공 우브와 그렉. 그런데 정작 그들은 평생을 곁에 두고 지낸 친구처럼 무척 덤덤하다. 꼼꼼한 폴란드인 그렉은 매사에 귀찮아하고 태평한 친구를 재촉하고,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우브는 어제 산 로컬 치즈를 어디에 보관해야 하는지 두 번 세 번 그렉을 귀찮게 한다.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하면서도 중간중간 우브의 생뚱맞은 질문에 대답해주는 그렉.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이지만 세월이 만들어낸 무심함인지. 성격적인 차이는 그리 큰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는다.

대체 청년 시절에 얼마나 멋진 모험을 했길래 이렇게 다시 모일 수 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연일 사기를 당할까 노심초사하고, 불쑥불쑥 말을 거는 터키인들에게 마음을 닫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남은 한 달간 그들처럼 멋진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호텔 켄트 아니에서 출발한 택시는 30여분을 달려 한 마을 끝에 우리를 내려준다. 카르스에서 약 45km 떨어진 오작르(ockali)라는 작은 마을로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아니(Ani)’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중세 도시는 천연 국경선 역할을 하는 골짜기 끝에 자리하고 있어 군사적 요충지이자, 터키와 아르메니아를 잇는 양국의 교역이 역할을 담당했다. 아르메니아에서 비잔틴제국, 셀주크 투르크로 주권국이 바뀌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실크로드 상인들을 위한 중요 거점도시의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다. 이후에 몽골군의 침략으로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14세기의 대지진으로 아니의 유적 대부분이 무너지고 말았다. 실제로도 유적을 방문해보면 온전한 건물을 찾기 힘들 정도.


수세기에 걸쳐 아르메니안의 기독교가 도시의 기반을 다졌고 이후에는 셀주크 투르크의 무슬림에 의해 최종 도시형태가 완성됐다. 카르스가 터키와 러시아의 도시가 섞인 이국적인 풍경이라면 아니 유적은 기독교와 무슬림 양식이 섞인 문화적 보고로 평가받는다.



조금 서두를 탓인지, 겨울의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탓인지 몇몇 잡상인을 제외하고는 관관객은 우리뿐이었다. 내심 조용히 유적을 관광하고 싶었던지라 우리 셋은 조용히 들떠 있었다.

아쇼트 3세에 의해 바그라티드의 수도가 되었을 때 재건된 아닌, 마을을 중심으로 이중 성벽이 세워졌다. 총 8개의 출입구를 통해 이 도시로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당시의 위용을 대략적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잦은 지진으로 예전의 위용을 찾아볼 수 없는 성벽이지만 여전히 그 안쪽의 모습을 쉬이 보여주지 않는다. 당시에는 얼마나 물 샐 틈 없이 도시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을까. 알프 아르슬란 게이트는 주거지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사용되었는데 이 게이트를 벗어나자마자 보이는 경관은 정말로 압권이다.


가이드북의 조언대로 왼쪽부터 발걸음을 옮긴다. 가장 먼저 성 프르키츠 교회가 눈에 띈다. 입구에선 제법 떨어졌지만 한눈에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띈다. 마치 신이 천벌을 내린 듯, 거대한 도끼를 들어 반으로 쩍 갈라놓은 모양새의 교회. 실제로 1300년대의 대지진 외에도 20세기에 벼락에 맞아 반절이 파손됐다고. 제법 화려한 건축양식과 희미하게 남아있는 프레스코화가 당시에 아름다웠을 교회의 모습을 상상케 했다. 시선이 닿는 대로 탐방하고 싶었지만 하나라도 빠지지 않고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정해진 탐방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십자가형 아치가 인상적이 케르반 사라이(Kervansaray)를 지난다. 원래는 교회였던 건물이지만 셀주크 시대 때 상인들을 위한 카라반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협곡의 끄트머리, 절벽에 거의 빗겨서 있는 성모 마리아 수도원으로 홀린 듯 내려간다. 꽤나 경사가 있어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지만 다들 내키는 대로 길을 만들어 다닌다. 협곡의 끝자락에 위치한 탓에 수도원보다는 협곡의 장엄함이 눈을 사로잡는다. 삭막하기 그지없던 카르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선연한 색들로 층을 이룬 협곡. 멀리 서는 개울처럼 보이였지만 꽤나 물살이 거센 강물이 흐른다. 2,30년마다 큰 지진이 일어나는 카르스에서는 골짜기 양 옆으로 서로 다른 지각판이 드러나있었다.

협곡을 따라 지각판이 드러난 걸 확인 할 수 있다. 잦은 지진의 흔적이라고.
성모 마리아 수도원.


저 멀리 러시아 초소와 아르메니아 국경이 눈에 남긴다. 바로 눈앞에서 아르메니아의 소중한 유적이 터키인이 버젓이 소유하고 있는 걸 지켜보고 있는 심정은 어떨까. 수많은 박물관에서 한국의 유산을 바라보는 심정일까? 강력한 국력의 상징이자 번성했던 역사, 아름다운 건축의 산실인 아니 유적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슬픔이 조금이나마 담기는 듯했다. 심지어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실정에서야.


거대한 돔이 휑하니 뚫린 이름 모를 교회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멍하니 뚫린 지붕 사이로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감 상에 잠겼다. 맥수지탄. 원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지만 아르메니아 인들이 느끼는 심정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삭을 대로 삭은 이정표. 복구를 위한 노력은커녕 관리조차 되지 않는 버려진 유적들, 곳곳을 뒤덮은 낙서. 아직도 꾸준히 무슬림에 의한 문화재 훼손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니 타 종교에 대한 배척만큼이나 고대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에 편협함이 엿보인다.


연한 회색부터 검은 갈색에 이르는 난색조 벽돌로 견고하게 축조했을 건물. 하지만 그럼에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무력했을까. 아니면 인재 탓일까.


저 멀리 보이는 아르메니아의 영산, 아라랏이 더욱 시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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