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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Feb 20. 2022

길 위에서 그들을 만나다 1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겨우 약속된 장소를 찾고서야 그 사람을 기다릴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우리를 픽업하러 온 숙박 집주인 남자는 보자마자 환하게 웃는다. 그런데 60을 많이 넘겨 보이는 그가 그리 호감이 가지 않은 것은 왜였을까. 깔끔한 차림에 나쁜 인상도 아니었고 말투도 거칠지 않았는데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좋았는데. 다만 먼 이국땅에서 만나는 동포임에도 애틋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서다. 나로서는 참 이상한 노릇이었다.


 문 앞에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는 아주머니를 만나면서 그에게 가졌던 단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집안일을 하다 무심코 내다보는 이웃집 아낙처럼 스스럼없는 차림이 자연스럽다. “어서 와요” 하는데 반가움이 묻어난다. 모녀들만의 여행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의외라는 듯 그런 모습이 좋아 보인다고 한다. 함께 동행 한 송이를 작은딸이라고 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주인아주머니는 막내 동생 정도쯤 보이는 내가 뜻밖에 반가웠나 보다. 비슷한 세월을 보낸 흔하지 않은 중년 여인의 투숙객을 모처럼 만나 서기도 하였을 것이다. 아무 때나 들리던 배낭족과는 다르게 고국에서 온 동질성의 내가 그녀의 감성을 잠깐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곳에서 수십 년을, 이제는 이곳이 고향이 되어 살았을 그녀에게 조금은 알뜰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잠깐 주인 내외의 시선이 비껴간다는 느낌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때마침 점심 식사를 놓친 지 꽤 된 터라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요기를 채우고 나는 아주머니와 차를 한 다음 우리 일행은 곧 거리 구경에 나섰다.     


  송이

 송이는 내가 딸만큼 예뻐하는 아이다. 딸아이와 함께 어학연수를 하면서 자매처럼 가까워진 파티시에가 전공인 아이이기도 하다. 일 년에 한두 번 한국을 오갈 때 우리 모녀 심부름을 대신 해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딸아이를 보는 것처럼 살가워 어느새 송이와 나는 모녀간 못지않게 되어버렸다. 이번 여행에도 송이에겐 복잡한 여정이었건만 3시간을 터미널에 먼저와 홀로 기다리다 합류를 했다. 


  바르셀로나 여행은 딸아이가 한 달 전에 이미 숙박과 교통편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아이는 그중에서 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우디를 엄마와 만나고 싶다 하기는 했지만 이곳에 오고 싶은 제 소망이 오히려 더 간절했던 모양이다. 나보다 더 흥분하며 이날을 기다려 온 것을 보면 아마 분명하지 않을까 한다. 아이는 우리를 챙겨줄 생각도 잊고 가는 곳마다 올려다보고 들여다보며 셔터를 연신 눌러대기 바쁘다. 덕분에 송이와 나 둘만이 마치 한 팀처럼 붙어 의지(?) 해야 했다. 


 가우디

 그러고 보니 정말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없으면 어떻게 살지? 할 정도로 온통 가우디 건축물 천지다. 가는 곳마다 적지 않은 입장료를 받으니 단순한 나로서는 그리 생각해 볼만 하지 않겠나. 그런데다 가로등까지 가우디의 작품이 있다니 조상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150여 년 전에 존재했던 이의 감각이 지금의 미적 감각을 능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그리고 궁금하다. 그의 상상력과 천재성은 도대체 어디까지 인지.


 그렇다고 그의 대부분 작품이 감탄만 하게 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가우디의 걸작이라는 성가족 성당은 괴기스러울 정도다. 조금 떨어져 보면 거대한 석회동굴 속 종유석과 석순이 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찌 보니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마법의 성에 흡혈귀처럼 매달려 있는 박쥐 같기도 하고 까마귀 떼 같기도 하다. 혹은 가시덤불 속 짐승의 뼈처럼 보이기도 하여 거부감마저 드는 것이 나로서는 정확하다. 그런데다 1883년에 착공하여 앞으로도 완공까지 200여 년이 걸린다니 생전에 완성 못할 작품을 시작한 것을 보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공사에 느릿느릿, 별로 진전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 어쩌면 완공할 마음이 없는 것도 같다.

 

 그러나 유일하게 입장료가 없었던 구엘공원은 역설적으로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본래 전원주택단지를 목적으로 했다는데 타일 모자이크가 낯설지 않다. 그런 데다 따뜻하기까지 했던 것은 아주 오래전 우리 집 목욕탕이 연상되어서는 아니었을까. 울퉁불퉁 동굴 속 같은 가우디다운 모습은 이곳에서도 존재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를 후원한 구엘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미완성이라고는 하지만 공원은 보다 더 예술적이고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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