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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Feb 25. 2022

엄마는 네가 부러워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냄새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 준다. 여행의 달콤함이 다시 돌아올 내 집이 있어서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이렇게 혼자 오랫동안 집을 비운 적이 없었던 때문인지 모든 것이 반갑고 새로운 기분이다. 있던 자리 그대로, 놓여있던 그 자리가 여전인 것이 멀리 떠나 있다 돌아온 나를 위한 것만 같아 고맙기까지 하다.


 짐 풀 생각 없이 며칠은 여독에 쌓여 그냥 있고 싶었다. 그러다 긴장에서 풀려나 오늘에서야 짐 정리를 하는데 비로소 두고 온 아이 생각에 뭉클하다. 시월 하순이라고는 하지만 낮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소매 없는 셔츠를 입을 만큼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오후 1시 기차로 떠날 엄마를 챙기기 위해 아이는 땀에 젖어 학교로부터 뛰어 왔고 그 덕에 무사히 툴루즈를 떠날 수 있었다.


 ‘무사히’ 떠났다고 말을 했지만 결코 무사히 떠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아이는 뛰어 오면서 울은 눈치다. 아이를 위해 하나라도 더 챙겨놓고 오기 위해 새벽부터 집안을 치우고 편지를 쓰고 음식을 장만하던 나도 훌쩍였으니 짐작할 만하다. 이미 떠나기 며칠 전부터 이런 현상들은 시작이 되었던 터였는데 기차가 움직이자 마침내 아이는 통곡을 했다. 아이만 남겨두고 떠나는 나는 또 어떠했겠는가.  


 테제베를 타고 몽파르나스 역까지 6시간을 올라오는 동안 아이에게 갈 때와 다르게 차창 밖 그림 같은 풍경은 우울하고 슬펐다. 이국적인 어떤 아름다움도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다시는 아이한테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며 목적지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다. 혼자서도 잘 견디던 아이를 엄마가 괜히 와서 흔들어 놓고 간다는 자책에 마음이 아팠다. 이런 생각은 아이와 생활하면서도 이따금 들었던 터다. 그런데 가만히 안타까움과 서운함이 동의어처럼 가슴에 와닿는 것이 있다. 


 처음 아이에게 왔을 때 얼마간 우리 둘은 서로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집에 같이 있을 때보다 더한 친밀함을 생각하고 왔는데 언뜻언뜻 서먹했다. 가끔 그것이 서운해 이곳에 온 것이 잘한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친정엄마가 그리웠다. 혹시 엄마가 내 집에 오셨을 때 나도 그런 적은 없었을까. 말없이 종일 혼자 있던 시간이 많던 까닭에 말을 거는 엄마가 불편해 모른 척한 적은 없던가. 엄마의 다정함이 지나쳐 귀찮지는 않았나. 엄마 기분을 살펴드리기 위해 애쓰면서 내심 짜증스러웠을 때도 있었을 거야. 


 그러다 아이 어릴 적도 생각해 봤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같이 놀아 달라 칭얼대던 아이를 저리 가 혼자 놀지 않을래, 라며 밀어낸 적은 없었을까. 나도 아이에게 예쁠 때만 곁에 오게 하지 않았을까. 엄마 일을 할 땐 말도 걸지 못하게 했던 적이 아마 있었을 것이다. 순간순간 아이가 귀찮아 혼자 있고 싶을 때도 많았을 테고. 그럴 때 아이도 지금 나처럼 누군가가 그립고 아팠을까. 값어치를 치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니 한없이 그때가 미안해진다.


 아이와 떨어져 지낸 지 꼬박 2년이다. 그러니 이미 아이는 엄마로부터 떨어져 또 다른 개체가 되었고 이제 새로운 세대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일이다. 엄마가 와서 반갑고 기쁜 것만큼 불편한 것도 그만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오픈된 좁은 방에서 저만의 사생활도 없이 더구나 낯선 곳에 온 엄마를 챙겨야 한다는 중압감이 왜 없었을까. 일을 찾아 만들어가며 종일 서 있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언짢기도 했을 것이다.


 아이는 외로움에 지쳐 있었다.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예전 딸답지 않게 까칠한 모습을 보일 때면 참 당황스러웠다. 변한 아이를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대부분 유학생이 개인주의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외롭지만, 간혹 어울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외로움은 힘든 공부와 자기만의 일과로 스스로들 해결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조금씩 매 말라 가는 것을 느낄 때 더욱 외롭다고 한다.


 그래도 얘야, 엄마는 네가 부럽단다. 고생이라고는 하지만 네가 원해 치르는 이기적인 과정이라 생각하면 그 이기심 또한 부러운 마음이다. 철저한 계획으로 그곳까지 간 용기가 처음부터 부러웠지. 그런 네 뜻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부모가 있다는 것도 부럽고 지금 고통을 행운이라 생각하는 네 열정과 젊음도 부럽다. 어찌 될지 모르는 미래가 염려스럽다고 말하지만 자신 있어하는 네 모습도 엄마는 부럽기만 하구나. 정말 부러운 것은 너를 가장 이해하고 딸을 먼저 생각하는 이런 엄마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것이야. 


 그러니 아직 슬퍼하고 있다면 이제 너무 많이 울지 말고 다시 힘을 내거라. 이렇게 부러워하는 엄마 몫까지 후회 없이 마친 다음 행복한 모습으로 내게 돌아와야지.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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